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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6월항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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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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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현실

 

6월민중항쟁이 있은 때로부터 32년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금 각계 민중은 군부독재정권을 반대하는 굴함없는 투쟁을 완강하게 벌여 친미독재집단에 치명적 타격을 준 항쟁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고 있다.

돌이켜보면 6월민중항쟁은 미국의 식민지지배와 전대미문의 사대매국, 파쇼폭압, 반통일책동을 일삼던 전두환 군부독재집단에 대한 민중의 쌓이고 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었으며 자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새 정치, 새 생활을 안아오기 위한 대중적 항쟁이었다.

당시 총칼로 권력을 강탈한 전두환 군사독재집단은 외세를 업고 민중에 대한 파쇼적 폭압에 광분하면서 이땅을 인권유린의 난무장, 인권동토대로 만들었다.

권력에 환장한 전두환 독재정권은 7년간의 집권에 만족하지 않고 장기집권을 꿈꾸면서 국민의 소망이었던 개헌논의를 중지시키고「4.13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전두환의 호헌조치와 경찰에 의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군부독재를 반대하는 대중적 투쟁이 거세차게 벌어졌다.

1987년 6월 10일 마침내 대중적 항쟁의 불길은 세차게 타올라 서울과 부산 대구와 광주, 목포와 제주 등 경향각지를 뜨거운 열기속에 몰아넣었다.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수백만명의 각계층 민중은「호헌철폐」, 「직선제개헌」, 「독재타도」, 「미군축출」, 「민족통일」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항쟁자들의 굴함없는 투쟁의지에 당황한 군부독재집단은 「갑호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시위진압에 10만여명의 경찰특공대와 장갑차까지 투입했다. 그러나 군부독재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치고 자주, 민주, 통일의 열망을 뜨겁게 간직한 항쟁용사들의 거세찬 진출은 막을 수 없었다.

항쟁자들의 완강한 투지앞에 질겁한 독재집단은 하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직선제개헌」과 「구속자 석방」등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독재통치를 반대해나선 항쟁자들의 단결된 투쟁과 파쇼폭압에 굴할 줄 모르는 그들의 과감한 항거정신이 안아온 결실이었다.

6월민중항쟁으로 군부독재집단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으며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밑뿌리째 흔들어놓았다.

항쟁은 우리 민중의 단결된 힘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6월항쟁은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지 못하였다.

미국과 군부독재세력의 교활한 책동의 결과 쿠테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권좌를 차지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민중이 어떻게 하나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는 독재집단의 교활한 속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순간의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하면 소중한 항쟁의 성과가 순간에 뒤짚어진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남겼다.

오늘날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운 6월민중항쟁정신은 촛불항쟁으로 이어져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기적을 안아왔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실현된 오늘에도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촛불항쟁의 귀중한 성과를 뒤엎고 이 땅에 또다시 독재시대를 재현시키려 필사발악하고 있다.

현실은 미국의 지배와 간섭, 자한당이 존재하는 한 자주, 민주, 통일을 바라는 우리 민중의 염원은 언제 가도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신과 독재를 그대로 이어받은 몸통이 바로 자한당이다.

각계 민중은 6월민중항쟁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말고 민중의 의사와 요구에 거스르며 파쇼독재를 되살리려는 자한당을  역사의 쓰레기장에 매장하기 위한 투쟁을 끝장을 볼 때까지 가열차게 벌임으로써 민중항쟁의 고귀한 결과가 불의한 권력에 의해 말살당하는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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