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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2. 2) 사회적변혁-모든것을 인민에게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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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10-25

본문

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2.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여 인민의 새 나라를

2) 사회적변혁 - 모든것을 인민에게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조국의 해방을 맞이한 우리 인민은 다시는 식민지적 및 봉건적예속밑에서 살것을 원치 않았다. 인민들은 자기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여주는 새 생활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온갖 착취와 구속에서 벗어나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며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여 새 조국건설을 떠메고나가려는 인민의 지향과 열정의 폭발이기도 하였다.

인민들의 이러한 지향과 요구를 실현하자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하여야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민주주의적개혁은 악독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의 후과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지속되여온 온갖 사회적악페와 질곡을 청산하는 심각한 사회적변혁으로서 광범한 인민대중을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게 하기 위한 사회경제적지반을 마련하는것으로 된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거창하고 심각한 민주주의적개혁이 각계각층의 광범한 근로대중의 단결된 힘에 의거하여 매우 짧은 시일안에 수행되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제반 민주주의적개혁들은 그것이 철두철미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리해관계를 실현하는데로 지향되고 복종되였으며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참가밑에 그들자신의 힘과 투쟁에 의하여 이룩되였다.

토지개혁이 성과적으로 수행되여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이 봉건적인 토지소유제의 구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여 땅의 주인이 되였다.

지난날 우리 나라는 뒤떨어진 식민지반봉건사회로서 농민이 인구의 거의 80%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들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봉건적인 토지소유제에 얽매여 마소와 같이 착취당하고 짓밟혀왔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나라의 거의 모든 토지를 저들의 소유로 만들고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에서 식민지통치를 감행하였다.

조선의 농촌이 걸어온 력사는 토지를 통한 착취자들의 살인적인 략탈과 그를 반대하는 농민들의 피어린 투쟁의 력사였으며 이 땅의 모든 전야가 토지를 빼앗긴 수백만 농민들의 원한과 피눈물로 젖어온 수난의 력사였다.

해방은 되였으나 아직 농촌에는 봉건적토지소유관계와 소작제도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일제와 결탁하여 농민들을 가혹하게 략탈하던 지주들은 여전히 많은 땅을 가지고 농민들을 착취하고있었다.

제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려는것은 농민들의 세기적인 숙망이였고 사활적인 요구였다.

토지문제는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는데서나 군중을 단합시키는데서도 선차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초미의 문제였다. 토지문제를 해결하여야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봉건적착취에서 해방하고 그들의 건국열의를 높일수 있었으며 나라의 전반적인 정치, 경제, 문화생활을 민주화하기 위한 사회정치적지반을 강화할수 있었다.

하기에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한 토지개혁을 민주주의적개혁의 선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1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토지개혁의 기본방향을 밝힌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을 채택발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토지문제를 농민들의 요구와 의사에 맞게 해결하기 위하여 주체34(1945)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석달동안 몸소 평안남도 대동군을 비롯한 여러 지방에 나가시여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식구는 몇이며 지주의 땅은 얼마나 부치는가, 소출은 얼마나 나는데 소작료는 얼마나 바치는가, 일하는 사람은 몇인데 땅을 얼마나 가지면 생활할수 있는가, 농촌의 장정로력 한사람이 어느 정도의 땅을 다룰수 있는가, 땅을 주면 어떻게 경작하겠는가 하는것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이 과정에 우리 나라 농촌실정에 맞는 토지의 몰수대상과 몰수 및 분배방법, 소작제도를 없애기 위한 방도를 확정하시였다.

이 시기 전국각지의 농민들이 위대한 수령님께 봄갈이전으로 지주의 땅을 빼앗아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나누어줄것을 요청하는 편지와 결의문, 청원서를 올리였다.

토지개혁을 실시하는것은 성숙된 문제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3월 5일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공포하시였다.

법령에서는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밑에 농민들을 땅의 주인으로 되게 하는것을 토지개혁의 기본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서 토지개혁을 하며 몰수한 땅을 국가소유로 하지 않고 농민들의 개인소유로 한다는것을 규정하였다. 토지몰수대상과 기본투쟁대상도 명확히 규정하였다.

토지개혁법령은 농촌에 뿌리깊이 남아있던 봉건적토지소유관계와 착취관계를 철저히 청산하고 땅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집대성한 토지개혁법전이였다.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은 공포되자마자 전국의 농민들은 물론 각계각층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았으며 대중을 그 수행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된 이후 전국의 농촌들에는 토지개혁을 직접 담당집행할 농촌위원회들이 조직되였다.

각지 농촌위원회들은 토지몰수대상과 청산대상을 규정하며 몰수한 땅을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사업을 비롯하여 토지개혁법령을 집행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맡아 농민대중의 리익에 맞게 처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실시에서 농촌위원회들의 역할을 높이고 토지개혁이 편향없이 옳바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농촌에 자주 나가시여 실태들을 료해하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토지개혁이 한창 벌어지던 3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당시)의 어느 한 마을에 나가시여 농촌위원회사업을 지도하시였다.

그때 리농촌위원회 위원장은 토지개혁과 같은 어렵고 복잡한 사업을 맡아하자니 아는것이 없어서 힘에 부친다고 수령님께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지식있는 사람이 없어서 빈농, 고농들로 농촌위원회를 조직하게 한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토지개혁은 바로 동무들과 같은 빈고농들이 해야 철저히 할수 있고 또 정확히 할수 있다고 크나큰 신임과 고무를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법령을 집행하는데서 농촌위원회일군들이 알지 못하여 안타까와하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걸린 문제들도 손수 풀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농촌위원회일군들과 함께 이웃마을에 있는 지주집에도 들리시였다. 해방이 되자 지주는 남조선으로 도망치고 그 집에는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그이께서 대문안에 들어서시자 그들은 한달음에 달려나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세우시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을 쓸어주시며 지나온 생활경위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지주집머슴으로 살아온 그들의 피맺힌 이야기를 들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농촌위원회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이 집과 이 집세간살이등속을 몽땅 이 집에서 제일 고생을 많이 하신분들에게 드리고 땅도… 지주네 땅가운데서 제일 좋은것으로 이분들에게 드립시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그 집 대문에 머슴살이를 하던 한 농민의 이름을 문패에 쓰시고 그것을 달아주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농민을 데리고 들로 나가시여 제일 기름진 밭을 골라 그에게 분여해주도록 하시고 이 밭을 영원히 부쳐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세심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이 있어 천대와 멸시만을 받으며 살아오던 농민들이 세기를 두고 내려온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짓부시는 투쟁에 결연히 떨쳐나 마침내는 땅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될수 있었다.

토지개혁은 농민대중만이 아니라 각계각층 인민대중의 지지성원속에 진행되였다.

각 정당, 사회단체들은 농민대중속에 들어가 토지개혁법령을 해설선전하는 한편 토지개혁법령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공동성명서는 토지개혁실시에 궐기한 농민들을 적극 고무하고 그들에게 신심을 주었으며 적들에게는 공포를 주었다.

로동계급은 토지개혁지원대를 농촌에 파견하여 토지개혁을 위한 농민들의 활동을 적극 도와주는 한편 《농민들에게 농기구를 선물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호미와 낫을 비롯한 농기구들을 생산하는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농민들을 지원하였다.

민청, 녀맹단체들에서도 우수한 일군들을 농촌에 파견하여 토지개혁을 도왔다.

토지개혁수행에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대중이 적극 떨쳐나선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관하게 견지하고 빛나게 구현하여오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정책의 거대한 승리였으며 토지개혁과 같이 거창한 사회적변혁을 한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토지개혁에 의하여 100만여정보의 토지가 무상으로 몰수되여 72만여호의 농민들에게 98만 1 000여정보의 토지가 무상으로 분여되였다.

수천년을 내려오던 봉건적착취와 예속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제땅을 가져보려던 세기적숙망을 이룩한 농민들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컸다.

여기에 김일성장군님의 덕분으로 땅의 주인이 된 농민들의 그때의 환희와 기쁨을 그대로 담은 한편의 소박한 시가 있다.

 

땅!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내 땅

삼천평!

아, 이 땅을 다 짊어지고 일어설수 없어

가슴에 붙안고 차마 집으로 갈수 없어

두고서는 차마 한발자욱도 옮길수 없어

어머니는 아예 땅을 안고 누우시네

 

그러자 그 언제인가

첫애기를 재우던 그밤처럼

마음은 속삭이고 노래부르고싶어…

어머니는 가슴을 헤쳐

대지에 젖을 물리고싶고…

 

아, 땅이 어머니를 안았는가

어머니가 땅을 품었는가

땅도 어머니도 위대한 품에 안겨

말도 없이 깊어가는 밤

 

땅때문에 아버지와 남편, 세 자식을 잃었다는 시의 주인공인 한 농촌녀성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젖을 물려주고 품어주고싶은 심정그대로 분여받은 제땅에 젖을 주고 안아주고싶은 그 마음은 땅을 분여받은 이 나라 모든 농민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농민들은 자기들에게 땅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편지를 드리였으며 그이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새 민주조선건설에 몸바쳐나설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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