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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2)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6. 15시대 통일오작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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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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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민족의 숙원 통일을 위하여

2)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6. 15시대 통일오작교가 있어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하여 이 땅우에는 자주통일의 새시대, 우리 민족끼리의 새시대가 펼쳐졌다. 반목과 불신, 대결이 지속되여오던 북남관계는 화해와 신뢰, 협력과 교류의 시대에 들어서게 되였다.

온 겨레는 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북남수뇌상봉의 귀중한 성과물인 6. 15공동선언이 성과적으로 리행되여 통일의 길로 이어지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온 민족의 절절한 기대와 념원에 맞게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우리민족끼리시대의 새로운 전환기를 열어놓기 위하여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과 대표단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6. 15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해나가자면 북과 남사이에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맺은 약속은 서로의 신뢰에 의하여 맺어지고 관철된다. 개인들사이의 약속이나 국가간에 맺어지는 협정이나 다 이러한 감정이 없이는 지킬수 없다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시기 북과 남사이에는 통일을 위해 큰걸음을 내디딜수 있는 좋은 합의들이 이룩되였었다. 그러나 남측이 돌아앉아 공화국을 비방중상하고 화해분위기를 흐리게 하여 그 합의가 실행에로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이 나온 직후에도 북과 남은 서로 비방중상을 중단할데 대한 문제를 합의하였지만 남측이 그것을 휴지장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북남관계를 또다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만은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안으시고 북남쌍방사이에 비방중상을 중지하고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맨 처음으로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단을 평양에 초청해주시였다.

언론인들은 시대를 전진시켜나가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논다. 언론인들이 틀어쥔 붓대와 마이크를 통하여 정의와 진리가 전파되고 력사의 전진이 추동되게 된다. 그래서 언론인들을 가리켜 사회여론의 대변자, 정의와 량심의 전파자라고 말하는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 남조선의 일부 언론들은 편견과 외곡으로 공화국에 대하여 나쁜 소리들을 많이 하면서 민족내부에 대결의식을 조장하는데 앞장서왔다. 그들이 과거 랭전시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겨레의 통일위업은 난관과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남조선언론의 실태와 그들이 6. 15공동선언리행에서 노는 역할을 깊이 헤아리시고 남조선언론인들과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8월 12일 평양을 찾아온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몸소 만나 담화를 나누시였으며 그들과 오찬도 함께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담화와 오찬석상에서 우리 민족이 당하여온 수난에 찬 분렬의 력사를 회고하시면서 높은 민족적자존심을 가지고 새 천년대의 요구에 맞게 민족앞에 나서는 력사적과제를 풀어나가며 민족공동의 리익을 도모하고 북남관계를 새롭게 발전시킬데 대하여 중대한 말씀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북과 남의 제반 관계가 민족적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에 리롭게 발전하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북과 남의 언론기관들과 언론사들이 자기의 책임과 임무를 다하여야 할것이라고, 지난날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대결하고 불신하던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 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 도움이 되고 인민들의 의사에 맞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려야 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누구든지 6. 15공동선언을 지지환영하고 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 나선다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관계없이 그리고 과거는 물론 어제의 실언도 불문에 붙이고 함께 손잡고 나갈것이라고 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 언론사대표단이 관심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해명을 주시면서 선군정치에 대하여서도 명답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힘의 원천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가 일심단결이고 두번째가 군력이다, 군력이 있어야 외국과의 관계를 자주적립장에서 풀어나갈수 있다,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렇지 않으면 외세에 롱락당한 한세기전의 비참한 운명을 면할수 없다는데 대하여 일깨워주시였다.

장군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에는 정의와 량심의 대변자인 언론인들이 민족의 자주정신을 높이 발양시키고 온 겨레를 자주통일의 한길로 불러일으키는 선구자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해나가기를 바라시는 믿음이 어려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나주신것은 그들이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언론인들의 본분을 지키도록 하는데서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이후 남조선언론인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과 공화국의 현실을 적극 소개선전하였다.

2000년 남조선언론계는 20세기의 특기할 사변을 마련하신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상사진들을 전례없이 많이 모시였는데 남조선의 주요신문 11종과 잡지 14종만 봐도 절세의 위인들의 영상사진을 총 1 030상 모시였다. 《경향신문》(2000년 12월 21일부)과 잡지 《시사져널》은 위대한 장군님을 《2000년 올해의 인물》로 발표하였다.

남조선의 주요신문들과 잡지들이 북남합의서발표이전인 3월 한달동안에 공화국과 관련한 기사를 평균 7. 5건(사설은 평균 3. 5건)을 실었다면 평양방문이후인 9월과 10월에는 사설만 해도 한달에 평균 10건으로서 3일에 한번정도로 실었으며 기타 시론, 론평 등은 거의 매일 싣다싶이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상급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우리민족끼리정신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리있는 회담으로 되도록 이끄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의 대화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앞세우고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2000년 7월말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그 리행을 위한 첫 회담으로서 북남당국사이의 상급회담이 열리였는데 여기에서 북과 남은 북남회담을 새로운 시대적요구에 맞게 운영해나가기 위한 원칙적문제들을 제기하고 회담을 북남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리행하는 회담으로, 불신과 론쟁으로 일관되던 과거의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 신뢰와 협력의 정신에서 문제를 타결하는 회담으로,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는 회담으로 만들데 대한 문제들에서 합의를 보았다. 이것은 상급회담뿐아니라 북과 남사이에 진행될 여러 갈래의 회담들을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로 지향시켜 실속있게 전개해나갈수 있는 담보로 되였다.

이에 토대하여 그해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북남상급회담에서는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쌍방 군사당국자들의 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가지도록 건의할데 대한 문제, 경제협력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담보를 마련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끼리 풀어나갈데 대하여 합의하였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9월 1일 평양에 온 북남상급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접견해주시고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북남관계를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상급회담뿐아니라 북남사이의 인도주의적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적십자회담들과 경제교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실무접촉,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군사당국자들사이의 회담도 실리있는 회담으로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여러차례 진행된 북남적십자회담들을 통하여 북남사이의 인도주의적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고 북남적십자단체들의 활동이 활기있게 진행되였다. 또한 2000년 6월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2007년어간에만도 북남당국사이에는 21차의 상급회담과 13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8차의 적십자회담과 6차의 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으며 거의 모든 회담들에서 매번 합의문건이 채택되였다.

이러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속에 남조선에서 옥중고초를 겪은 63명의 통일애국투사들이 조국의 품에 안기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6. 15이전시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민족사적사변이였다.

북남관계가 개선되여나간 과정은 북남공동선언실현의 앞길에 장애를 조성해나선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을 짓부셔버린 과정이였다.

2001년 새로 집권한 미국의 부쉬2세행정부는 집권하기 바쁘게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로골화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과정을 막아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미국은 2001년 3월 남조선당국자를 워싱톤으로 불러들여 《해볕정책》도 북을 《흡수통일》하는 조건에서 지지할것이라고 하면서 저들의 승인을 받아서 북남관계를 처리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해나섰는가 하면 우리 공화국을 《악의 축》으로 모독하고 공화국을 핵공격목표로 정한 핵태세검토보고서를 만들어 반공화국고립압살기도를 로골화하였다.

남조선의 반통일분자들도 이에 편승하여 6. 15시대의 흐름을 차단하고 과거의 대결시대를 되살리려고 음으로양으로 책동해나섰다.

그리하여 모처럼 마련되였던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중단되게 되였으며 북남관계는 6. 15이전의 대결상태로 되돌아가는가 아니면 화해와 단합의 관계로 발전하는가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민족이 단합된 힘으로 외세와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6. 15공동선언을 굳건히 고수하며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4월 평양을 찾아온 남측 특사일행을 접견해주시고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할데 대하여,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책동으로 조선반도에 조성된 위기사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갈데 대하여, 당면하여 북남관계를 원상회복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6. 15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요구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민족중시의 립장에서 남측 특사가 제기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완벽한 해답을 주시였다.

북남철도와 도로련결문제가 상정되였을 때였다.

남측 특사는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와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련결문제만을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숭고한 민족중시의 립장으로부터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만 련결할것이 아니라 동해선철도도 련결하여야 한다, 동해선철도를 련결하여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수 있다, 신의주-서울 철도만 련결하면 조선땅이 찌그러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것은 동서의 철도를 다 련결하여야 철도가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으며 실리도 크다는 뜻으로서 민족적리익의 견지에서 하신 말씀이였다.

4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 특사사이에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담을 통하여 일시 동결되였던 북남관계를 원상회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보도문이 합의발표되게 되였다.

특히 공동보도문에서 쌍방은 북남사이의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동해지구에서 새로 동해선철도 및 도로를, 서해지구에서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 및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를 빨리 련결하기로 하고 철도와 도로련결 및 협력사업을 토의하기 위하여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아래 분과들을 가동하기로 발표하였다.

북과 남의 온 겨레는 북남관계가 원상회복되고 대화와 협력사업이 추진되는것과 함께 동강났던 철도와 도로가 련결되게 된다는 소식에 접하여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동강난 철도와 도로, 그것은 민족분렬과 그로 인한 불행과 고통의 상징이였다.

끊어진 두줄기 철길의 침목사이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내리고 끊어진 도로는 지뢰밭으로 변하여 짐승들도 넘나들지 못하였으니 철도와 도로련결은 말그대로 갈라진 강토의 지맥과 끊어진 민족의 혈맥이 이어지는 통일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사업을 료해하시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모두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2002년 9월 내외의 커다란 관심속에 착공식을 가진 동해지구와 서해지구의 철도 및 도로련결공사가 힘있게 추진되여 2007년 5월 17일에는 북남철도련결구간 렬차시험운행이 동서해선에서 각각 북측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 남측 문산역에서 북측 개성역까지 진행되였다.

나라의 지맥을 하나로 잇는 이 벅찬 현실은 대립과 갈등, 분렬의 력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마련하는 뜻깊은 경사였으며 분렬의 철조망과 지뢰밭을 뚫고 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력사적장거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동포애적조치와 온 겨레의 단합된 힘에 의하여 민족분렬 50여년만에 끊어진 지맥이 하나로 이어진데 이어 남녘에서 금강산으로 오는 배길이 열리고 북과 남의 비행기들이 서해항로를 따라 분계선을 넘어 오가는 6. 15시대의 통일오작교가 놓여지게 되였다.

6. 15시대의 통일오작교가 있어 북과 남의 수많은 동포들이 백두산과 한나산으로, 평양과 서울로, 인천과 금강산으로 오고가며 민족의 통일열기를 한층 뜨겁게 하였다.

평양국립교향악단과 평양학생소년예술단, 평양교예단의 서울방문공연, 남조선 《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연주회들, 평양통일탁구경기,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된 북남태권도시범단 교환, 제14차 부산아시아경기대회와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 북남선수단 공동입장과 공동응원, 북남력사학자들의 평양과 서울, 금강산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및 사진전시회, 평양에서 진행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의 범죄성에 대한 북남공동학술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제주도에서 북과 남이 함께 진행한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특히 2005년 6월 평양에서 진행된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대통일축전은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의 당국대표단과 해내외의 유명인사들이 참가함으로써 6. 15통일시대의 생활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2005년 6월 14일 평양에서 개막된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행사에는 북측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당국대표단과 90여개 단체의 대표 130여명이, 남측에서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당국대표단과 160여개 단체의 300여명의 대표들이, 해외에서 70여개 단체 대표 100여명이 참가하였다.

김일성경기장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과 5만여명의 평양시민들의 참가하에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북과 남, 해외의 각당과 각계각층이 함께 하고 당국과 민간이 같이하며 백두에서 한나까지 전 지역이 모인 이 축전이야말로 조국통일의 주체는 우리 민족임을 내외에 힘있게 과시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실천해나갈 온 민족의 한결같은 의지를 확인하는 민족대회합의 새로운 마당이였다.

뜨거운 통일의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대회에서는 겨레의 불같은 통일애국의 마음과 의지를 담아 민족통일선언을 채택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94(2005)년 6월 17일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조선《대통령》의 특사인 통일부 장관과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녀사를 비롯한 남측의 평양상봉연고자들을 만나주신것은 축전의 최고절정을 장식한 일대 사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핵문제와 6자회담에 대한 공화국의 립장과 당면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며 민족공동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해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사일행을 향해 여러분들이 6. 15공동선언발표 5돐 기념행사에 온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사실6. 15공동선언의 내용은 훌륭하다고,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수 있는 선언이라고 하시며 이번에 평양에서 가진 6. 15민족통일대축전에 이어 8. 15에 서울에서 또 한차례의 통일축전을 벌리면 세계의 분위기상 과속이 아니냐고 놀랄 정도로 북남관계가 잘될수 있을것이라고, 8. 15에 우리 대표단을 내보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북과 남으로 흩어져사는 가족, 친척상봉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할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도 직접상봉을 많이 할수 없다면 지금이 정보화시대인데 그에 맞게 동영상상봉을 조직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해결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 특사일행과 평양상봉연고자들, 문익환목사의 부인을 위하여 오찬을 마련하시고 그들과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 남측 특사일행을 만나주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기 위하여 북남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데 대한 귀중한 말씀을 주신 6월 17일은 조국통일운동력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격동적인 사변의 날로 기록되였다. 5년전 6. 15공동선언발표가 북남화해와 협력의 출발이였다면 5년후의 이날은 그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계기로 되였다.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는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신심에 넘쳐 통일운동을 더욱 거세차게 벌려나갔다.

그 일환으로서 이미 2005년 3월 금강산에서 결성되였던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점차 북남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온 겨레를 하나로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힘있게 추진시켜나가는 상설적인 전민족규모의 통일애국운동기구로 확대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졌다. 그리하여 2005년 12월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6. 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략칭 6. 15민족공동위원회)로 그 명칭을 바꾸었을뿐아니라 위원회의 규약도 채택발효시키고 공동사무국도 설치하여 6. 15민족공동위원회를 행사위주의 조직으로부터 상설적인 통일운동련대조직으로 강화발전시켰다.

전민족적인 통일운동련대기구가 결성됨으로써 공동선언발표이후 통일운동에서 거둔 성과를 계승하여 겨레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나갈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추동력이 마련되게 되였다.

이렇듯 6. 15통일시대에 북과 남에 펼쳐졌던 현실은 북남공동선언의 거대한 생활력이 안아온 우리민족끼리시대의 새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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