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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2)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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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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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민족의 숙원 통일을 위하여

2)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북과 남사이에는 경제협력을 보다 광범하게 넓혀나갈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되였다.

북남사이의 경제협력을 발전시키는 문제는 단순한 경제실무적문제가 아니다. 북남경제협력사업은 한피줄을 나눈 겨레가 끊어진 민족의 뉴대를 잇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북남경제협력은 북과 남의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가져올뿐아니라 민족내부에 서로 돕고 도와주는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또한 경제협력을 통하여 서로 자유로운 래왕과 접촉, 화해의 길을 넓혀나가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해나갈수 있게 한다.

그렇기때문에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북과 남이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민족공동의 번영과 조국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애국애족적인 사업으로 된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위업실현에서 북남경제협력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북남경제협력문제도 통이 크게 해결해주시여 민족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북과 남은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우에서 화합을 이룩하고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면서 조국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이 눈으로만 그려보고 마음속으로만 오르던 금강산관광의 길을 활짝 열어주시였으며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그 길을 더욱 넓혀주시여 금강산관광이 북남경제협력의 대명사로 민족사의 한페지에 기록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예로부터 금강산은 조선의 제일명산으로, 세계적인 천하절승으로 일러왔다. 독특한 산악미를 자랑하는 1만 2천봉우리들과 천태만상을 이룬 기기묘묘한 바위들, 구슬같이 맑은 물이 쏟아져내리는 폭포들과 계곡들로 하여 금강산은 세인의 감탄을 자아내고있다.

금강산의 경치가 세계으뜸이여서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각지의 명산들에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수산을 《해서(황해)금강》, 칠보산을 《함경금강》, 석승산을 《의주금강》이라고 불러왔다.

이러한 금강산이지만 나라의 분렬로 하여 남녘동포들은 반세기이상이나 금강산에 와보지 못하고있었다. 생전에 금강산을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것이 남녘동포들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의 이러한 가슴속소원을 헤아리시고 여러차례 남조선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을 만나주시고 북남경제협력의 일환으로서 금강산관광사업을 잘해볼데 대한 믿음을 안겨주시였으며 현대그룹에 금강산관광개발권을 비롯한 중요대상들에 대한 우선권을 주도록 하시였다.

사실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미군이 장악하고있고 미국의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이 중단되지 않고있는 실정에서 군사분계선과 린접하고있는 금강산지역에 대한 관광에는 복잡하고 심중한 문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명산을 한번 보고싶어하는 남녘동포들의 소망을 소중히 여기시고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속에서도 대범하게 금강산관광의 길을 열어주시였던것이다.

그리하여 1998년 11월 18일 800여명의 관광객을 태운 배가 고동소리를 높이 울리며 남조선의 동해항을 떠나 금강산관광길에 오르게 되였다.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울린 배고동소리, 이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에 의하여 처음으로 금강산관광길에 오른 남녘겨레들의 기쁨을 터치는 환희의 고동소리였고 온 민족이 손을 잡고 금강산으로 오를 통일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희망의 기적소리였다.

첫 관광이 있은 때로부터 한해 남짓한 기간에만도 10여만명의 남조선 각계 동포들이 금강산을 다녀갔고 금강산관광사업은 날이 갈수록 더욱 활기를 띠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 15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온 겨레의 통일열기가 뜨겁게 분출되고있는 시대적요구에 맞게 금강산관광길을 더욱 넓혀주시여 더 많은 남녘동포들이 금강산관광길에 오르도록 해주시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때로부터 석달이 지난 주체89(2000)년 9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정몽헌회장을 비롯한 현대관계자들과 함께 고성항을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에서 시작한 금강산관광을 잘 조직해보는것이 좋겠다는 믿음을 다시금 안겨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내가 보건대 이제 금강산관광을 더 활성화하자면 어차피 남쪽과는 관광수송통로가 개발되여야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금강산을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금강산이 아니라 북과 남, 해외를 잇는 무지개다리로, 온 민족이 만나는 통일오작교로 되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크나큰 도량에 현대관계자들은 그렇게 하면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천하절승 금강산을 남녘동포들이 다 보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이날 금강산관광을 비롯하여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을 더욱 발전시켜나갈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하시면서 북과 남이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을 이룩할데 대한 사상을 밝히시였다고, 남쪽에서 자꾸 상호주의라고 하는데 구태여 상호주의라고 한다면 서로 배워주고 도와주는 이런 원칙에서의 상호주의라고 해야 할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공존, 공영, 공리를 해서 두 제도가 존재하는 련방제를 하여야 한다고 깊은 뜻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두 제도가 존재하는 기초우에서 공존, 공영, 공리를 하자는것이지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남쪽에 강요하거나 먹이자는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선 현대에서 제기한 금강산관광을 승인한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북남경제협력을 더욱 폭넓게 진행하여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장군님의 철의 의지가 마디마디에 어려있는 말씀을 받아안으며 동행한 일군들과 현대관계자들은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오곡백과 무르익은 가을날 몸소 찾아오시여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신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금강산관광사업은 더욱 힘있게 추진되였다.

2003년 2월 남측의 현대관계자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륙로관광을 위한 시험답사를 진행한데 이어 남측의 관계인사들과 내외기자들로 구성된 시범륙로관광단이 시범관광을 진행하였다.

이로써 금강산관광사업은 해상을 통한 관광의 일면성을 극복하고 보다 활기를 띠게 되였으며 2003년초부터는 동해림시도로를 통한 륙로관광도 진행되게 되였다.

이에 대해 미국신문 《로스안젤스 타임스》는 《남북은 요새화된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금강산관광도로의 공식개통으로 또 하나의 력사를 만들었다.》고 썼다. 남조선언론들도 금강산관광이 북남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하면서 《금강산관광은 남북관계의 대명사》, 《만남과 화해, 협력의 상징》이라고 널리 소개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과 함께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개성땅에 북과 남이 함께 하는 공업지구를 건설하도록 하시여 북남경제협력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시였다.

오늘 개성공업지구가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사업으로 온 겨레의 관심속에 진행되고있는데는 그 형성과 발전을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심혈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남조선의 수많은 기업들은 저저마다 북과의 경제협력을 희망해나섰다. 더구나 북남경제협력사업이 당국사이의 사업으로 전환되고 협력대상과 투자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경제특구건설문제는 절실한 요구로 제기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89(2000)년 6월말 또다시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일행을 접견해주실 때였다.

접견석상에서 정주영은 민족사에 특기할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고 온 겨레에게 통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6. 15공동선언을 탄생시키신 위대한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자기가 생각하고있는 경제협력방안들을 말씀드리였다. 그는 장군님께서 북남관계가 험악했던 시기에도 대용단을 내리시여 금강산관광을 하도록 배려를 돌려주시였는데 앞으로 현대가 북에 경제특구를 하나 건설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셨으면 한다고 말씀올렸다.

북남경제협력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중요한 계기로,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중대사로 여기신 장군님께서는 그의 소청을 헤아려 개성에 공업지구를 건설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주체89(2000)년 8월 어느날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남조선 현대아산 정몽헌회장일행을 접견해주시고 그들에게 개성지역을 공업지구부지로 확정해주시였다.

그리하여 개성공업지구를 내올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과 개성공업지구법, 개성공업지구개발규정이 발표되였다. 이에 토대하여 북과 남은 2003년 6월 30일 온 겨레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을 성대히 진행하였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남조선의 현대아산관계자들, 그밖에 개성공업지구건설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착공식에서는 축하연설들에 이어 착공발파가 있었다.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은 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남조선언론들은 《개성공단착공은 남북경협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력사적쾌거》라고 하면서 공업지구건설착공식소식을 크게 보도하였으며 세계의 언론들도 《조선분단의 상징인 개성이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자기의 새 모습을 드러내게 되였다.》고 평하였다.

개성공업지구착공의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1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2004년 12월 개성공업지구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이 진행되였으며 그후부터 개성공업지구는 북남경제협력의 상징으로,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상징으로 더욱 활성화되여갔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업지구사업은 경제협력사업을 통하여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고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뉴대를 더욱 두터이 하는데 이바지하였다.

날이 갈수록 경제협력사업을 위하여 북을 방문하는 남녘동포들의 수가 계속 늘어났으며 경제협력사업은 농업, 공업, 임가공 등 여러 부문과 지역으로 확대되였다. 북과 남은 2003년 8월 북남사이의 투자보장, 2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4개 경제협력합의서 발효통지문을 정식교환한것을 비롯하여 2005년말까지 1차례씩의 북남수산협력분과회의와 북남농업협력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11차례의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를 비롯하여 수십차례의 각 부문별분과회의와 실무접촉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1992년에 1건에 불과했던 북남협력사업이 2002년에는 52건에 이르렀으며 2003년에는 한해동안에 북남교역액수가 수억US$로 증가하는 등 짧은 기간에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반세기이상이나 분렬되여있던 북과 남이 온 겨레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경제협력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이 땅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외세와 그에 추종한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은 이를 저지파탄시키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북과 남이 화해하고 협력하는것을 처음부터 달가워하지 않은 미국은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론의되던 때부터 이에 간섭해나서면서 남조선당국에 철저히 저들의 승인하에서만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진척시킬것을 강요해나섰다.

미국은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조사 및 부지측정사업이 진행되자 통행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이 있어야한다면서  첫걸음부터 빗장을 지르려고 책동하였다. 또한 2004년 2월 제13차 북남상급회담에서 개성공업지구 시범공장지구건설이 합의되자 테로지원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수 없게 규정한 와쎄나협정을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는 남조선기업에도 적용하겠다, 콤퓨터를 비롯한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 전략물자의 반입을 불허하겠다고 하면서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였다.

남조선의 한 경제전문가는 이에 대해 《미국이 심지어 버섯종균배양설비마저도 군사용으로 전용된다고 반출금지항목에 넣었는데 이런것쯤은 북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것으로서 이런 식으로 해서는 개성공단사업이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다.》라고 하면서 미국의 비렬한 책동을 규탄하였다.

한편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은 미국의 이러한 책동에 적극 추종하면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현대그룹사이에 이루어진 정상적인 협력사업에 대하여 시비중상해오던 나머지 대북송금사건이라는것까지 들고나와 여야간 정쟁을 일삼고 민심을 소란하게 만들며 북남화해과정을 파탄시켜보려고 분별없이 날뛰였다.

그들은 금강산관광사업을 《대북퍼주기》라고 걸고들면서 금강산관광중단을 제창하였는가 하면 2003년 2월에는 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사업에 앞장섰던 한 기업가를 끝내 죽음에로 몰아넣기까지 하였다.

특히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2008년 《정권》의 자리에 올라앉기 바쁘게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면서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전면부정해나섰으며 《선대미관계, 후남북관계》를 제창하면서 친미사대적이고 반민족적인 자세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이자들은 그 무슨 《피격사건》을 구실로, 더우기는 모략적인 《천안》호사건을 날조하여 북남경제협력의 옥동자로 불리우던 금강산관광사업을 전면중단한것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북남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여오던 경제협력사업에 차단봉을 내리우는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행위를 감행하였다.

6. 15통일시대와 더불어 활발히 진행되였던 경제협력사업의 전 과정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기초하여 북과 남이 손을 잡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경제협력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갈 때 세계에 소리쳐 자랑할만 한 통일강국을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능히 일떠세울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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