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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3)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생각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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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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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민족의 숙원 통일을 위하여

3)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생각하시며

 

흔히 사람들은 따뜻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지니고싶어 시와 노래로, 전설로 길이 전하고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러한 사랑을 초월하는 위대한 사랑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겨레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이였다.

남녘동포들에 대한 그이의 사랑은 웅심깊고 열화같은 혈육의 정이 흘러넘치고 진실하고 변함이 없는 사랑으로 가득차있으며 그 사랑에는 겨레의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풀어주는 어머니의 진정이 뜨겁게 스며있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언제나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며 조국을 사랑하는것,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것, 이것이 중요하다, 공산주의자라고 하여 자기 민족이나 조국을 떠나서 그 어떤 허공에 뜬 세계혁명을 할수는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누구보다도 자기 조국과 자기 인민을 사랑하며 자기 민족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열화와 같은 민족애를 지니시였기에 조국이 분렬되여 오랜 세월이 흘렀고 분계선철길우에 떨어진 씨앗이 움터자라 거목이 되였어도 마음은 언제나 남녘인민들에게 가있으시였다. 기쁜 일이 있으면 그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것을 아쉬워하시고 그들에게 불상사가 생겼을 때에는 잠 못 이루신 그이이시였다.

주체84(1995)년 6월 서울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였다.

그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날이 새도록 남녘동포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시며 집무실에서 한밤을 보내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시며 전화로 한 일군에게 저녁시간에 물건사러 나왔던 가정부인들이 수백명이나 파묻혔다니 이런 큰 변이 어디 있습니까, 숱한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고 울고있을텐데 그애들이 누구보다도 불쌍하게 되였습니다, 정말 가슴아픕니다, 새벽 6시에 퇴근하여 잠간 쉬려고 누웠는데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전화합니다라고 하시였다.

삼풍백화점붕괴사고로 하여 남녘겨레들이 당한 고통과 불행을 두고 잠시나마 피곤을 푸셔야 할 그 짧은 시간마저 바쳐가시며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동포애는 진정 뜨거웠다.

남녘동포들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사랑을 지니시였기에 그들이 불행을 겪을 때마다 친혈육의 심정으로 그것을 가셔주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신 장군님이시였다.

주체73(1984)년 남조선의 수재민들에게 수많은 구호물자를 보내주신 이야기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길이 전하며 오늘도 겨레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그해 8월과 9월초에 걸쳐 례년에 없는 비가 쏟아져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의 여러 지역에 물란리를 일으켰다.

남조선당국의 공식발표에 의하더라도 350명이 죽고 20만 7 000여명의 수재민이 났으며 3만 6 700여채의 살림집이 파괴되는 참상이 빚어졌다. 피해지역에서 거처할데 없이 한지에 나앉은 수재민들은 당장 먹을것이 없어 아우성쳤다. 게다가 수재에 뒤따른 병마가 수재민들의 생명을 위협하였다.

그런데도 남조선당국자는 애타게 구원을 기다리는 수재민들을 외면하고 일본행각의 길에 올랐다. 남조선당국의 이러한 반인민적처사로 하여 수재민들은 커다란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무렵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기막힌 참상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남조선인민들이 흉년으로 불행을 당할가봐 걱정하시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남조선인민들이 물란리로 고통을 겪을가봐 잠 못 이루시던 그이이시였다.

남조선인민들이 당한 재난을 두고 깊이 마음쓰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남녘의 수재민들에게 혈육의 정이 깃든 구호물자를 보내줄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9월 8일 남조선수재민들에게 5만석의 쌀과 50만m의 천, 10만t의 세멘트와 기타 의약품들을 보내줄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결정이 방송, 통신으로 세상에 발표되였다.

북에서 구호물자를 보내준다는 소식을 들은 남녘동포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한피줄을 이은 이북형제들만이 이남의 리재민들을 구원할수 있다고 환영하였으며 서방의 출판물들까지도 《100%로 끓는 동포애의 산물》이라고 평하였다.

공화국에서 취한 구제조치는 120여년을 헤아리는 국제적십자구제운동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큰 규모의것이였다. 당시까지의 적십자구제운동 최고기록이 1983년에 수해를 입은 인디아에 스웨리예가 제공한 75만US$였는데 공화국의 구호물자는 미국돈으로 환산하면 1 800만US$로서 그의 24배에 달하는 방대한 량이였다.

그 당시 가까운 동맹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과 일본이 남조선당국에 제공한 구제금은 각기 2만US$와 10만US$였다.

고결한 동포애가 낳은 이 구호물자를 두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뭐니뭐니해도 민족이 제일이라고, 도와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려울 때 형제라는 말이 있지만 친형제도 구제 못하는 남녘동포들의 재난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시는 그이이시였다.

이러한 동포애의 조치가 있어 판문점에서는 분렬이후 처음으로 공화국의 구호물자를 인도인수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북남적십자단체들의 실무접촉이 있었고 북측의 진지하고 아량있는 노력에 의하여 구호물자를 받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던 남측은 구호물자를 접수하기 위해 항구와 판문점으로 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모든것을 민족우선, 민족중시의 관점과 립장에서 대해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는 일을 처음부터 단순한 적십자단체의 인도주의적사업으로만 보지 않으시고 한피줄을 나눈 공화국의 전체 인민이 도탄에 빠진 남녘동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는 일로 여기시였다.

9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무원(당시)의 책임일군들로 중앙지휘부를 조직해주시고 구호물자를 준비하고 인도하는 사업에 모든 힘과 가능성을 다 발동시켜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는것은 한피줄을 나눈 동포애의 마음을 보내는것인데 거기에는 한점의 티도 없어야 한다고, 알알이 고르고 오리오리 다듬어서 보내야 한다고 하시며 세멘트도 의약품도 제일 좋은것으로 준비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몸소 구호물자생산현장을 돌아보시며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는 원호물자를 비가 온다고 하여 늦추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제정된 기간안에 무조건 보내줄데 대한 뜻깊은 말씀을 주시였다. 이와 함께 준비된 구호물자를 지정된 장소에 제때에 실어가기 위해 근 2 000량의 화차와 수천대의 화물자동차를 동원할데 대한 특별지시를 하달하시였다.

그 은정에 실려 2~3일사이에 5만석의 쌀, 50만m의 천, 10만t의 세멘트, 10여종에 759지함에 달하는 의약품이 개성과 해주, 흥남, 원산에 집결되였고 10만t의 세멘트를 14척의 대형짐배에 싣는 작업도 한주일동안에 완료되였다.

9월 28일 드디여 근 40년간의 분렬사상 처음으로 북녘인민들의 뜨거운 혈육의 정을 담은 화물자동차와 대형짐배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굽이쳐갔다. 그날은 민족사에 특기할 력사적인 날이였다.

지척이면서도 만리이역인양 떨어져있던 북과 남의 지맥이 련결되고 민족의 혈맥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경사의 날에 온 겨레는 감격과 기쁨으로 설레였다.

수재민 호당 250㎏의 쌀과 17m씩 차례질수 있는 천, 3만동의 살림집을 건설할수 있는 세멘트를 비롯한 구호물자는 남녘의 수재민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생명수였고 재생의 불사약이였다.

서울에서는 수재를 입지 않은 사람들까지 북녘겨레들의 지극한 마음을 받아안고싶어 구호미를 받은 수재민들을 찾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북의 세멘트로 집을 지어 통일의 정각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동포애는 이처럼 두텁게 얼어붙었던 분렬장벽의 얼음장을 뚫고 남녘겨레들의 가슴속에 재생의 봄을 가져다주었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겨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분렬로 인하여 남녘동포들에게 주고싶어도 줄수 없었던 그 사랑, 그 은정을 공화국에 들어오는 동포들에게 고스란히 안겨주시였다.

물론 남녘동포들이 공화국에 들어오게 되는 경위와 그들의 사회계급적처지는 같지 않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공화국경내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차를 밟아 공화국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공화국을 동경하여 의거를 단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그들속에는 정치인, 지식인, 경제인, 로동자, 종교인, 군인, 학생 등 각계각층이 망라되여있었으며 그들의 사상과 정견도 각이하고 공화국에 대한 인식정도와 감정도 다 달랐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 경위가 어떠했든지간에 계급과 계층, 사상과 정견에 관계없이 그들모두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65(1976)년 남조선어선 《신진3》호성원들이 받아안은 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감동깊이 전해주고있다.

《신진3》호가 항로미실로 공화국경내에 들어온 시기는 미국의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하여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

나라의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아 초긴장상태에 들어간 때였던것만큼 남조선어민들도 북측에서 자기들의 불법침입행위를 두고 어떤 조치를 취하겠는가 몹시 걱정하고있었다.

해당 일군들로부터 남조선어선 《신진3》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사건은 미제와의 문제이고 《신진3》호는 우리의 혈육인 남조선인민들과의 문제라고 하시면서 남조선어민들을 동포애의 정을 가지고 성의를 다해 돌봐주도록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도 남조선어민들의 건강상태와 생활조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며 그들이 사소한 불편도 없이 지낼수 있도록 온갖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절세의 위인의 사랑어린 조치가 있어 오랜 세월 몸에 병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치료비가 없어 병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던 기관장을 비롯한 몇몇 선원들은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고질병을 완전히 털어버리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집을 떠나 추석을 맞는 어민들의 심정을 헤아리시여 추석날에는 색다른 음식을 푸짐히 차려주도록 하시였고 체육과 오락도 조직하여 그들이 유쾌하게 지낼수 있도록 해주시였다.

그후 《신진3》호가 남으로 돌아가게 되였을 때에는 풍랑에 파손된 고기배를 새 배처럼 말끔히 고쳐주게 하시였고 한끼만 먹으면 가닿을 길이지만 물길이니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쌀과 부식물을 풍족히 실어주라고, 가다가 회도 쳐먹을수 있게 식초와 고추장 같은것도 잊지 말고 넣어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담긴 식료품들을 받아안은 선원들은 그것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였다.

한 어민은 자기들을 바래주기 위하여 부두에 나온 일군의 손을 잡고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일선생님께서 사람값에도 못 들었던 저희들에게 그처럼 하늘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실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여기를 떠나지만 마음만은 두고갑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이것은 그 한사람만이 아닌 어민모두의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에 넘친 말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남으로 돌아가는 날 그 사랑, 그 은정이 고맙고 뜨거워 원산앞바다를 여섯번이나 돌고서야 떠나갔다.

그것은 우리 겨레는 떨어져서 못살 피와 정으로 이어진 하나의 민족임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남녘동포들을 위하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그가 누구이든 차별없이 꼭같이 흘러들었다.

언제인가 공화국에 왔던 남조선의 한 기업가가 한 일군에게 백두산들쭉술을 많이 살수 있게 해줄것을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는 들쭉술에 홀딱 반했다면서 자기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다. 그러면서 연회때 들쭉술을 그저 보통술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마셔보니 그 향기가 어찌나 이채롭고 감미로운지 정신이 핑 돌 지경이였다, 거뜬하고 혈액순환이 잘되고 아주 좋은 술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이름난 좋은 술은 다 마셔보았지만 백두산들쭉술이 제일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그리고는 들쭉술이 백두산에서 나는 특산품이여서 그런지 더 마음이 끌린다고 하면서 남에 있는 친지들에게 꼭 이 술을 맛보이고싶다고 덧붙였다.

그날 저녁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가져가게 하라고, 고향방문왔는데 돈을 받겠는가, 마음껏 가져가게 하라고 하시며 포장도 잘해서 보내주자고 하시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추석명절을 맞는 남녘의 각계층 인사들에게 보내주신 칠보산의 첫물송이버섯에 대한 이야기는 그이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자애로운가를 다시금 돌이켜보게 한다.

동해바다가에 우뚝 솟아 함북금강으로 불리우는 칠보산, 일곱가지 보물을 가지고있다고 하는 이 명산의 명물들가운데는 우리 나라 버섯가운데서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송이버섯도 있다.

소나무의 상긋한 냄새와 달짝지근하면서도 쫄깃쫄깃한감을 주는 부드러운 맛으로 하여 예로부터 소문난 칠보산송이버섯이 장군님의 민족애와 더불어 더 유명해지게 되였다.

주체89(2000)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선시찰의 길에서 인민군군인들이 칠보산에서 첫물송이버섯을 많이 땄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남측성원들이 연회상에 오른 송이버섯료리를 보고 부러워하기에 가을에 가서 칠보산에서 나는 첫물송이버섯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데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평양상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남측대표단일행을 위해 국방위원회명의로 차린 오찬회석상에서 남측 당국자의 부인은 연회탁에 오른 송이버섯료리를 보고 귀한것이라고 부러워하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평양에 온 모든 남측 귀빈들에게 칠보산에서 나는 첫물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내주겠다는 뜻깊은 약속을 하시였던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이야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에 송이버섯을 보내줄 때 력사적인 평양상봉에 참가하였던 남측성원들은 물론 6. 15공동선언발표직후 평양에 왔던 현대그룹명예회장 정주영일행과 남조선언론사대표단 성원들에게도 보내주며 한사람당 몫도 1~2㎏정도가 아니라 10㎏씩 하면 그들이 대단히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200여명의 남측성원들모두에게 각각 10㎏씩 주자고 해도 2t이상의 송이버섯이 있어야 하는데 그 수량도 엄청났거니와 국제시장가격으로 볼 때 그 값도 약차한것이였다.

놀라움에 서로의 얼굴만 마주보고 서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호탕하신 어조로 왜 그렇게 놀라는가, 줄바에는 아예 통이 크게 남조선의 현직 《국회》의장과 여야당 당수들에게까지 한아름씩 안겨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송이버섯포장문제, 수송경로 및 방법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제2차 북남상급회담에 참가한 남측 수석대표일행을 접견하신 자리에서도 장군님께서는 우리 국방위원회에서 지금 남쪽에 보낼 칠보산송이버섯을 준비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송이버섯가운데서 가장 좋은것이 칠보산송이버섯인데 다른 나라에도 이름났다는것, 송이버섯이 비록 소비하면 없어지는것이지만 그래도 우리 북쪽의 마음과 향기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보낸다고 하시면서 이제 한사람당 10㎏씩 추석 전날에 보내주겠으니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친지들과 세간난 자식들에게도 나누어주어 명절날 쓰게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조선인민군 대장이 2000년 9월 11일 사랑의 송이버섯을 비행기에 싣고 분렬의 장벽을 넘어 서울에 나가게 되였다.

남측 각계 인사들의 참가밑에 진행된 송이버섯선물전달식에서 조선인민군 대장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녘의 평양상봉수행원들과 언론사대표단 성원들,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일행 등 267명에게 보내주신 송이버섯을 1인당 10㎏씩 전달하였으며 그밖에 평양에 와보지 못한 64명의 각계 인사들에게도 똑같이 송이버섯을 정중히 전달하였다.

추석을 맞으며 민족의 향취그윽한 칠보산의 첫물송이버섯을 받아안은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은 송이송이마다에 슴배여있는위대한 장군님의 고결한 인정미와 하늘같은 민족애가 뜨겁게 닿아와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송이버섯을 보내주시여도 한두번 맛보는 정도가 아니라 한지함씩 통채로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크나큰 도량에 온 남녘땅이 경탄하였다.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생각하시며 그토록 마음써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겨레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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