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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2. 4) 민주의 요람을 지켜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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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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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2.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여 인민의 새 나라를

4) 민주의 요람을 지켜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

 

해방후 민주건설의 5년이라는 기간은 짧았던가 길었던가.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이 5년이라는 기간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해방은 인민들에게서 식민지노예살이의 멍에를 끊어버렸고 민주개혁과 공화국의 창건은 그들을 나라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의 지위에 올려세웠다. 이 희한한 현실앞에서 사람들은 반만년민족사에 처음으로 도래한 인민의 좋은 세상을 더 훌륭히 가꾸고 꽃피워갈 일념으로 일하고 또 일하였다.

인민들은 행복한 새세상이 전쟁의 불바다에 잠기리라는것을 아직은 다는 모르고있었다.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표면화된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적야망은 이무렵에 이르러 더욱 로골화되고있었다.

미제는 《해방자》의 탈을 쓰고 조선반도의 남쪽을 점령한 첫날부터 군사적침공에 의한 전쟁의 방법으로 전조선을 강점하려는 모험에 매달리였다.

도서 《미국의 극동군사전략》의 저자 하야시 가쯔야는 자기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웨드마이어중장(장개석의 군사고문-인용자)은 <한국>에서의 군사기지화계획진행정형을 시찰한 뒤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 조선의 통일과 독립은 미국의 전반적리익에 중대한 위협으로 되므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 군사적점령의 범위도 전조선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웨드마이어 보고서의 결론은 실천에 옮겨졌다. 이것이 조선전쟁이였다.》(일본도서 《미국의 극동군사전략》 1965년)

이렇게 조선인민은 미제의 탐욕적인 침략정책에 의하여 전쟁을 강요당하게 되였다. 3년간의 전쟁은 조선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불행을 들씌웠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조선인민이 수난자의 운명만을 겪게 된것은 결코 아니였다. 준엄하였던 조국해방전쟁에서 인민은 더욱 강해졌고 굳게 단결되였으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제를 타승하고 내리막길에 처넣은 영웅적조선인민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제와 남조선괴뢰군은  38°선 전 지역에 걸쳐 불의의 북침공격을 개시하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엄중한 위험에 직면하게 된 그 시각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지체없이 내각비상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적들의 대병력이 북으로 밀려오고있는 준엄하고도 절박한 현실앞에서 내각성원들은 누구라 없이 심각한 우려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였고 회의실분위기는 전례없이 엄숙하였다.

바로 이때 팽팽하게 긴장된 회의실의 공기를 뒤흔들며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려왔다.

《… 놈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소.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는것이였다.

회의실 주석단에 나오신 수령님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환하신 얼굴로 장내를 둘러보시고나서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알기를 우습게 안다, 승냥이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과 같이 조선사람을 몰라보고 덤비는 놈들에게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군림한 미제를 무분별하게 날뛰는 한갖 승냥이로 보시고 몽둥이찜질로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이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배짱과 담력은 실로 백두산을 주름잡으며 왜적을 벌벌 떨게 한 백전로장의 기개 그대로였다. 팽팽한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듯 회의실의 긴장한 분위기는 순간에 풀리고 승리에 대한 신심이 차넘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엄혹한 시각에 우리가 만일 싸우기를 주저한다면 우리 인민은 또다시 망국노의 운명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전체 인민이 총동원되여 적들의 무력침공을 좌절시키고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가 무력침공자들을 소탕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6월 26일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방송연설에서 전체 인민군대와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조직동원하기 위한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전체 인민이 총동원된 정의의 전쟁으로 미제침략자들을 물리치자는것이 전쟁수행과 관련된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의도였다.

그것은 민주의 새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맛본 인민이 그 행복을 목숨바쳐 지켜내리라는 확신, 인민에 대한 절대적믿음에 기초한 력사적선언이였으며 전민을 조국수호전에로 부르는 호소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각계각층 인민들이 앞을 다투어 전선으로 탄원하였다. 전쟁이 일어난 후 며칠사이에 74만여명의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이 전선으로 나갔으며 몇주일후에는 그 수가 80여만에 이르렀다.

철도역들은 날마다 전선으로 떠나는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로 붐비였다.

후방에 남은 근로자들도 적을 족치는 전투원의 심정으로 증산투쟁에 몸을 바쳤다.

그들은 로동시간을 연장하여 3교대제를 2교대제로 개편하였으며 전선돌격대운동, 청년작업반운동, 2인분, 3인분 초과생산운동 등 여러가지 형태의 전시증산운동을 벌리였다.

전시생산과 전선원호를 위한 투쟁은 농촌에서도 어촌에서도 벌어졌으며 여기에는 녀성들과 어린 학생들로부터 늙은이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적극 참가하였다.

《모든것을 전쟁승리를 위하여!》라고 하신 수령님의 전투적구호를 높이 받들고 전당, 전군, 전민이 떨쳐나섰다.

인민을 믿으시고 그들을 전쟁승리에로 불러일으키신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음으로 하여 적들이 선전포고도 없이 38°선 전 지역에 걸쳐 불의의 공격을 감행하여왔음에도 조선인민군은 원쑤들을 맞받아 즉시 반공격에로 넘어갈수 있었다.

반공격으로 넘어간 인민군부대들은 38°선이북으로 기여든 적들의 침공을 완전히 저지시키고 질풍같이 남으로 진격하였다.

이것은 무력침공을 개시하기만 하면 38°선을 삽시에 돌파하여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으며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떠벌이던 적들에게 안기는 무서운 보복타격이였으며 무자비한 징벌이였다.

전전선에 걸쳐 총반공격에로 넘어간 인민군부대들은 3일만에 서울을 해방하고 적의 주력집단을 포위섬멸하였으며 공격속도를 더욱 높여 7월 4일에는 제2근거지라고 하던 수원을 해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담한 작전과 령활한 지휘밑에 오산계선에서 미제침략군의 첫 지상부대를 괴멸시킨 인민군대는 금강계선의 《불퇴의 방어선》을 단숨에 허물어버린데 이어 재빠른 우회기동과 전면포위전술로 미제의 《상승사단》을 통쾌하게 전멸시키고 적들의 《림시수도》인 대전을 해방하였다.

지상전선에서뿐아니라 해상과 공중에서도 전쟁국면이 뒤집혀졌다.

조선인민군 해병들은 7월 2일 새벽 주문진앞바다에서 자그마한 어뢰정 4척으로 《움직이는 섬》이라고 자랑하던 미제의 1만 7 000t급 중순양함을 격침시키고 1만 2 000t급 경순양함을 격파하는 세계해전사에 류례없는 빛나는 위훈을 세웠다.

용감한 인민군비행대들은 《공중요새》라고 뽐내던 미제의 《B-29》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수십대의 최신형전투기와 폭격기를 격추, 격파하였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인민군장병들은 적의 숨통을 옥죄이면서 승리적인 전진을 계속하여 전쟁이 개시된지 불과 한달 반사이에 남반부지역의 90%이상과 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하였다.

인민군대의 강력한 타격에 의하여 좁은 《부산교두보》에 갇히운 적들은 공포와 비관과 절망속에 허덕이게 되였다. 세상사람들은 청소한 조선이 세계를 정복하려는 강대한 미국에 대하여 력사상 가장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게 하는데 대하여 의혹과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제놈들의 《강대성》만을 믿고 조선사람을 얕잡아보았지만 놈들을 맞받아나선 그들은 망국노의 멍에를 지고 시들어가던 어제날의 조선사람이 아니였다.

민주의 새 제도에서 나라의 주인으로 자라난 우리 인민은 해방후 비록 5년밖에 안되는 짧은 세월이지만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튼튼히 틀어쥐고 자신이 지닌 력사적사명을 심장으로 깨달은 인민이였다.

원쑤들은 위대한 령도자의 두리에 뭉친 인민이 얼마나 강의한 의지를 지니였으며 얼마나 거대한 힘을 발휘할수 있는가를 보지 못했다.

인민군대의 련속적인 타격에 의하여 조선에서 쫓겨나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된 미제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조선을 강점하려는 야망을 기어이 실현해보려고 막대한 병력과 전투기술기재를 동원하여 침략전쟁의 규모를 더욱 확대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태평양방면에 배치하였던 저들의 륙해공군 총병력과 지중해함대의 일부, 미국본토의 지상군과 영국을 비롯한 추종국가군대까지 모두 합쳐 30만에 가까운 병력을 조선전선에 더 들이밀었다. 미제는 증강된 대병력으로 락동강계선에서 《총공세》를 시도하는 한편 9월 중순 5만여명의 대병력과 수백척의 함선, 약 1 000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적들은 인천, 서울, 원주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차단하고 전선의 인민군주력부대를 포위소멸하며 단시일내에 전조선을 강점하려고 획책하였다.

적의 대집단이 인천, 서울지구에 침입하고 락동강계선에서 적들이 대대적인 반공격으로 이행함으로써 전선의 형편은 공화국에 매우 불리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조직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에로 인민군대와 전체 인민들을 조직동원하시기 위하여 주체39(1950)년 10월 11일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라는 력사적인 방송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방송연설에서 인민군장병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시면서 조국의 촌토를 사수하며 도시와 농촌을 수호하기 위하여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바쳐 용감히 싸울것을 호소하시였다. 그리고 전체 인민들은 한대의 기관차, 한대의 차량, 한알의 쌀도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적강점지역들에서는 빨찌산투쟁을 광범히 전개하여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드놀지 않는 신념으로 원쑤격멸에 떨쳐나섰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엄혹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으며 많은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 공화국북반부의 넓은 지역을 일시 강점한 미제침략자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신천군 한개 군에서만도 군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 0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가장 악랄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였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 인민을 결코 놀래울수도 굴복시킬수도 없었다.

인민군대와 인민들은 미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과 복수심을 백배, 천배로 벼리며 도처에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겨주었다.

항일투사 최현을 비롯한 우수한 지휘관들의 지휘밑에 제2전선부대들은 황해도와 강원도, 평안남도 등 중부조선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적후투쟁을 과감히 벌려 여러 지역들을 해방하고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구원하였으며 적의 보급선을 끊고 수많은 적유생력량과 전투기술기재에 막대한 손실을 주었다.

인민들도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지하투쟁과 유격투쟁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적강점지역의 애국적인민들과 청년들은 물론 소년들까지 일떠서 유격대와 청년근위대, 소년근위대를 뭇고 적들의 지휘부와 병영을 들이치고 보급선을 끊어버렸으며 감금된 인민들을 구출하였다.

준엄한 싸움의 나날에 우리 인민들은 조국의 소중함을 더욱 가슴깊이 새기게 되였으며 그 어떤 시련도 뚫고나갈줄 아는 강의한 인민으로 성장하였다.

주체39(1950)년 11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에 전 전선에서 총반공격으로 넘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인민군대의 재진격의 함성이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전선서부의 인민군부대들은 청천강지역의 여러곳에서 적을 대량적으로 포위섬멸하고 도망치는 적들을 맹렬히 추격하여 파죽지세로 밀고나갔으며 전선동부의 아군련합부대들은 장진호반일대에서 미제침략군을 포위섬멸하고 함흥방향으로 성과를 확대하였다. 제2전선부대들도 38°선계선을 장악하고 적의 증원부대들을 때려부시는 동시에 강력한 배후타격전을 벌려 적들을 격멸소탕하였다.

한편 인민유격대들도 인민군부대들과의 긴밀한 협동밑에 적의 지휘부, 통치기관, 탄약저장고, 정거장, 통신지휘기관들을 기습소탕하고 고향마을을 해방하였으며 패주하는 적들의 퇴로를 끊어버리는 투쟁을 활발히 벌리였다.

패주하는 적들은 가닿는 곳마다에서 길목이 막혀 갈팡질팡하다가 포위섬멸전의 불바다속에 휘말려들어 무자비한 징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노호하는 격랑우에 떠서 몸부림치던 가랑잎들이 길길이 솟는 파도속에 삼키워버리는 모양과도 같았다.

지어 미제침략군 8군사령관 워커까지도 아군의 포위망에서 빠져나가려고 헤덤비다가 졸병들과 함께 황천객이 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은 12월말에는 적들이 일시 강점하였던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완전히 해방하였으며 38°선이남까지 전과를 확대하였다.

준엄하였던 1950년 한해가 저물어가는 조국강산에 만세의 함성이 그칠줄 몰랐다.

청소한 공화국을 요람기에 말살하고 전조선을 삼키려던 미제국주의자들의 강도적침략계획은 인민군대와 전체 조선인민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여지없이 파탄되였다.

조선에서 돌이킬수 없는 참패를 당한 미제는 공화국의 위력과 잠재력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되였다.

이해 《감은절》(11월 23일)전으로 전조선을 강점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맥아더는 미국대통령 트루맨에게 보낸 보고에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전쟁에 직면했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부과된 권한과 힘으로는 도저히 사태를 수습할수 없다고 우는소리를 줴쳤으며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랫들리는 12월에 미국회에서 《우리들은 조선에서 잘못 고른 시각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적과 싸우고있다.》고 비명을 질렀다.

미제를 질겁케 하는 공화국의 위력과 잠재력, 그것은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를 지켜 총대를 틀어잡고 일떠서 강철의 령장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일하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력한 대오로 자기의 모습을 일신시킨 군대와 인민의 단합된 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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