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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2. 4) 민주의 요람을 지켜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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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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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2. 민주주의기발아래 뭉치여 인민의 새 나라를

4) 민주의 요람을 지켜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미제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는 여지없이 깨여졌다.

미제침략자들은 전쟁 1년동안에 군사, 정치, 도덕적으로 심대한 패배를 당하였다. 미제는 저들의 침략무력과 남조선괴뢰군 그리고 추종국가고용병들을 내몰아 가장 야수적이고도 잔인한 전쟁방법으로 공화국을 일거에 점령하려고 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입은 손실의 절반에 달하는 막대한 유생력량과 전투기술기재를 잃고 전쟁을 일으켰던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였다.

미제는 극도로 당황하였으며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렸다.

미제침략자들은 저들의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력을 더욱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면서 《하기공세》, 《추기공세》, 《김화공세》 등 어마어마한 군사적공세를 련이어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전쟁은 류례없이 격렬하고 치렬하게 진행되였다.

그러나 군사적압력과 공세가 심화될수록 인민군대는 더욱더 용기백배하여 조국의 촌토를 결사수호하였다.

가렬한 싸움으로 날이 새고 저무는 혈전속에서도 인민군장병들 누구나의 가슴마다에 드팀없는 신념으로 간직된것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충정과 열렬한 조국애였다.

나의 고지운동의 선구자인 한계렬영웅의 위훈이 그것을 보여주고있다.

1951년 4월 중순 한계렬이 지휘하는 소대는 1044. 9고지 북쪽 무명고지에서 적의 반돌격을 물리치기 위한 방어전투를 진행하고있었다. 불과 12명밖에 안되는 적은 인원으로 적 1개 대대력량의 7차례에 걸치는 공격을 물리쳤다. 수차에 걸치는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고나니 고지에는 5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전사들은 한걸음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무서운 타격에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면서도 수적우세를 믿고 검질기게 달려들었다.

소대장 한계렬은 고지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내가 살아있는 한 적들은 이 고지에 한걸음도 올라오지 못할것이다. 조국의 고지는 모두다 나의 고지이다. 이 고지와 그리고 나의 뒤에는 수많은 고지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물러설 고지는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고지를 지켜싸웠다.

최후의 순간에 그는 《동무들,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여주시오.》라고 전우들에게 부탁하였다. 그리고는 허리에 찬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여 두손에 정중히 받쳐들고 간신히 《최고사령관동지께 이 권총을…》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그의 마지막말은 전우들의 심금을 울리며 그들을 영웅적위훈에로 고무하였다. 고지의 방위자들은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 나의 고지를 피로써 사수하자!》라고 웨치면서 고지를 목숨으로 지켜냈다.

나의 고지운동은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무한한 충직성과 숭고한 조국애에서 흘러나온 백절불굴의 정신과 대중적영웅주의의 발현이였다.

영웅의 절절한 마지막소원은 드디여 실현되였다.

주체40(1951)년 6월 어느날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계렬영웅이 사용하던 무기를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영웅의 넋이 어려있는 무기를 이윽토록 눈여겨보시다가 한계렬동무는 나의 고지운동의 첫 봉화를 든 용감한 영웅이라고 높이 치하하시였다.

영광이면 이보다 더 큰 영광,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어디에 있으랴!

영웅의 삶은 비록 짧았지만 그는 수령의 사랑속에 영생하는 전사로 되였다.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

이 말은 싸우는 전선의 수많은 고지마다에 끝없이 메아리쳤다.

중기사수 조군실영웅은 적과의 싸움에서 왼쪽다리와 두팔에 심한 부상을 입고 몸을 가늠할수 없게 되자 마지막힘을 모아 턱으로 중기관총의 압철을 눌러 적을 소멸하였으며 강호영영웅은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고 몸을 가늠할수 없게 되자 입으로 수류탄을 물고 적진속으로 굴러내려가 폭파시키고 최후를 마쳤다.

1211고지방위자들이 발휘한 대중적영웅주의는 나의 고지운동의 극치를 이루었다.

전선동부에 위치한 1211고지는 전략작전적으로 매우 중요하였다.

이 고지를 지켜내는가 지켜내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선동부는 말할것도 없고 전 전선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고리로 되고있었다. 만일 1211고지를 적들에게 내여주게 되면 금강산지구를 비롯한 많은 지역을 잃어버리게 되고 원산까지도 내주어야 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최대의 포격》, 《최대의 폭격》을 떠벌이면서 1211고지에 하루에  3만~4만발의 포탄과 폭탄을 퍼부었으며 수많은 땅크의 엄호밑에 인민군방어진지를 련속 공격하였다. 하늘을 가리우던 울창한 산림이 모조리 불타고 바위도 부서져 가루가 되여 흩날렸으며 땅이 타번지였다. 산토끼와 다람쥐마저 몸둘데가 없어 전사들의 품으로 뛰여들었다. 1211고지는 이리떼처럼 밀려드는 적들과의 치렬한 피의 격전속에서 해가 저물고 날이 밝았다. 그러나 적들의 그 어떤 발악도 방위자들의 억센 투지를 꺾을수 없었다.

그들은 모임을 가지고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조국의 고지를 영예롭게 사수할것을 굳게 맹세다졌으며 수령님께 자기들의 맹세를 담은 편지를 올리였다.

그 맹세문들가운데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이시여!

원쑤들은 악착스럽게 달려들고있습니다.

허나 항일의 전통을 이은 우리는 비록 몸이 천쪼각만쪼각나는 한이 있어도 한놈의 적도 올려놓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겐 죽어 묻힐 땅은 있어도 살아 물러설 땅은 한치도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습니다.

당신의 전사들이 서있는 한 1211고지는 영원히 조국의 고지로 남아있을것입니다.》

18살의 민청원 리수복분대장은 반돌격을 앞두고 자기의 수첩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해방된 조선의 청년이다. 생명도 귀중하다. 찬란한 래일의 희망도 귀중하다. 그러나 나의 생명, 나의 희망, 나의 행복, 그것은 조국의 운명보다 귀중치 않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자기의 청춘, 자기의 생명보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더 귀중히 여기는 정신력, 그것은 1211고지방위자들과 전체 인민군전투원들 그리고 조선청년모두의 사상정신적풍모이기도 하였다.

1211고지방위자들은 모두가 자기들의 결의를 지켜 청춘을 바쳐 용감하게 싸웠다.

무명고지릉선에서 리수복영웅은 불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승리의 진격로를 열어제꼈고 한 통신병은 끊어진 통신선을 자기의 혈맥으로 이어 부대의 지휘통신을 보장하였으며 치명상을 입은 한 전투원은 생명의 마지막순간에 김일성장군 만세!》를 웨치며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진속에 굴러들어 육탄으로 적을 소멸하였다.

취사병들도, 위생병들도 그리고 담가대원들도 싸우는 전투원들을 도와 영웅적투쟁을 벌리였다.

후방인민들도 《한발의 포탄, 한알의 쌀이라도 더 많이 1211고지에 보내자!》라는 구호밑에 우박치는 탄우속을 뚫고 탄약과 식량을 나르고 부상자들을 후송하였다. 군대와 인민은 말그대로 한덩어리가 되여 미제침략자들을 쳐부시였다.

1211고지의 영웅적방위자들은 전투기간 수만명에 달하는 적의 유생력량을 살상포로하였으며 수많은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로획파괴하였다.

1211고지전투에서 계속 녹아난 적들은 제놈들의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강물을 이룬 이 고지를 쳐다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상한다고 하여 《상심령》이라고 불렀고 혹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듯 하다 하여 《단장령》이라고 하였으며 이 고지일대의 골짜기들을 그속에 들어서기만 하면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하여 《함정골》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1211고지가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무리죽음터로 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미제는 《기술적우세》가 전쟁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떠들던 그 입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무기도 오늘 전선동부에서는 무능한 기구로 되였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러한 비명소리는 비단 1211고지만이 아닌 하늘과 바다 등 정의의 수호자들이 지켜선 조선의 그 어디에서나 터져나왔으며 날이 갈수록 적들의 염전의식을 증폭시키고 전쟁의욕을 허물어버리는 촉매제로 되였다.

1953년 1월 미제가 《신공세》의 서막으로 벌리였던 정형고지전투가 그것을 웅변으로 실증해주고있다.

그때 미제침략자들은 인민군 한개 련대가 방어하고있는 이 계선에 무려 3개 사단을 동원하고 자기들이 인민군대를 치는 《모범전투》를 벌린다고 떠벌이면서 저들의 륙군, 공군의 고위급장성들과 추종국가의 공사, 령사, 전체 《유엔군》 종군기자들까지 끌어내다가 《구경》시켰다.

만사람의 이목이 쏠린 속에 진행된 정형고지전투에서 인민군용사들은 적의 《파도식》공격을 물리치고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가 적들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안기였다. 그리하여 정형고지《모범전투》는 수치스러운 참패로 끝나고말았다.

이 전투에 대하여 미국의 한 출판물은 《클라크와 밴플리트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한 언덕을 얻기 위하여 하루 30만발의 포탄을 쏘았고 가장 우수한 기계화병력을 투입하였으나 완전히 실패하였다.》라고 썼다.

정형고지전투의 실패는 적들내부에 수습할수 없는 혼란을 빚어냈다. 적들은 이름없는 자그마한 고지에 대한 공격에 필요한 모든 군종, 병종과 최신무기를 다 동원하고서도 실패하였는데 하물며 전 전선에서 대규모적《공세》를 벌린다면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고 하면서 옥신각신하였다. 적들은 《신공세》를 벌린다면 《5만 내지 그 이상》의 주검을 낼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량면에서 협격을 받고 최후의 한사람까지 소탕당할 위험성이 있다.》고 비명을 올렸다.

궁지에 빠지게 된 미제의 전쟁우두머리들은 부득이 《신공세》기도를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한 인민군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불굴의 영웅적기상, 그것은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정에 뿌리를 둔 결사수호정신의 발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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