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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3)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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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1-23

본문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중에서

 

4. 민족의 숙원 통일을 위하여

3)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40여년간에 걸치는 일본제국주의의 악독한 식민지통치의 후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의 많은 성원들은 나서자란 정든 고향을 떠나 머나먼 이역땅에 가랑잎처럼 흘러가 온갖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피눈물나는 고역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로 하여 우리 민족에게 해외동포라는 낱말도 생겨나게 되였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나라는 비록 해방되였으나 미국의 남조선강점과 그로 인한 민족분렬은 그들에게 귀환의 넓은 길을 열어줄수 없었다. 이는 수난많은 우리 민족이 안고있는 또 하나의 비극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조국이 있고 민족의 본태가 살아있는 정든 산천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은 비록 이국에서 살고있지만 언제나 조국을 그리워하고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고있는것이다.

어느 한 시인은 《나의 조국》이라는 자기의 시에서 조국의 그리움을 이렇게 절절히 노래하였다.

 

조국이여!

너는 무엇이기에

가만히 네 이름 부르면

가슴은 터질듯 긍지로 부풀고

눈굽은 쩌릿이 젖어드는것이냐

 

어찌하여 때로 이국의 거리를 거닐다가도

문득 솟구치는 그리움에

마음은 한달음에 달려와

너를 안는것이냐

 

정녕 조국은 모든 민족성원들의 삶의 요람, 정든 집뜨락, 다심한 어머니의 사랑이기에 해외동포들은 언제나 조국의 품을 그리워하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념원과 뜻을 헤아려주신분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외에서 사는 모든 동포들을 혈육의 정으로 한품에 안아주시고 그들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주시였으며 온갖 사랑을 다 돌려주시였다.

특히 재일동포들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집떠난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친부모의 심정 그대로였다.

주체61(1972)년 7월 어느날 새벽 5시를 가까이 할무렵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일군을 반겨맞으신 그이께서는 요즘 어떤 대표단들이 조국방문을 신청하여왔는가고 물으시였다.

밤새워 일을 보신 이 새벽에조차 자신의 건강보다 머나먼 이역땅에 있는 재일동포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장군님의 사랑이 그대로 어린 물음이시였다.

그 일군으로부터 조국방문을 신청하여온 방문단들의 명단을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조국방문을 신청한 단체들이 대단히 많다고, 이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방문단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가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이 방문단들의 영접사업을 어떻게 조직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선뜻 대답올리지 못하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처럼 많은 인원의 조국방문단을 받아 영접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조국에 있는 기간 그들이 사소한 불편도 없이 즐거운 나날을 보낼수 있도록 충분한 조건도 채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해당 일군들은 조국을 방문할것을 신청하는 재일동포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있었다.

일군은 조국방문을 신청해온 재일동포들의 단체들가운데서 몇개 단체만 먼저 조국을 방문하게 된다는것을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사실 해외동포들의 조국방문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하나의 추세로 되고있었다. 조국을 방문하는 해외동포들가운데는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외세의 민족분렬책동으로 말미암아 수십년동안 서로 헤여져 생사조차 알지 못하였던 아들딸을 만난 부모도 있었고 안해를 만난 남편도 있었다. 생리별을 당한 그들은 일일천추로 상봉의 날을 기다렸으며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고있었다.

동포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래왕사업을 그렇게 소극적으로 해서는 안되겠다고, 그렇게 해서야 조국에 와보고싶어하는 재일동포들의 소원을 언제 다 풀어주겠는가고, 우리가 아직은 좀 힘이 들더라도 제기된 방문단을 다 받아서 그 소원을 빨리 풀어주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조국래왕사업을 판이 크게 벌려야 하겠다고, 재일동포들이 이국땅에서 지금까지 고생을 해온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는가고, 재일동포들이 요구한다면 1년에 수십명정도가 아니라 수백명, 수천명이라도 다 맞아들이도록 하자고 교시하시였다.

재일동포들과 관련한 사업을 한시도 미룰수 없는 과제로, 그들이 안고있는 마음속고충을 무조건 풀어주어한다는것이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한량없는 사랑속에 재일동포들의 조국래왕사업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때부터 해마다 국가적인 행사들과 명절, 기념일을 맞으며 수많은 축하단과 대표단들이 조국을 찾아오고 수천명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조국을 방문하여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돌아가군 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해외동포들이 이역땅에 살면서도 언제나 조국의 향취를 잊지 않고 조국의 숨결, 조국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78(1989)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양력설을 며칠 앞둔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을 통하여 조국에 와있는 재일동포청년들의 생활정형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그들이 조국에 와서 공부하게 된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배우며 생활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며 설날을 맞으며 그들에게 무엇을 안겨주려는가에 대하여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의로 된 선물을 받도록 하려고 한다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그리고 무엇을 더 줄것이 없겠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조국에 와서 처음으로 설을 쇠게 되는 동무들이겠는데 꿩을 보내주자고, 일본에서 나서자란 그 동무들에게 조국의 꿩맛을 보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양력설명절에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이 어려있는 꿩을 받아안은 그들은 모두가 환희와 격정에 휩싸였다.

김일성주석 탄생 70돐을 맞으며 일본에 있는 어린이로부터 초급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동포자녀들에게 산삼이 3뿌리씩 차례지도록 2만 3 500뿌리나 보내주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때 동포자녀들의 부모들, 일본 전국의 모든 재일동포들과 함께 그 향긋한 삼향기를 페부깊이 간직하며 감사의 눈물짓던 일이 생생한데 오늘은 또 조국에서 맞는 양력설을 조국의 향취와 함께 영원히 추억속에 남도록 다심하게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그 한없이 자애롭고 웅심깊은 어버이정이 재일동포청년들의 가슴속에 알알하게 닿아왔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러한 보살피심속에서 새 세대들만이 아닌 전체 재일동포들이 자기 조국과 민족을 더 잘 알고 언제나 조국을 잊지 않으며 조국과 함께 숨을 쉬고 조국과 더불어 심장의 박동을 함께 하는 참된 애국자로 자라날수 있었다.

재일동포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그 사랑은 공화국이 류례없이 간고한 시련을 헤쳐나가던 엄혹한 시기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려울 때 주는 사랑이 가장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과 인정이 말라버린 거치른 이역땅에서 사는 재일동포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섰던 때인 1957년 4월부터 어버이수령님의 동포애적조치에 의하여 시작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끊기지 않고 계속되게 된데는 재일동포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이 깃들어있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엽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의 련이은 좌절과 사회주의시장의 붕괴, 미국의 날로 악랄해지는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몇해째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하여 공화국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그렇듯 형언할수 없는 어려움속에서도 재일동포자녀들에게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는 사업은 중단없이 계속되였다.

여기에는 우리가 아무리 곤난하여도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무조건 제때에 보내주어야 한다, 일본땅에 단 한명의 조선사람이 남을 때까지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온 민족이 몸부림치던 주체83(1994)년 12월에도 일군들에게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와 전통인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앞으로도 수령님께서 계실 때와 꼭같이 보내주어야 한다는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그 순간 일군들은 언제인가 교육원조비에는 총련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이 담겨져있다고, 총련에 교육원조비를 보내는것은 총련동포자녀들에 대한 수령님의 마음을 보내는것이라고 하시던 그이의 말씀이 되새겨져 가슴 후더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수령님과 꼭같으신 마음으로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민족교육을 생각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뜻밖에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은 재일본조선인중앙교육회 일군들은 격동된 심정을 터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어려울 때 위인을 더 잘 안다고 하였는데 크나큰 슬픔속에서도 자신보다 재일동포자녀들을 먼저 생각하시며 예나 다름없이 극진한 배려를 돌려주시는 우리의 장군님처럼 사랑많으시고 인정깊으신 령도자는 동서고금에 다시 없을것입니다.》

절세의 위인들의 사랑과 은정속에 1957년부터 2012년까지 157차에 걸쳐 467억 5 945만 390¥에 달하는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생명수가 되여 재일동포들에게 흘러들었기에 비록 이역땅이지만 초급학교로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민족교육의 화원이 만발하게 피여날수 있었고 오늘도 민족의 대, 애국의 대가 꿋꿋이 이어지고있는것이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리히터척도로 7.2의 파괴적인 지진이 일어나 일본의 한신, 아와지지역을 순식간에 참혹한 페허로 만들어놓았다. 이것은 1995년 국제10대뉴스의 하나로 세상을 놀래운 자연의 무자비한 파괴였다.

당시 일본의 고베로부터 오사까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휩쓴 이 지진은 1923년 간또대지진이후 처음으로 되는 큰 지진으로서 고베시를 완전한 재더미로 만들어놓았다.

그통에 고베시에 집중되여 살던 재일동포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되였다. 121명의 동포들이 목숨을 잃고 1 500여명의 동포들이 부상당하였으며 2 225호의 동포들의 집과 공장, 점포들이 완전히 불타거나 파괴되고 4 200여명의 동포들이 엄동설한에 피난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포들이 당한 이 뜻밖의 재난을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깊은 동정과 은정어린 위문전문을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앞으로 보내주시였다.

《나는 일본의 효고현을 비롯한 깅끼지방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그곳 총련조직들과 동포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는 뜻하지 않은 소식에 접하였습니다.

나는 이 불행한 소식에 접하여 한덕수의장동지를 비롯한 총련중앙상임위원회와 피해지역 동포들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문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바입니다.

나는 총련의 모든 조직들과 동포들이 더욱 굳게 단합하여 지진피해를 하루빨리 가시고 안착된 생활을 이룩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그러시고도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는 일인데 하나도 아까와할것이 없다고, 우리가 죽을 먹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위문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진피해를 입은 동포들에게 100만US$의 위문금을 보내는것과 관련하여 총련중앙상임위원회 한덕수의장에게 다시금 위문전문을 보내시였으며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에게도 20만US$의 위문금을 보내주는 인도주의적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경제가 발전했다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일본정부에 보낸 구제금이 기껏하여 50만US$미만이라는 사실과 대비해볼 때 엄청난 액수에 달한다.

사실 이 시기 공화국의 형편에서 해외동포들에게 위문금을 보내준다는것은 힘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민족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하루빨리 가셔내는것을 가장 선차적인 문제로 내세우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록 나라사정이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재일동포들에게 거액의 위문금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숭고한 민족애와 한없이 넓은 도량을 지니신 장군님께서는 총련산하 동포들뿐아니라 민단계동포들도 포함하여 모든 피해동포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위문금이 가닿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위문전문과 위문금을 받은 재일동포들은 장군님의 사랑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는 속에서도 이국땅에 사는 자기들을 념려하시여 그토록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너무도 고마워 《우리에게는 어머니조국이 있다.》,

《어버이수령님과 꼭같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품이 있다.》, 《사랑의 생명수를 보내주신 장군님의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민단동포들은 총련조직을 찾아와 자기들까지 친혈육으로 믿고 따뜻이 돌보아주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절절히 부탁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85(1996)년 1월 재일조선청년학생들을 위하여 마련해주신 뜻깊은 좌석에서 있은 일에 대한 이야기는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슬픔을 하루빨리 가셔주시기 위해 마음쓰신 그이의 은정을 가슴뜨겁게 전해주고있다.

그날 일군들에게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조국에 와서 공부는 어떻게 하고있는가, 조국에 처음 온 동무들은 몇명인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누구에게라 없이 여기에 효고현에서 온 동무가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모두가 영문을 몰라하는데 한 조선대학교 교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졸업반 학생들속에 효고현에서 온 학생이 있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 학생의 가정에서는 지난해의 한신, 아와지대진재때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그 학생이 대지진의 후과로 비록 어머니를 잃기는 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자기는 마음이 외롭지 않다고 하면서 학습과 생활을 잘하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못내 감동을 금치 못해하시며 그 학생은 훌륭한 조선학생이라고 치하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자리에 참가한 수많은 재일동포청년들가운데서 그 학생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이름이며 나이, 가정형편과 피해정형을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어머니가 잘못된 사연을 구체적으로 다 들으시고 저으기 가슴아프시여 안되였다고, 참 안되였다고 따뜻이 위로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은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학생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끝내 소리내여 흐느껴 울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시며 비록 어머니를 잃었지만 당이 있고 조국이 있는 이상 동무는 결코 외롭지 않다고 거듭거듭 격려해주시였다.

참으로 이역에 있는 자식의 운명과 장래를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보호자, 자애로운 어버이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이렇듯 안아주고 보살펴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있어 재일동포들은 찬바람부는 이역땅에서도 보란듯이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당당히 행사하고있는것이며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길에서 참된 삶을 빛내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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