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예물

도서 |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중에서 1. 일심단결을 강성국가건설의 천하지대본으로 틀어쥐시고 항일의 전구에 새기신 발자욱(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명철 작성일13-05-13

본문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중에서

1. 일심단결을 강성국가건설의 천하지대본으로 틀어쥐시고

온 사회를 선군혁명동지의 대오로

항일의 전구에 새기신 발자욱 

일심단결의 위력, 온 사회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높이자면 사람들속에서 사회주의교양, 혁명교양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전초선에는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혁명의 3세, 4세들이 서게 되였다.

혁명의 대가 바뀌여질수록 제국주의반동들은 새 세대들의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고 자본주의사상문화적침투와 심리모략책동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해왔다.

한때 미국무장관이였던 덜레스는 이전 쏘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을 1세, 2세들의 대에는 허물기 곤난하지만 3세, 4세들의 대에는 얼마든지 허물수 있다고 뇌까린바 있다.

세계 도처에서 사회주의붉은기가 펄펄 나붓기던 당시에는 한갖 망상으로 간주되였던 덜레스의 역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심각한 교훈을 안겨주는 가슴아픈 현실로 되였다.

미제의 수십년간에 걸치는 이른바 평화적이행전략에 녹아나 이전 쏘련의 크레믈리에서 붉은기가 내리워졌으며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되였다.

기고만장한 미제는 사회주의의 보루로 서있는 조선에서도 붉은기를 내리워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었다.

사회주의는 사상의 위력에 의하여 존재하며 전진하는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이다. 사회주의사상이 인민대중의 심장속에 신념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 사회주의는 무엇으로써도 허물지 못한다.

우리의 사회주의사상, 여기에서 혁명전통은 그 초석이며 근간을 이룬다. 혁명전통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간직하는가 아니면 버리는가가 판가름되며 나아가 사회주의의 운명이 좌우되게 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장구한 혁명투쟁의 길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새 세대들이 혁명의 기본력량으로 등장하는 현실적조건과 주체의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할 시대적요구에 맞게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인민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주체91(2002)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의 발원지인 백두산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전당으로 꾸리는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기 위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장을 찾으시였다.

새롭게  시작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은 백두산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중심거점으로 더 잘 꾸리시려는  장군님의 웅대한 구상에 따라 2000년부터 진행되는 사업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삼지연을 찾으신 날에 이곳에는 첫눈이 내리였다.

행운을  예고한다는  첫눈이  내린  바로  그날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자들은 꿈결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현지에서 만나뵙는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받아안았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변모된 삼지연읍거리를 부감하시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에 대한 종합안내관인 백두관을 돌아보시였다.

백두관은 장군님께서 2년전 3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나날에 앞으로 백두산지구를 꾸리는 사업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하고 교양사업도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참신하게 할데 대하여 주신 말씀을 높이 받들고 새로 건설한 종합안내봉사기지였다.

넓은 홀의 정면에 펼쳐져있는 대형반경화에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은 물론 새로 건설한 삼지연지구의 살림집들과 공공건물, 백두산지구의 도로들까지 빠짐없이 반영되여있었으며 반경화밑에 설치된 대형TV화면에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에 대한 종합안내》라는 편집물이 방영되고있었다.

반경화와 소개되는 편집물을 깊은 관심속에 지켜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넓은 홀이 드르릉 울리게 말씀하시였다.

《좋아, 잘했소! 훌륭해! 훌륭해!》

그러시고는 그전에 어느 한 나라의 도시에 가보니 거기서는 도시전경을 사판으로 형상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대형반경화로 형상하였다고, 생각을 아주 잘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관을 백두산지구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답사자들을 위한 종합안내봉사기지로 새롭게 꾸린것은 잘하였습니다. 삼지연지구에 그런 종합안내봉사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백두관에 꾸려진 안내실들을 돌아보시며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마음은 그이께 다소나마 기쁨과 만족을 드린것으로 하여 몹시 흥분되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두관이 혁명전통교양의 안내봉사기지로서의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부족점들도 바로잡아주시고 답사자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목적지향성있게 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이윽하여 밖으로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서시여 백두관의 전경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시다가 흐뭇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백두관이 아주 멋있습니다. 백두관건물형태를 장군봉과 향도봉, 해발봉, 천지의 모양을 따서 해놓으니 마치 삼지연읍에 백두산을 옮겨온것 같습니다. 착상을 엉뚱하게 잘하였습니다. 설계도 잘하였고 건설도 짧은 기간에 잘하였습니다.》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으신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건설자들의 눈굽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장군님의 말씀은 치하이기 전에 믿음이고 기대와 고무격려였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를 새롭게 꾸리도록 이끌어주셨기에 백두관은 혁명전통교양의 요구에 맞게 자기의 체모를 훌륭히 갖출수 있게 된것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혈전사가 깃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 목적이 혁명전통교양장소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하자는데 있음을 일군들의 가슴에 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뿐아니라 여러곳에 있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도 더 잘 꾸리고 그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도록 하는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6월 함경남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혁명활동사적이 깃들어있는 함경남도 북청군 송전혁명전적지를 찾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국내정치공작임무를 받으시고 1937년 7월과 9월 두차례 여기에 나오시여 국내혁명가들과 혁명조직들의 활동을 지도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사적건물과 구호나무에 대한 보존관리를 잘하고 송전혁명전적지를 통한 교양사업도 잘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또한 그해 10월에는 평안북도 창성군에 있는 창골혁명사적지를 찾으시여 사적지를 공원화하지 말데 대한 문제, 사적지를 철저히 원상대로 꾸리고 보존할데 대한 문제 등 사적지를 꾸리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지침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방방곡곡에 꾸려진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찾으시여 혁명전통교양에서 나서는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는 나날에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빛내여나가는 길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있는 강사들의 소행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주체92(2003)년 7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자강도안의 혁명사적지의 하나인 강계객주집을 찾아주시였을 때 있은 일이다.

강계객주집은 어버이수령님께서 1919년 초가을 부모님과 함께 만경대에서 중강으로 가실 때와 1923년 3월 조선을 배우기 위하여 팔도구에서 만경대로 나오시며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 그리고 1925년 만경대에서부터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 들려가신 사연깊은 집이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활달하신 걸음으로 객주집에 들어서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연풍혁명사적관 녀성관장이 인사를 올리자 그이께서는 이 동무 어디서 본 동무라고 하시며 그를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동행하였던 일군으로부터 1999년 9월 연풍혁명사적관을 돌아보실 때 만나주셨던 사적관 관장이라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맞다고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였다.

선군혁명령도의 나날에 만나주신 각계각층의 수천수만의 사람들속에서 잠간 만나주신 자기를 대번에 알아보시는 장군님의  비상한 기억력에 관장은 놀라움과 함께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관장이 이곳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5차례나 다녀가신 집이라고 해설해드리자 그이께서는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강계객주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못 잊어하시던 사적입니다. 강계객주집에 대한 이야기는 수령님으로부터 많이 들었지만 오늘 이곳에 처음 와봅니다.》

그러시고나서 안방에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들과 사적물들을 바라보시면서 수령님께서 강계객주집에 주체63(1974)년과 주체80(1991)년에 오시여 두번이나 독사진을 찍으시였다는데 사진을 보니 감회가 더욱 깊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면서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 위인중의 위인이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처럼 한생을 혁명에 바친 위대한 혁명가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수령님께서 계시였기에 오늘의 사회주의조선이 있고 우리 인민들의 행복이 있는것입니다. 조국과 혁명앞에 쌓아올리신 수령님의 혁명업적은 영원불멸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객주집의 내외부를 세심히 보아주시고 관장과 강사의 해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다 들어주시였다.

너무나도 소탈하고 인자하신 장군님의 모습에 감동되여 관장은 어려움도 잊고 그이께 말씀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 수령님께서 남기신 독사진을 우러러볼 때마다 장군님의 영상을 함께 모시고 후대들에게 교양하고싶은것이 우리들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관장의 무랍없는 청을 탓하지 않으시고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이 어려있는 객주집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독사진을 찍으시였다.

나라의 방방곡곡을 끊임없이 현지지도하시는 나날 인민군군인들을 비롯한 인민들과 함께 영광의 기념사진들을 찍어주시면서도 굳이 자신의 독사진만은 남기지 않으시던 장군님이시였다.

기념독사진을 찍으신 장군님께서는 다같이 사진을 찍자고 관장과 강사를 불러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잠시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객주집을 다시한번 둘러보시면서 《오늘 강계객주집에 와보니 인상에 남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깊은 감동을 표시하시였다.

장군님을 우러르며 관장은 장군님께서 무리하지 마시고 여기 물맑고 공기좋은 자강땅에서 쌓이신 피로를 풀어달라고 간절히 말씀올리면서 자기가 시를 읊겠다고 청을 드리였다.

시는 길지 않고 현란한 구절도 없었지만 글줄마다에는 이 세상에서 오직 장군님 한분만을 믿고 따르려는 인민들의 한마음이 흐르고있었다.

관장이 읊는 시를 끝까지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오늘 관장동무가 자신의 건강을 바라는 시를 읊었는데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혁명사적지관리를 잘하기 위하여 나서는 강령적과업을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연풍혁명사적관 관장동무와 강사동무가 강계객주집에 대한 해설을 잘하였습니다. 앞으로 일을 더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관장과 강사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그럼 가겠다고, 잘 있으라고 거듭 인사를 보내주시며 강계객주집의 대문을 나서시였다.

이렇듯 주체혁명의 만년재보인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끊임없이 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헌신의 자욱이 있어 항일혁명사적지들은 인민들에 대한 혁명전통교양에 더욱더 훌륭히 복무하게 되였다.

해마다 수많은 답사자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에 대한 답사를 하며 백두의 혁명정신을 가슴속깊이 새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헤쳐가신 백두의 행군길을 따라 끊임없이 답사길을 이어가는 답사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백두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위하고 계승해나가며 우리의 사회주의사상을 튼튼히 지켜가는 믿음직한 선군혁명대오의 모습이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Copyright © 2001 - 2019 반제민족민주전선 《구국전선》편집국 All rights reserved.
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