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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위인과 음악』중에서​  3. 주체음악예술의 대화원을 펼치신 음악의 거장 -주체적배합관현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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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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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위인과 음악』중에서​

 

3. 주체음악예술의 대화원을 펼치신 음악의 거장

주체적배합관현악의 탄생

 

위대한 음악거장의 현명한 령도밑에 문학예술혁명의 포성이 련이어 높이 울리던 격동적인 시기에 이룩된 빛나는 창조물들 가운데는 세상에 대고 당당히 자랑하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 우리 식의 독특한 배합관현악도 있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생신하고 약동하는 독특한 울림으로 만사람의 경탄을 자아내는 우리 식 배합관현악의 창조, 이것은 오로지 조선의 관현악을 진정 시대와 혁명, 인민을 위하여 참답게 복무하는 주체적이며 인민적인 예술로 발전시켜나가시려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독창적인 음악건설사상과 현명한 령도의 손길이 가져온 빛나는 결실이다.

관현악은 그 나라 음악예술전반의 발전정도를 가늠할 정도로 음악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이 대단히 크다.

하지만 가극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번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 나라의 관현악분야는 시대와 인민의 요구에 따라서지 못하고 의연 낡고 뒤떨어진 사대와 교조의 틀안에서 헤매고있었다.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의 관현악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음악예술분야에 대한 령도의 나날 관현악도 주체적립장에서 철저히 우리 식으로 새롭게 건설하실 확고한 결심밑에 주체적이며 인민적인 관현악건설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주체를 철저히 세워 민족적인것을 위주로 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일관하게 견지하신 주체적음악건설의 원칙적요구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적립장에 서서 민족악기를 위주로 하여 거기에 양악기를 옳게 배합할데 대한 독창적인 주체적관현악건설의 앞길을 밝혀주시였다.

이것은 아직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것이였다.

수백년에 걸치는 관현악의 발전력사를 더듬어보면 관현악에서의 음량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음색과 개별적악기들의 특수한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새 악기를 도입하거나 서양악기와 동양악기를 배합한 시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배합들은 다만 그 어떤 새것을 추구하는 연주수단의 기계적인 맞물림, 더우기 력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양식관현악에 대한 숭배와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순수 기술실무적목적으로 진행된데 불과한것으로 하여 관현악전반발전의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올수 없었다.

민족악기를 위주로 하여 주체적인 배합관현악을 창조하는것은 전인미답의 생소한 길이였으며 일정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 방대하고 복잡하며 대단히 어려운 사업이였다. 말그대로 하나의 일대 혁명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인 통찰력으로 새로운 관현악창조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방도들을 밝혀주시였을뿐아니라 통이 큰 전개력으로 주체적배합관현악을 최단기간내에 훌륭히 완성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적관현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족관현악부터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던 민족관현악편성을 대담하게 독창적으로 풀어나가시였다.

그 당시의 민족관현악편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져버린 가야금과 같은 뜯음줄악기를 위주로 하는 편성체계로 되여있었다.

이러한 편성체계에서는 민족관현악이 순탄하게 흐르지 못하고 동강이 나며 음색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고 흐리고 투박하였다.

민족관현악편성에서 나타나고있는 이러한 본질적결함들을 예리하게 통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관현악이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기 위하여서는 우리 인민의 미감과 민족적특성에 맞게 우리 식으로 악기를 편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종래의 뜯음줄악기위주의 체계로부터 민족현악기를 위주로 하는 체계로 넘어갈데 대한 현명한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이와 함께 처량하고 구성진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의 기능과 역할을 높여 민족관현악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내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민족관현악의 울림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였고 선률과 화성적울림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되였다.

한편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악기들을 현대화하는 사업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고 그것을 단순한 악기개량이 아니라 민족관현악편성과 배합관현악실현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사업으로 진행하시였다.

주체59(1970)년 봄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58돐을 기념하는 영화예술인들의 공연무대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심혈이 뜨겁게 어려있는 새로운 민족관현악이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이날 민족관현악이 지난날의 낡고 뒤떨어진것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새로운 모습, 새로운 울림으로 만사람의 심금을 꽉 틀어잡은것은 주체적이며 인민적인 우리 식의 민족관현악의 탄생을 알리는 일대 사변이였으며 관현악분야에서 하나의 근본적변혁이였다.

민족관현악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양악관현악에서도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키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1960년대말까지만 하여도 일부 사대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은 교향악이라고 하면 의례히 유럽의 이름난 음악가들이 창작한 교향악을 해야 하는것으로 생각하면서 유럽교향악을 숭상하였으며 교향악을 창작하는 경우에도 소재선택과 창작기법의 적용에서 유럽교향악의 형식을 그대로 본따는것을 어길수 없는것으로 간주해왔다.

사대와 교조의 수렁속에 깊숙이 빠져있는 교향악을 소생시키는것은 양악관현악을 발전시키는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있었다.

주체58(1969)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부문의 한 일군을 가까이 부르시고 교향악단의 실태에 대하여 상세히 분석하시면서 근엄하신 안색으로 교향악이 이 지경에 이른것은 사대주의자들이 떠벌인대로 우리 인민이 무식하여 교향악을 리해하지 못하기때문이 아니라 문제는 어떤 교향악을 하는가에 있다고 하시며 결연한 어조로 자신께서는 우리 시대, 우리 인민이 요구하는 새 교향악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어 교향악창조원칙과 방도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교향악을 우리 인민이 즐겨부르는 민요와 인민대중에게 널리 보급된 명곡을 편곡하는 원칙에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만이 교향악이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는 음악으로 될수 있습니다.》

양악기자체를 반대할것이 아니라 양악기를 가지고 조선음악을 잘하여 인민에게 복무하도록 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확고한 의지가 력력히 어린 교시였다.

이것은 그대로 교향악분야에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대담하게 3관편성의 교향악단을 꾸리기 위한 안을 만들데 대해서와 인민들이 사랑하는 《내 고향의 정든 집》, 《그네뛰는 처녀》 등 명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형상할데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얼마 안되여 관현악단도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과 인민의 정서와 기호에 맞는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우리 식으로 꾸려야 한다고, 연주가들의 수도 다른 나라 교향악단의 인원수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에 따라 관례를 뛰여넘어 120여명의 대규모 3관편성관현악단이 조직되였다. 보통관례와 기존공식을 깨뜨리고 기적을 창조하는 조선의 기상과 본때는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주체적인 우리 식 교향악에서도 남김없이 발휘되였던것이다.

한편 《내 고향의 정든 집》, 《그네뛰는 처녀》를 관현악으로 창작하는 사업과 우리 식 관현악창작의 본보기작품인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나날에 창작가들을 부르시여 인민대중이 다 리해할수 있는 민요와 명곡으로 교향곡을 만들 방향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도 하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새로 만든 교향곡들을 들어주시고 편곡과 연주형상 등을 손색없이 완성하도록 정력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새로 창작완성된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와 《내 고향의 정든 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공연무대에 오른 첫 순간부터 관중들의 마음을 완전히 틀어잡았고 폭풍같은 박수갈채를 받게 되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주체적배합관현악창조를 위한 튼튼한 기초와 과학적토대, 고귀한 경험이 이룩되게 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에 기초하여 민족악기에 양악기를 배합하여 우리 식 배합관현악을 창조하는 력사적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실현하시였다.

주체61(1972)년 12월 서유럽에 가게 되는 어느 한 예술단의 공연작품준비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양악기와 민족악기를 배합하여 유럽사람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를 내지 못하는 새로운 형식의 기악곡을 만들어내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무용 《사과풍년》과 《키춤》의 반주음악이 순전히 배합관현악만으로 형상되였으며 결국 우리 식 배합관현악의 시범이 창조되였다.

예술단의 공연을 본 영국과 이딸리아에서는 주체적배합관현악에 대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다. 온 유럽이 우아하고도 부드럽고 황홀한 조선의 무용반주음악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환호하였다.

새로운 무용반주음악창조를 통하여 주체적인 배합관현악의 생활력을 힘있게 확증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어 혁명가극의 관현악을 통하여 그것을 더욱 완성하도록 하시였다.

그때까지 혁명가극의 관현악은 모두 민관 혹은 양관만으로 편성되여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관만으로 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일부 대목들을 배합관현악으로 울려보도록 새로운 작전을 펼치시는 한편 창작가들에게 가극전체를 다 완전히 배합관현악으로 울릴수 있도록 편곡전투를 벌리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천재적인 음악적예지로 민족악기와 양악기의 배합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혁명가극의 관현악에서 좌석배치도 새로운 구도로 완성시켜주시였다.

이처럼 독특하게 편성되고 배치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관현악은 서주음악의 첫시작에서부터 사람들을 황홀경의 세계에로 이끌어가는 특이한 울림을 나타내였다.

민족적색갈이 훌륭하게 보장되면서도 부드럽고 은근하며 민관만으로 할 때의 음색이나 양관만으로 할 때의 음색과는 전혀 다른 제3의 새로운 음색, 미묘한 소리,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없던 음색, 새로운 소리울림의 탄생이였다.

민족악기와 양악기의 전면적배합에 의한 주체적배합관현악의 완성은 종래 관현악의 온갖 낡은 형식과 틀을 마스고 주체적이며 인민적인 관현악발전의 새 길을 열어놓은 하나의 혁명으로서 주체음악예술의 발전과 세계의 전반적인 관현악발전에서 거대한 리론실천적의의를 가진다.

우리 식 배합관현악을 감상한 외국사람들도 《조선의 관현악편성은 일찌기 세계음악계에서 들어보지 못한 새롭고 독창적인것이다.》, 《모든 나라들의 민족관현악은 조선식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민족의 귀중한 재보-주체적배합관현악을 통해 우리 겨레와 진보적인류는 음악예술의 거장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모시고있는것을 더없는 영광과 긍지로 심장깊이 새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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