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예물

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1장 4.  제주도인민대표 김달삼을 만나주시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명철 작성일13-10-02

본문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제1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4. 전조선통일정부수립의 나날에

제주도인민대표 김달삼을 만나주시고

 

해주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는 제주도에서 선출된 인민대표인 김달삼도 참가하였다.

제주도 모슬포의 가난한 농사군가정에서 태여난 김달삼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아래에서 더는 살래야 살수 없어 행여나 하고 일본으로 가는 부모를 따라 제주도를 떠났다. 향학열에 불타던 그는 모진 생활난을 겪으면서도 오사까와 도꾜 등지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였고 대학에도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비난으로 하여 끝내 대학을 중퇴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후 그는 다시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북도 대구로 갔으며 얼마후 고향 제주도에 가서 중학교 교원을 하면서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리였다. 그때 일제경찰서에 여러차례나 잡혀가 참기 어려운 야만적인 고문도 받게 되였지만 반일의 총성 높이 울리는 백두산을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며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김달삼이 해방직후 남조선땅에서 미제침략자들과 사대매국노들의 영구분렬책동을 반대하여 굴함없이 싸울수 있은것은 가슴속깊이 뿌리내린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빼앗고 인민들에게 온갖 고통과 불행만을 들씌우는 침략자 미제와 그 주구들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과 분노를 누구보다 참을수 없었던 그는 제주도인민항쟁조직자의 한사람으로 활동하였으며 후에는 맹렬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미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이렇게 되자 미제와 그 주구들은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미쳐날뛰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주도인민유격대를 《토벌》하려고 무력을 증강하여 매일같이 제주도땅에 병력을 들이밀었다. 미제와 그 주구들의 무분별한 백색테로에 제주도의 각지에서는 인민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이에 격분한 제주도의 애국적인민들은 1948년 4월 3일 대중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제주도인민들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5. 10단선조작음모를 짓부셔버리기 위한 투쟁을 성과적으로 벌린데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위한 북남총선거투쟁을 벌려나갔다. 그들은 치렬한 무장투쟁을 벌리는 가운데서도 7월 중순부터 공장과 농어촌들에 선거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제주도인민대표자선출사업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이 과정에 제주도인민들은 김달삼을 비롯한 여러 대표들을 선출하여 해주에서 진행되는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파견하였던것이다.

1948년 8월 21일이였다.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사업을 지도해주시기 위해 해주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제주도인민대표인 김달삼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해방전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전설처럼 들어오던 그 시절로부터 우러러 흠모하며 사무치게 그리웠던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 순간 김달삼은 벅찬 감격에 싸여 어푸러질듯 그이께로 걸음을 옮기였다.

《장군님!…》 그는 격정이 넘쳐나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시며 《손에 무장을 들고 용감하게 싸우고있는 제주도인민들의 대표로 온 동무를 만나니 정말 반갑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곁에 그를 앉혀주시고 제주도인민들의 투쟁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는 수령님께 제주도인민유격대의 조직경위와 그 이후 투쟁에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는 동안 내내 20대초의 젊은 그의 얼굴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미군과 반동들이 벌벌 떠는 유격대대장인 그는 이제 한창 뼈가 굳기 시작한 학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심장과 피줄속에는 애국애족의 드높은 기개와 열정이 뜨겁게 맥박치고있었다.

그의 말을 다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제주도인민들이 한나산을 중심으로 하여 도처에서 무장투쟁을 벌리고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애국적이며 영웅적인민입니다. 제주도인민들이 미제와 반동들을 반대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투쟁에 떨쳐나서게 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닙니다. 제주도인민들의 무장봉기는 미제의 군정통치와 식민지예속화정책에 대한 분노의 폭발인 동시에 그 필연적결과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주도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제주도인민들의 피어린 항쟁은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력사에 영원히 기록될것입니다.》

이날 김달삼에게 앞으로의 투쟁과업에 대하여 밝혀주신 수령님께서는 동무는 아직 나이가 젊고 혁명사업을 계속해야 하겠는데 그러자면 여기에서 얼마동안 공부를 하고 나가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2살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된 김달삼을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해주시는 높은 신임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달삼에게 베푸신 신임과 은정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김달삼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아시고 그처럼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는 속에서도 그를 만나주시고는 몸이 건강해야 나라의 통일을 위한 사업을 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를 큰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시켜 치료받도록 해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입원한 후에는 유능한 의사들도 보내주시고 병원에 자주 전화를 거시여 환자의 상태를 알아보시며 자신께서 직접 값진 약품들과 희귀한 보약재들을 보내주시였을뿐아니라 김책을 비롯한 내각의 일군들이 찾아가 병문안을 자주 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극진한 보살피심과 뜨거운 은정속에 그의 건강이 몰라보게 회복되여갔다.

그후 병원에서 퇴원한 그를 만나주신 수령님께서는 얼굴색이 퍽 나아졌다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시였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는듯 그이께서는 그가 좀더 치료 겸 휴식을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경치좋은 온천휴양소로 보내주시였다. 그후에는 내각간부학교와 정치학원에서 공부하도록 은정깊은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이렇듯 김달삼은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품에 안겨 행복하고 보람찬 나날을 보내였다.

그러던 주체38(1949)년 4월 하순 김달삼을 또다시 몸가까이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치료를 받은 후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남조선땅에서는 꿈에도 상상할수 없었던 병치료를 받게 되여 몇해째 앓고있던 병이 뚝 떨어져 이제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였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음이 놓이시는듯 건강하다니 기쁘다고, 혁명을 하자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그간 공부한 내용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다음 그에게 이번에 학교에서 배우니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힘있는 목소리로 정말 이번에 배우니 신심이 생긴다고 대답을 드리자 그이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동무가 신심을 가지니 나도 힘이 생긴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나라의 정세며 당면한 통일투쟁방침에 대하여 이야기하신 후 그에게 남녘의 통일애국투사들이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해나가는데서 깊이 간직해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된 김달삼은 통일조국의 앞날이 활짝 펼쳐지는것 같은 격동을 금치 못하면서 장군님의 말씀을 받고보니 앞이 탁 트인다고, 지금 자기의 심정은 당장 38°선을 넘어 남으로 달려가 통일을 위하여 힘껏 싸우고싶은것뿐이라고 하면서 그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장군님의 따뜻한 품속에 안겨 그간 사랑과 은덕만을 받은 저는  그  어떤 어려운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아도 오직 장군님만을 믿고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다 바쳐 억세게  싸워나가겠습니다.》

김달삼은 그후 남조선에서 애국적청장년들로 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수많은 전투를 벌려 미제와 그 주구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던 그는 1950년 9월 30일 불의에 달려든 적의 대부대와의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전우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였다.

《동무들! 나는 김일성장군님앞에서 미국놈들을 내쫓고 조국을 통일시키겠다고 맹세를 다졌는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되니 정말 장군님앞에 죄스럽소. 제주도의 김달삼이 우리 장군님앞에서 다진 맹세를 동무들이 꼭 실현시켜준다면 정말 죽어도 한이 없겠소. 후날 누구든 우리 집사람과 딸애를 만나면 내가 미국놈들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피맺힌 원쑤이기때문에 피로써 결판을 꼭 보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전해주기 바라오.》

김달삼의 희생에 대한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토록 믿고 사랑하시던 젊은 통일애국투사를 잃으신 크나큰 비분으로 하여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시였다.

그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손에 무장을 잡고 굴함없이 싸우다가 24살의 피끓는 청춘으로 빛나게 최후를 마친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하지만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속에 그는 오늘도 통일애국투사, 공화국영웅, 조국통일상수상자의 모습으로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대오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링크드인으로 보내기
  • 구글로 보내기
  • 레디트로 보내기
  • 카카오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Copyright © 2001 - 2019 반제민족민주전선 《구국전선》편집국 All rights reserved.
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