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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중에서 2. 모든것을 선군의 요구대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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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명철 작성일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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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중에서

2. 모든것을 선군의 요구대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우수한 전통은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갈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재보이다.

민족의 자랑이고 재보인 민족문화유산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빛내주시려는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결심이고 의지였다.

그이의 심장을 가득 채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력사문화유적들마다에 뜨겁게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랜 력사문화유적의 하나인 량천사를 찾아주신것은 주체91(2002)년 6월초 어느날이였다.

함경남도 고원군 고원읍에서 서쪽으로 약 5㎞정도 떨어져있는 동흥산기슭의 묘한 골안에 자리잡고있는 량천사는 753년에 건설된것으로서 천수백여년의 력사를 자랑하고있다.

량천사는 석가모니불상을 앉힌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러채의 건물로 된 비교적 큰 사찰이였으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폭격으로 많은 건물이 타버리고 현재는 대웅전, 만세루, 무량수전 3개의 건물만 보존되여있다.

이에 대한 해설을 주의깊게 들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절이 아주 크다고 하시면서 천천히 대웅전 돌계단을 오르시였다.

장군님을 높은 돌계단으로 모시는것이 죄송스러워 관리원이 계단이 좀 높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대웅전의 계단이 높은것은 본래 그렇게 만든것일거라고 소탈하게 말씀하시며 그 높은 돌계단을 성큼성큼 오르시여 대웅전에 들어서시였다.

대웅전에는 크고작은 불상들과 함께 복숭아를 쟁반에 받쳐든 두 녀인을 중심으로 20여명의 인물들이 북과 징, 피리와 퉁소, 가야금과 소라 등 민족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장면을 형상한 무악도를 비롯한 많은 그림들이 천수백여년전의 원색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대웅전의 특색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대웅전 천정에 그려놓은 무악도를 비롯한 그림들을 아주 잘 그렸다고, 천정에 그린 장생불로하는 신선물이라는 복숭아를 쟁반에 받쳐들고있는 두 녀인의 눈이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 할 때 같이 움직이는것 같다고 하시며 인물을 형상한 그림이 이렇게 립체감이 나는것은 여기밖에 없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원색그대로 보존되여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보아주시며 옛날의 오랜 그림들을 잘 보존했다고 치하해주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만세루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만세루는 산경사지에 터를 닦지 않고 자연적인 주추돌우에 아름드리 돌기둥을 다듬어서 세우고 나무기둥을 련결한 다음 그우에 수평으로 나무마루를 깔고 그우에 다시 키높은 20개의 나무기둥을 세워서 웅장하고 경쾌한 겹처마합각지붕을 떠받들게 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앞으로 보면 2층다락으로 되여있고 뒤로 보면 단층으로 된 만세루는 원래 승려들이 글쓰는 장소로 리용하던 곳인데 리조시기에 와서 불교가 유교에 밀려 배척당한 이후로부터 량반들의 놀음터로 되여왔다.

만세루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만세루가 큽니다.》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의 절루정으로서는 제일 큰것 같다고 하시며 전망을 부감하시였다.

동쪽으로 150리앞이 탁 틔여있어 고원벌, 천내벌, 금야벌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로동당시대의 빛나는 창조물로 태여난 광명성제염소까지 멀리 륜곽적으로 안겨오고있었다.

원산만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시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여기 량천사에 거점을 두고 용감하게 싸운 고원인민유격대의 투쟁이야기도 들어주시고 버릇없이 올리는 육담까지도 나무람없이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이어 무량수전까지 돌아보시며 그 건축학적특성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이날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량천사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단청보색을 비롯하여 민족문화유산보존관리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들이 많은데 그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력사문화유적들을 잘 보존관리하고 사람들속에서 그를 통한 교양을 잘하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애국심을 높여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력사문화유적들에는 우리 인민의 우수한 건축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이 깃들어있는것만큼 보존관리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력사문화유적들을 원상대로 복구하는것도 우리 민족의 슬기와 문화적재보들을 후대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 그토록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애국, 애족의 뜻이 어려와 모두가 숭엄한 격정에 잠겨있는데 그이의 음성이 또다시 울리였다.

《모든 부문에서 력사문화유적들을 비롯한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을 옳게 살리고 빛내여나가기 위한 사업을 잘하여 인민들에게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여주어야 합니다.》

이렇듯 민족문화유산보존관리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명철하게 밝혀주신 장군님께서는 량천사에 보존되여있는 그림들이 아주 멋있고 특색있다고 다시금 평가하시면서 그것을 화첩에 담아 널리 소개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고 량천사는 로동당시대에 와서 인민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되고있다고 하시면서 량천사가 보존되여있다는것을 알면 불교를 믿는 동포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겠다고 할수 있는데 와보게 하여야 한다고 은정어린 말씀도 하시였다.

어느덧 시간은 퍼그나 흘러 장군님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였을 때였다.

그런데 대웅전과 만세루, 무량수전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 력사유적해설문판쪽으로 걸음을 되돌려 옮기시는것이였다.

력사유적해설문판앞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량천사가 753년에 세워진 절로서 정방산의 성불사나 구월산의 월정사보다 훨씬 더 먼저 세워졌는데도 원상대로 보존되여있다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관리원에게 오늘 해설을 잘하였다고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주시고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하여 량천사에 대한 해설을 더 잘하겠다는 그의 결의도 들어주시며 건강하여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고 고무격려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량천사를 다녀가신 후에도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관리하도록 필요한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한점의 력사유물도 귀중히 여기시며 그를 통한 애국주의교양을 강화하도록 하신데는 인민들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자기 대에 후세에 길이 남을 민족적재부를 더 많이 창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것을 바라시는 높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거기에 바로 조국과 민족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사랑하신 절세의 애국자로서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고결한 위인상, 위인적풍모가 있는것이다.

이렇듯 열렬한 조국애를 지니신 장군님이시기에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력사문화유적들을 찾고 또 찾으시며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이 선군시대에 그 빛을 더욱 찬연히 뿌리도록 하시였다.

주체92(2003)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안북도 박천군의 봉린산중턱에 위치하고있는 심원사를 소문없이 찾아주시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장군님을 이 외진 곳에서 만나뵙게 된 관리원은 미처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였다.

《수고합니다.》

이렇게 장군님께서는 외진 산골에서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는 관리원의 수고를 먼저 헤아려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심원사의 연혁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였다.

동창천 맑은 샘물이 흘러나오는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사찰이라는 뜻에서 이름지어진 심원사는 고려시기인 9세기경에 건설된 이후 14세기에 대보수를 하고 그후에 못쓰게 된 기와를 다시 얹은 다음 오늘까지 한번도 손을 대지 않은 원상 그대로의 사찰로서 선조들의 높은 건축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심원사의 보광전은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의 응진전, 황해북도 연탄군 심원사의 보광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창설년대가 무려 1 000여년의 력사를 기록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고색창연한 사찰의 내부와 외부를 주의깊게 돌아보시였다.

보광전에는 불상을 비롯하여 가마, 목탁, 초대 등 적지 않은 유물들이 보존되여있었다.

관리원으로부터 각종 유물들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며 몸소 가까이도 가보시고 좀 떨어져서 보기도 하시며 그것들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그이께서 천정으로 눈길을 보내시였을 때였다.

천정에는 불교의 례식때 쓰이던 운판을 비롯하여 봉황새와 룡을 부각한 각종 금단청문양들과 조각들이 옛 모습그대로 있었다.

관리원은 장군님께 그것을 가리켜드리며 심원사에 력대적으로 보존되여오는 중요한 유물의 하나이라는데 대하여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천정의 금단청문양과 조각들을 한동안 주시하시고나서 문득 관리원에게 물으시였다.

《심원사를 9세기경에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그때에 벌써 금장식을 할수 있었겠소?》

장군님께서 의문을 표시하신것처럼 심원사의 건설년대는 9세기초이지만 이 금단청은 지금으로부터 근 700년전인 14세기에 사찰을 대보수할 때 한것이였다.

전문가들도  미처  헤아려보기  힘든  우리 나라 유색금속가공발전력사와 심원사건설년대를 순간에 대비하여보시고 하시는 그이의 물으심에 관리원은 구체적인 해설을 못해드린 송구스러움으로 하여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가 심원사에 있는 비석에 금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때가 14세기라고 다시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그런가고, 그후에는 다시 손질하지 않았겠소라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이께서 신명을 돋구어주시는 바람에 관리원은 어려움도 잊고 《경애하는 장군님! 이 금단청은 그후 근 700년동안 단 한번의 수복도 하지 않은 진품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뒤짐을 지시였던 두손을 량허리에 얹으시며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자, 보시오, 얼마나 훌륭하오, 우리 선조들이 재능이 있었거든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보광전 내부에 한 단청은 14세기에 대보수할 때 한것으로서 한 700년정도 되였지만 그대로 보존되여온다는데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단청술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하나의 유적을 놓고서도 그것에 비낀 민족의 슬기와 우수성을 헤아려보시며 그렇듯 천만금의 가치를 부여해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잠시후였다.

보광전을 나서시여 심원사의 우물에 깃든 유래를 들어주시고 주위를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얼마쯤 떨어져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시선을 멈추시였다.

그 나무가 심원사에서 자라게 된데는 유래가 있었다.

시종 사색적인 안색을 지으시고 그에 대한 관리원의 해설을 다 들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수긍해주시였다.

《심원사의 뒤산 봉우리들의 모양이 봉황새가 나래를 편것과 비슷하고 산에 있는 바위들의 모양이 누워있는 기린같다고 하여 산이름을 봉린산이라고 하였고 봉황새가 오동나무나 은행나무에 깃을 들이고 산다고 하여 심원사앞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심원사의 유물은 물론 그 주변 나무 한그루도 무심히 보지 않으시고 선조들이 이룩한 모든것을 귀중히 여기시는 그이를 우러르는 일군들은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어졌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청풍루의 유래에 대한 관리원의 소박한 해설도 들어주시고 청풍루의 대들보에 걸려있는 목어(나무로 만든 고기)를 보시고서는 절을 돌아보던중 이런것은 처음이라고, 좀 늦더라도 이에 대한 해설을 마저 듣고 가자고 하시며 그 유래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헤아려주시였다.

오랜 시간을 바쳐가시며 심원사의 유적유물들을 세심히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이 심원사는 국보적의의가 큰 절이라고, 자신께서는 이 절에 금단청과 꽃무늬조각을 비롯하여 력사유물들이 원상대로 보존되여있는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씀하시였다.

떠나시기에 앞서 관리원에게 오늘 심원사에 와서 해설을 잘 들었다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게 해야 한다고 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주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문화유적이 많습니다.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살려나가며 우리 인민들에게 그를 통한 교양을 잘하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애국심을 키워주는데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시려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속에서도 력사문화유적들을 찾아주시고 민족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고 빛내이는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는것이였다.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발전시켜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의 자욱은 함경남도 금야군 동흥리에 자리잡고있는 안불사에도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랜 사찰의 하나인 안불사를 찾아주신것은 심원사를 돌아보신지 두달후인 4월 어느날이였다.

안불사는 1393년에 세워진 오랜 건축물로서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안불사의 내외부를 다 돌아보고나신 그이께서는 단청을 새로 한것 같은데 사찰같은 건물은 옛 모습대로 둬두어야지 단청을 다시할 필요가 없다고, 단청을 다시하면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일깨워주시였다.

단청을 다시하면 보기에 좋을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일군들의 단순한 생각에 충격을 주는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력사문화유적의 보존관리에서 단청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문화유적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야 사실주의원칙을 지킬수 있다고 하시면서 단청을 다시하는 경우에는 원상대로 고전미가 나게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단청을 잘하려면 붓도 단청할 때 쓰는것을 써야 한다고 그 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안불사에 심어놓은 은행나무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금야은행나무로 불리우는 이 나무는 옛 기록에 의하더라도 2 000년정도 자란것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제일 오랜 은행나무이다.

나무에는 지금도 한해에 300㎏정도의 열매가 달린다.

이에 대해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있는 금야은행나무를 언제 심은것으로 보겠는가에 대한 고증을 해당 부문 일군들이 와보고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이 나무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함경남도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그이께서는 금야군 안불사에 있는 은행나무가 2 000년 자란것인데 은행나무로서는 세계적으로 제일 오랜 나무라고 한다, 설명문에 1 500년 자란 나무라고 씌여져있는데 아마 사찰을 지을 때 떠다심은 나무라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것 같다, 옛 기록에도 그 나무가 2 000년 자란것으로 되여있다고 한것을 보면 안불사를 세우기 전부터 있는 나무일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국토부문에서 천연기념물을 비롯하여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문화유적유물에 대한 선전을 널리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애국애족의 마음은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자그마한 마음에서부터 싹트고 자라난다는 심오한 철리를 새겨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관심속에 잃어버렸던 나이를 되찾은 금야은행나무는 오늘도 한그루의 오랜 나무를 통해서도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여주시려 마음쓰시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심을 전하며 푸르러 설레이고있다.

선군시대에 자기의 모습을 한껏 떨치게 된 량천사와 심원사, 안불사와 더불어 이 땅에 뿌리박은 수많은 력사유적들마다에는 이렇듯 애국애족애민의 숭고한 뜻을 안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 닿아있다.

력사문화유적을 선군시대인 오늘날 더욱더 빛내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는 절승을 자랑하는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수많이 새겨놓았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함경남도 영광군에 자리잡고있는 백운산명승지를 찾아주시였을 때였다.

새 세기에 들어와 더욱 면모를 일신한 백운산명승지에는 수백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룡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먼저  룡흥사에  들리시여  사찰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사찰을 원상대로 보존관리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장군님께서는 그아래 새로 건설한 휴양각이 있는 산기슭으로 내려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상쾌한 기분으로 주변경치를 한참이나 바라보시며 백운산명승지에 있는 나무들이 아주 멋있다고, 나무들이 크고 꼿꼿하게 자랐는데 희한하다고, 명승지에 수림이 우거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할것이라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고 산주폭포가 흘러내리는 개울의 구름다리우에 올라서시여서는 물이 많아야 찾아오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내물의 량도 가늠해보시였다.

한그루의 나무를 보시고도, 흘러내리는 한줄기의 내물을 보시고도 인민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이어 정각 무도장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곳에 놓인 TV를 보시면서 영광군 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진 백운산기슭의 휴양각에까지 전기를 끌어 휴양생들이 문화정서생활을 마음껏 즐길수 있게 한것을 두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저 우에서도 텔레비죤을 보는가고 물으시였다. 사찰의 바로 뒤쪽에 관리원부부가 어린 딸애를 데리고 사는 살림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일군들은 인차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그이께서 가리키신 룡흥사 관리원부부의 집에는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기때문에 TV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일군들은 이 사실을 보고드리면서 이제 축전지를 놓아주어서라도 그들이 텔레비죤을 보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룡흥사에 전기가 들어오지 못하여 관리원부부가 사는 집에서 텔레비죤을 보지 못하기때문에 군에서 축전지를 놓아주어서라도 텔레비죤을 보게 하겠다고 하는데 내가 〈아리랑〉텔레비죤수상기를 보내주겠습니다.》

일군들은 젖어드는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많았지만 산천의 아름다움과 력사고적에 심취되여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뿐 관리원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더우기 그들이 TV를 보는지 헤아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리원부부자신도 TV를 보고싶은 생각은 간절하였지만 이곳은 깊은 산중이라 어쩔수 없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생각과 자그마한 불편까지 속속들이 헤아리시여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시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곳을 다녀가신 후 이들 관리원부부에게 TV와 함께 보기에도 좋고 쓸모있는 그릇들과 모포, 솜옷, 양복천, 옷, 여러가지 내의류 지어 화장비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생활필수품을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뒤이어 국가과학원의 과학자들이 달려와 태양빛전지와 저락차충동식수력발전기를 설치하여 관리원의 가정에서 조명은 물론 TV도 마음껏 볼수 있게 해주었다.

낳아준 친부모도 생각지 못한 그들의 고적한 생활을 그리도 깊이 헤아리시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부부가 이곳에 스스로 찾아와 10여년세월 사찰을 관리해온 그 수고도 귀중히 여겨주시며 크나큰 은덕을 베풀어주신 장군님의 사랑은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백운산전설을 낳았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생겨난 때로부터 룡흥사를 찾는 사람들은 명승지의 풍경이나 사찰구경에 앞서 관리원부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한다.

사람들은 오늘도 사랑의 불빛, 행복의 랑만이 흘러넘치는 집안팎을 돌아보며 은혜로운 사랑의 품을 굳건히 지키고 더욱 꽃피워갈 결의를 가슴깊이 다지고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정력적인 령도밑에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전사회적분위기가 전례없이 고조되여나갔으며 전체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 비할바없이 높아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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