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도의 태양을 우러러
  • 기고 | 주석님의 은총을 잊을 수 없습니다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2-04-01

 

 

주석님의 은총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 나이 이제는 80고령을 넘어섰다. 흔히 나이가 들면 추억에 산다고들 한다.

흘러온 인생의 갈피를 더듬어 볼 때마다 나의 눈앞에는 아홉살 때 있었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르군 한다.

그날은 1950년 6월 28일이었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잠들었던 나는 갑자기 울려오는 만세소리에 깨어났다. 할머니의 손목을 잡고 거리에 나가보니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해방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서울해방작전이 왜 새벽에 진행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한 인민군장교로 부터 그 사연을 전해듣고 눈굽을 적시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서울해방전투를 앞둔 날 저녁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의 심중은 무거우시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총공격을 들이대면 서울시민들의 생명 재산이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해방전투가 옹근 하루밤이나 미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녘민중을 위해 늘 마음써오신 주석님께서는 해방된 전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도록 해주시었다.

위대한 주석님의 은덕으로 우리 고모도 3 천여 평의 땅을 분여받았다. 고모는 분여받은 땅에 얼굴을 묻고 『장군님 덕분에 나도 난생 처음 제땅을 가지게 되었구나』고 하면서 해 저물도록 밭에서 떠날줄 몰랐다.

토지를 분여받은 곳마다에서는 토지개혁 경축대회가 진행되고 주석님께 감사의 전문과 편지들을 삼가 올리었다.

8.15이후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정말이지 꿈만 같은 날과 달들이었다.

우리 남녘민중을 위하시는 주석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시었다.

1950년 가을 어느날이었다.

이웃에 사는 영금이네 집에 놀러 갔는데 그의 할아버지가 통나무 토막을 한아름 안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매일같이 땔나무 걱정을 하고 있던지라 나는 어디에 가면 나무를 해올 수 있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영금이 할아버지는 한강으로 지금 많은 통나무 토막들이 떠내려 온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달려온 나는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한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정말 한강으로는 불을 때기에 알맞춤하게 자른 통나무 토막들이 떠내려 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서야 주석님께서 그때 서울시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땔나무문제를 토의하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시어 나무베기 전투를 조직하시었고, 나무를 토막내어 강물에 띄워 내려보내주면 서울시민들이 건져쓸 수 있을 것이라시며 이런 방법으로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는 뜻깊은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남녘민중에 대한 주석님의 대해같은 은덕은 날이 갈수록 뜨겁게 새겨진다.

주석님께서 탄생하신 4월이 오니 주석님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나는 자손들에게 6.25전쟁시기 내가 직접 목격하였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며 주석님과 같으신 분은 이 세상에 없다, 주석님의 은총을 언제나 잊지 말고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통일성업에 전심하라고 당부하군 한다.

서울 김명자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링크드인으로 보내기 구글로 보내기 레디트로 보내기 카카오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