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 기타 | 유신독재의 부활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다(2)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13-05-27

 

  『유신』독재의 부활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다 (2)

                                                         2.피로 얼룩진 『10월유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역도는 이남 전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탱크와  장갑차를 내몰아 국회를 해산하고 일체 정치활동을 중지시킨데 이어 『유신헌법』을 날조하였다.

이 『10월유신』은 박정희역도가 1868년 일본의 부르죠아개혁파들이 일으킨 『명치유신』을 본따 장기독재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쿠데타였다.

『유신헌법』으로 박정희역도는 대통령, 국무회의 의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의 감투를 다 뒤집어쓰고 모든 권력수단을 통제할 권한, 『헌법』개정권, 국민투표권, 『긴급조치』발동권, 계엄령선포권, 국회해산권 등 무제한한 권한을 거머쥐었다.

또한 국민의 직접투표도 없이 제가  의장으로 되고  구성원들도 제가 임명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데서 자기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만들고 그 임기에 한계를 두지 않는 『종신대통령제』를 내왔다.

그야말로 박정희역도는 『유신헌법』으로 일거에 『총통』, 『전제군주』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다.

역도의 잔인한 『유신』독재통치는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유신』독재체제하의 이남은 그야말로 정치부재, 민주부재, 민권부재, 언론부재의 황량한 불모지로 변했다.

당시 이남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통일혁명당재건사건, 민청학련사건, 울릉도간첩단사건, 남민전사건 등으로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애국자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박정희역도가 야당 당수 김대중을 일본의 도꾜에서 백주에 납치하여 바다에 수장하려 하였던 김대중납치사건은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역도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사람들의 눈과 귀, 입을 막았으며 학원을 비롯한 사회전체를 군홧발로 짓밟고 초보적인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 생존권마저 무참히 유린했다.

70만명에 달하는 군무력, 1만 5 000여명의 중앙정보부 요원, 40여만명의 정치특무, 5만여명의 경찰과 32만여명의 경찰정보원, 300만명의 향토예비군 등이 온 이남땅을 폭압의 난무장으로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밀집된 도시에는 10명에 한명의  정보원이 박히고 농촌에는 5개 농가가 서로 감시하고 연대책임을 지는 5호책임제가 도입되었으며 어민 5명당 1명은  밀정이고 학교에는 청년학생사상연구회라는 비밀정보망이 생겨났다.

심지어 이웃집끼리 감시제, 부부, 부자간의 감시제라는것까지 고안되었다.

무시로 발동되는 『비상계엄령』, 『위수령』, 『비상사태』, 『긴급조치』에 정치방학, 정치휴교령, 방첩월간과 방범주간, 불온자색출운동, 『유신』반역자박멸운동으로 국민들은 어느 하루도 공포없이 산 날이 없었다.

악명높은 『긴급조치』는 1974년부터 1975년까지 2년동안에만도 무려 9차례나 발동되었다.

『긴급조치』들에 의해 비상군법회의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무리로 처형되었다.

친구를 만나면 접선으로, 술을 나누면 모의한것으로, 악수를 하면 비밀약속으로 간주되어 재판도 없이 즉결심판되었으며  『배고파 못살겠다.』는 말한마디에 『불온분자』라는 딱지가 붙어 중앙정보부의 지하고문실에 끌려가 매맞아야 했고 『입산금지령』, 『통행금지령』 때문에 벌초하러 산에 갈수도, 대낮에 이웃에 갈 수도 없는가 하면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신고하여도 『유언비어유포죄』에 걸려 옥고를 치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남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유신』독재의 야만적인 고문정치는 또 어떠하였는가.

중앙정보부의 비밀고문실에서는 물고문, 불고문, 전기고문, 마약고문, 뱀고문, 백열등고문, 비행기고문, 칭기스한요리고문, 죽침고문 등 별의별 고문들이 다 가해졌다.

재일교포유학생들이었던 서승, 서준식형제가 박정희일당이 조작한 학원간첩단사건으로 체포되어 야수적인 고문을 당하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얼굴로 언론에 공개되었던 그 끔찍한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박정희역도가 집권하여 18년간 한해에 70만~80만명, 연 1 400여만명의 무고한 민중들이  체포투옥되고 학살당했다.

『유신』파쑈독재는 이남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고 폭압의 난무장으로 만들었다.

이것 이 바로 박정희『유신』파쇼독재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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