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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13-05-29

 

     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다(4)

  4.한국경제의 식민지예속화와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당국은 「한강의 기적」이니, 「경제토대의 마련」이니 하면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찬미하고있지만 실지는 그 정반대이다. 오늘 한국경제가 안고있는 심각한 대외예속성과 재벌경제구조, 빈부격차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역도가 그 독초의 씨앗을 뿌리고 자래워놓은 것들이다.

박정희역도는 한국경제를 외국자본에 철저히 얽매인 식민지예속경제로, 절름발이경제로 전락시켰다.

역도는 5. 16쿠데타로 정권을 가로타고앉기 바쁘게 「산업근대화」니, 「경제개발」이니 하는 기만적인 간판을 들고 외국자본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였다.

역도는 「외자도입법」, 「외국인투자의 도입증진과 외국인투자기업의 육성시책」,「수출자유지역법」, 「외국인투자기업체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에 관한 임시조치법」, 「공업소유권법」 등을 조작하여 외국독점자본에 온갖 특혜와 특전을 보장해주고 외국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뭇거나 노동쟁의를 벌이는 것까지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결과 특권을 부여받은 외국자본들은 이남땅에 물밀듯이 쓸어들어와 무제한한 약탈을 일삼았다.

박정희역도의 집권전기간 이남에 들어온 외국차관은 225억US$, 외국인직접투자는 10억US$이상에 달하였으며 이렇게 들어온 외국자본들은 민중의 고혈을 짜내면서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특히 미국기업들은 150~240%의 이윤을 얻었는데 당시 외국자본이 보통 다른 나라에서 얻는 이윤률이 20%였다는 사실과 대비하면 그야말로 황금소나기를 맞은 것이다.

반면에 한국경제에 남은 것이란 산더미같은 빚과 심각한 대외예속성뿐이었다.

박정희역도의 무차별적인 외자도입책동으로 한국경제가 걸머진 대외채무는 1979년 말에 이르러 1960년에 비해 227배나 늘어난 250억US$였다.

빚이 늘어남에 따라 원금과 이자상환액이 증가하면서 박정희정권말기에 와서는 외국에서 꾸어오는 대외채무의 60%이상을 제 땅에 들여오지도 못하고 외국자본에 고스란히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역도가 외국자본과 값싼 노동력으로 해외원자재를 가공하여 재수출하는 수출주도형경제정책을 강행실시함으로써 1962-1975년기간에  투자자금의 해외의존도는 평균 40%, 원자재수입률은 평균 62. 8%에 이르렀다.

보수당국이 현재 해마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300억US$이상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보고있는 것도 박정희가 일본설비와 원자재를 마구 끌어들여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켜놓았기때문이다.

특히 에네르기의 해외의존도는 1979년 말에 75%정도에 달하였다.

주요설비와 원료를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다나니 공업부문에서 완제품가공조립부문에 비해 생산수단 및 원자재생산부문이 심히 조락하여 한국경제가 기형화, 절름발이병신경제로 전락되었다.

곡창지대로 이름났던 이남이 필요한 양곡의 70%를 해외에서 사먹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도 바로 박정희의 대외의존정책의 산물이다.

이남농업인구는 1967년부터 1976년사이에 670만명이나 줄어들었다.

한국경제를 극소수재벌들이 판을 치는 재벌경제로 만들어놓은 원흉도 다름아닌 박정희역도이다.

역도는 재벌들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아먹는 대가로 집권 전기간 친재벌정책을 실시하였다.

해방후 미국과 이승만정권이 적산불하정책으로 한국매판재벌들의 밑돈을 마련해주었다면 역도는 국민과   중소기업들의 피땀을 긁어모아 재벌퍼주기를 하여 재벌을 본격적으로 육성하였다.

박정희역도는 재벌들에 자금을 우선 대출해주는 것을 제도화하고 환률조작으로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었으며 재벌들이 해외에서 빚을 내여 기업을 확장하게 하고 은행들이 빚을 갚아주도록 재벌우대정책을 실시한 결과 1966-1975년기간 기업지원투자액중에서 98. 2%가 재벌들에게 들어가고 겨우 1. 8%만이 중소기업들에 돌아갔다.

재벌들이 비대해지면서 권력과 재벌들사이의 유착관계가 심화되고 온갖 부정부패가 성행하였다.

1963년 박정희역도가 재벌들로 하여금 밀가루와 설탕, 시멘트가격을 마음대로 올려 폭리를 보게 하고 수천만US$를 정치자금으로 받아먹은 「3분폭리사건」, 재벌의 사카린밀수를 눈감아주고 막대한 돈을 삼킨 「사카린밀수사건」, 미국산 잉여농산물을 끌어들이는 대가로 최소한 7 900만US$를 걷어들인 「잉여농산물 부정부패사건」 등은 그 일단이다.

보수권력과 재벌들은 서로 엉키여 진탕치듯 돌아갔지만 중소기업들은 항시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면서 무리로 파산몰락하였다.

박정희정권시기에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졌다.

역도의 친재벌, 저임금정책으로 1970년대 중반 한국인구의 0. 3%에 불과한 재벌들과 반동관료배들이 국민소득의 약 60%를 차지하였다면 전체 인구의 70%에 해당되는 근노자들의 몫은 15%에 불과하였다.

노동자들은 하루평균 10시간이상씩 노동하면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기아에 허덕이었다.

당시 한국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일본노동자의 8분의 1, 미국노동자의 11분의 1, 싱가포르 노동자의 2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참으로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18년간 통치의 악몽은 몸서리치는 것이었다.

유신독재에 피멍이 든 이남민중들의 원한은 지금도 구천에 사무쳐있다.

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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