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잡는다
지난 2012년 『대선』때 나는 『국민행복』,『국민안전』을 제창한 박근혜의 화려한 『공약』을 믿고 표를 찍었다.
아내는 날 보고 『불혹의 나이 헛먹었다.』고 비아냥거리고 열여섯 아들녀석도 『아버지는 미쳤어.』라고 했어도 나는 그래도 MB보다야 더하랴 하고 애써 위안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한 기만이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사흘만에 두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연이어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더 많이 발생했다.
『이렇게 5년을 버티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긴 사람도 있다. 다른 동료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 때 『우리 다시는 죽지 말자.』며 동료들을 위로하던 35살의 젊은 가장이었다.
그렇게 흘러온 1년반동안 나의 믿음은 사그러들고 부닥치는 일들에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찍어내고 정보원의 공작정치가 정국을 주도하며 여당과 국회가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된 상황은 『유신』독재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이석기내란음모사건, 진보당해산청구 등 박근혜정권의 유신회귀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권력의 해바라기로 전락한 관제방송과 종편의 노골적인 『종박찬가』속에서 집권세력은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까지 꿈꾸고있다.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김재원이 33년동안 사문화되었던 『계엄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역시 뜬금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박정희를 『반신반인』으로 치켜올리고 그의 딸이 『국운상승』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고 떠들어대는 수구보수세력의 찬양에 비추어보면 국회해산도 『계엄령』도 못할게 없을 자세였다.
하지만 정치와는 담을 쌓고 포도청같은 목구멍치례에 분분하던 나였다.
『그래도 여자니까… 좀 더 지켜보자.』, 『아직은 주위가 소란스러워 다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지만 행여나 알겠니.』하며 …
그러나 삶의 막바지에서 더이상 견딜 수 없어 월세와 공과금을 유서와 함께 남기고 동반자살한 송파의 세 모녀와 젖먹이와 함께 아파트옥상에서 뛰어내린 30대 여인, 죽은지 수일이 되도록 방치되어있던 60대노인의 고독사 등등은 나의 『설마』와 『행여나』에 무섭게 칼질했다.
더 이상 속지마라. 더 이상 우롱당하지 마라.
이런 와중에 『세월』호참사가 터졌다.
그 배를 타고 수학려행을 떠난 아들걱정에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아내를 보는 나의 마음에는 그래도 한가닥 『설마』와 『행여나』가 남아있었다.
『방정맞은 소릴 작작해. 아무렴 그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정부가 가만있겠나, 막강한 군도 있겠다, 철통같은 안보도 있겠다, 매일같이 미국과 재난구조훈련도 했는데 이제 대책이 있을거다.』
아내도 나의 『행여나』와 『설마』에 수긍했다. 제발 내 아들을 구원해다오. …
박근혜가 진도에 빨간 스카프 날리며 달려와 부모잃은 여섯살 여자애의 볼을 다독이며 『즉각 대응』, 『즉각 대책』을 말할때 나와 아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그래, 이제는 내 아이가 살아났다.
아들아, 기다려다오, 최선을 다한다, 사력을 다하고있다…
하루이틀, 대엿새, 여덟아흐레가 넘도록 반복되는 해경과 정부의 선전공세에 의혹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었다.
그러나 그것까지 다였다.
매일과 같이 언론은 대통령의 『고군분투, 엄정대처, 불면불휴』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그것은 환관내시들의 아첨이었고 정부와 대통령을 믿은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우롱이었을 뿐이었다.
제 주머니까지 다 털며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달려온 민간잠수부들을 가로막고 500명이다, 600명이다 뻥치던 군잠수부들은 한두명 들락날락했을 뿐, 공기를 불어넣는다 어쩐다 했어도 말 뿐이었고 세계최고라던 구조선 『통영』함은 아예 투입조차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시간끌기, 철저한 진상은페였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다 죽인 다음에야 끌어올려 그들이 알고있을, 세상에 알려지면 안될 무엇인가 시커먼 것을 숨기려는 정치적 목적 뿐이었다.
수백명 아이들의 생명을 가지고 정부는 장난을 쳤다. 여기에 『시체장사』니, 『미개인』이니, 『선동꾼』, 『좌파발본색출』이니 하는 여당 것들의 막말과 악담까지 난무했다. 사건대책본부장이라는 총리는 학부모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차안에서 쿨쿨 잠만 잤고 아래 것들은 『황제라면』을 처먹고 사진찍고 폭탄주를 내돌리며 만세삼창까지 줴쳐댔다.
전 지역이 초상집이 되었는데 박근혜는 오바마를 국빈으로 청해다가 『북핵페기』와 『병진노선불가능』을 짖어대며 군서방 맞이한 행수기생처럼 화사한 연두색옷에 연지곤지 찍고 아양떨었다.
이렇게 정부와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을 철저히 버렸다.
채 피지 못한 꽃망울들이, 차디찬 물속에서 손가락마디들이 끊겨나가도록 살겠다고 바둥거린 애들이 차디찬 시신이 되어 돌아왔을 때 피 터지는 곡성을 터치는 수백명 학부모들과 함께 나의 억장도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아, 세상에 이럴 수도 있느냐.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선조들의 말을 왜 내 그리도 망각했더냐.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행여나』가 나의 아들을 불귀객으로 만들었다.
애당초 아이를 낳아보지도 길러보지도 못한 박근혜에게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달라고 빈 것 자체가 망상이었다.
『아버지는 미쳤어.』라고 저주하던 나의 아들아! 그래그래, 이 아비가 미쳤다. 독사가 아무리 화려한 껍질로 치장했어도 독사에 불과하거늘 왜 나는 『유신』의 후예를 그리도 쉽사리 믿어버렸던가.『유신』의 분신에 그처럼 허망한 기대를 걸었더냐.
저주한다. 생떼같은 내 아들과 꽃망울같은 우리 아이들을 통째로 수장시킨 이남사회를 저주한다.
그래도 마지막순간까지 『행여나』구원해줄가 혼신을 다해 기다렸을 그 숱한 아들딸들을 외면해버린 살인마 박근혜를 저주한다.
찍어버려. 더러운 화냥년에게 표를 던진 이 두손을 시퍼런 도끼로 찍어버려.
산산이 들부셔라. 애당초 여성이기를, 인간이기를 그만둔 독사같은 년이 둥지를 튼 저 청와대를 오늘의 임당수가 되여버린 남해의 검푸른 파도여, 폭풍쳐 들부셔버리라.
주민 김호성(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