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 칼럼 |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19-06-29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요즘 당국이 미국의 얼굴만 쳐다 보면서 남북관계개선에 대해 무슨 「승인」을 해줄 것을 바라는 것을 보느라니 어릴 때의 일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인데 내가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작은 밥상에 물사발을 놓고 꿇어 앉아 손을 합장한채 무슨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갑자기 무슨 기도를 하는가고 물었다. 어머니는 수주일째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해서 벼포기가 말라 죽는데 비가 와야 하지 않느냐 하며 그래서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우제를 한다고 해서 비가 오겠는가 하는 의혹을 가지면서도 어머니가 하는 것이니 맞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비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며칠째 찌는듯한 폭열만 계속됐지 비는 올념을 하지 않았다.

벼포기는 가드라졌고 논은 거북이 잔등처럼 터갈라졌다. 그후 비가 좀 내렸지만 어머니가 기우제를 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비가 오는듯 마는듯하며 사람의 간을 말리웠는가 하면 급작스럽게 쏟아내린 폭우로 논판이 물바다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해 농사는 흉년이라기보다 아예 폐농이었다.

쭉정이와 다를바 없는 볏단을 거두며 한숨을 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쌍한 모습을 보면서 하늘에 대고 빌기나 해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해에는 집에서 먹어보기 힘든 음식을 차리고 기우제를 지낸 다음 음식들을 강에 처넣기도 했다. 신령님이 그것을 드시고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부질없는 일들을 벌이며 속을 태우던 부모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 그때를 돌이켜보느라면 당시 부모님들이 처음부터 비를 기다리지 않고 강도 멀지 않는데 물길을 내거나 우물을 이용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 현 당국이 대미굴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숭미공미의 환상에 사로잡혀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의 「승인」을 바라는 것도 어머니의 허황한 기우제와 다를바 없다고 본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이 채택되고 판문점선언의 부속합의서인 군사분야이행합의서까지 발표되는 등 남북관계에서 사변적 의의가 있는 성과들이 이룩되고 겨레의 자주통일열기가 비상히 높아지고 있을 때 현 당국은 미국의 승인을 받아 남북관계개선을 확대하고 협력교류를 활성화할 마음으로 청탁외교를 벌였다. 남북관계문제도 미국의 인정과 지지를 받아야 추진할 수 있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한미워킹그룹이라는 난데없던 기구도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한미워킹그룹은 남북관계개선을 바라지 않는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은 그것을 통해 남북관계를 모조리 차단했다. 북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미국정부는 북에 대한 추가제재를 강행했다.

미국의 대북강경조치와 저들에 대한 압박에 주접이 든 현 당국은 미국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면서도 행여나 하고 기대를 걸면서 대북제재의 해제를 간청하군 했다.

마치 어머니가 청청한 하늘을 저주하면서도 비가 내려주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늘의 비는 누가 기도를 한다고 해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내리는 것이다.

미국도 저들의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누가 요청한다고 해서 대북적대시정책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더욱이 미국은 당국을 저들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동맹이 아니라 하인격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침략자이다.

그들은 오직 남과 북이 불신하고 대결하며 서로 싸우기만을 바라고 있다. 남북대결의 와중속에 저들이 톡톡한 이익을 챙기기 때문이다.

이미 중지하기로 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하기로 하고 미군의 신속기동무력까지 이 땅에 배치하는 등 새로운 군사적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도 저들의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려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이 남북대화에 대해 「지지」를 표시하는 등 이따금 생색내기를 하는 것은 저들의 더러운 정체를 가리우고 존재감을 과시하려는데 있다.

미국은 당국자들에게 예속의 올가미를 조였다 늦추었다 하면서 압박의 고삐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미국의 환심을 사고 저들의 목적도 이루어보기 위한 선물보따리를 듬뿍듬뿍 안겨주고 있다.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해 천문학적 액수의 국민혈세를 미군유지비에 섬겨 바치는 것이라든가 막대한 양의 미국산 무기들을 구입하는 것 등  당국이 있는 것, 없는 것 모조리 동원해 미국에 섬겨 바치며 저들의 간청을 들어줄 것을 바라지만 요지부동이다.

나의 어머니가 가난한 살림에서도 음식을 차려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갈망했지만 무심한 하늘이 그것을 전혀 알아주지 않은 것과 다를바 없다고 본다.

만일 당국이 남북선언들을 발표하던 초심에 서서 남북관계와 민족문제를 처리해나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국이 남북선언들에 밝혀진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선언들을 이행해나갔다면 남북관계개선과 민족적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 커다란 진전이 이룩되었을 것이고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통해 이남기업들은 물론 경제와 민생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때의 초심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예속과 굴종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누군들 실망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당국이 미국의 「선의의 조치」만을 기대하며 목줄이 졸리우는 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이 과연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이 자주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나 같다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주가 없고 줏대가 없으며 주견이 없이 외세의존을 숙명으로 여기는 당국에게 차례질 것은 나의 어머니나 우리 가족이 허무맹랑한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기다리다가 폐농을 면치 못한 것과 다를바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요즈음 부모님들의 비극적 삶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리에 갈마드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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