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 에세이 | 「미명이」를 보며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2-01-24

 

 

「미명이」를 보며

 

오랜 기간의 해외생활을 마친 나는 피로를 풀겸 친구와 함께 아침일찍 한강변 산책길에 나섰다.

무척 한가로운 기분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벤치에 앉아 장난에 여념이 없는 대여섯살잡이 두 어린애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얼핏 보기에도 한파를 막기에는 너무 부족한 색낡은 솜옷을 걸치고, 그래도 용모만은 삐어지게 뛰어난 어린 소녀애가 사내애와 함께 종잇조각을 접으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호기심에 앞서 애들을 다독여 주려고 얼른 다가가 소녀애를 안아주며 이름을 묻는데 왜서인지 소녀는 아무말이 없었다. 대신 옆에 있던 친구가 퉁명스레 『그 애는 「미명이」일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름 참 예쁘다』 하고 치켜세우며 볼을 비벼주는데 소녀애는 되려 얼굴을 떨구며 금시 울상이더니 나를 뿌리치고 달아빼는 것이었다. 사내애도 『우린 이름 없어』라고 맥없이 말하며 소녀애를 뒤따라 황급히 가버렸다. 마치 만나서는 안될 사람과 맞다들기라도 한듯이.

이날 친구는 나에게 「미명이」는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없는 애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한참 얘기하는 것이었다.

의문과 의아함을 털어버리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오기 바쁘게 「미명이」에 대한 검색에 나섰다.

『「미명이」는 출생미등록 아동을 통칭, 사전에는 등록되지 않은 단어』

『「전국 출생신고 실태조사」를 보면 2019년 74명, 2020년 72명의 출생 미등록 아동 발견』

『조사에 포함하지 않은 그룹홈, 미신고시설이나 가정에 있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실제 출생미등록 아동이 이보다 더 많을 것, 이조차 추정일 뿐 현황과 실태는 아무도 모른다』

『2021년 12월 30일에도 출생신고가 안 된 채 살아온 23세, 21세, 14세 세 자매가 제주에서 발견됐다』…

공식적인 이름이 없기 때문에 성명 미상, 미명이라는 그 자체로 불리우며 분류되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미명이」로 신고된 출생자만 보더라도 지난 2년동안 무려 백수십 여명이나 된다니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출생 신고가 안되는 경우는 부모가 혼외자이거나 미혼모일 때, 부모가 적절한 지원과 안내를 받지 못했을 때 등으로 복잡다단하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이 시각도 그 애들과 같은 미명이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고, 그들의 인생살이가 너무도 비참하다는 현실 앞에 나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미명이」들은 세상에 살지만 행정적으로는 없는 존재여서 기본적인 건강권, 교육권도 부여받기 어렵다고 한다. 신체장애가 있어도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못하고, 재난지원금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명이」들에게 구청에서 부여한 「관리번호」가 있긴 하지만 이 번호는 말 그대로 행정상「관리」를 위한 분류체계일 뿐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다. 더욱이 불행한 삶을 바라고 태어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려야 하는 무수한 「미명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끝없는 참살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누가 「미명이」들에 대한 인권 살인에 나서는가.

대답은 금방 나왔다. 오직 자신과 돈밖에 모르고, 자식과 후대들에 대해서는 얼굴 한번 돌리지 않는 냉혈인간들, 인간사회 앞에 그 어떤 도덕적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무뢰한들과 이들이 사는 「천국」인 것이다.

거듭 떠오르는 물음, 하다면 비록 이 땅에 이름은 가졌어도 「미명이」들과 다름 없는 미명이들도 살고 있는 무거운 현실 또한 목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입양아들과 성적 학대에 시달리는 여성들, 세계 최고의 빈곤율에 시달리며 불안한 노후에 고심하는 노인들, 극심한 생활고와 엄청난 빚더미에 세상을 등지는 일가족들…

현란한 불빛 아래 생존을 위협받는 99% 국민들의 비관과 절망, 신음 소리가 이 가슴을 파고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눈만 뜨면 「정의」, 「공정」, 「평등」과 같은 화려한 미사려구들이 귀청을 때리고, 넥타이 신사들은 「선진국」이니, 「국민의 안전과 삶」이니 하고 목청을 돋구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태어날 때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를 물고 나오고, 이것이 대물림되니 사회적으로 차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극도의 물질만능과 약육강식이 살판 치고 그로 인한 극단적 양극화와 부패타락, 부도덕이 가속화되는 것이 다름아닌 이 사회의 현주소인 것이다.

「미명이」이야말로 이름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이 땅의 어지럽고 불평등한 총체적 구조상을 확실하게 짚어보게 하는 하나의 지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미명이」를 보며 암담한 현실과 내일이 암울한 이 사회의 자화상에 대해 새삼스레 체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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