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 기사 | 무엇이 진정한 해법인가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2-06-22

 

 

무엇이 진정한 해법인가

 

영웅은 후세에까지 사람들의 동경을 자아내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민족의 사표이자 임진왜란의 영웅인 이순신장군의 이름은 요즘도 인터넷 인물 검색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아무 포털사이트에 가서 검색창에 ‘이순신’이라고 써보길. 최근에 씌어진 글이 오늘 아니면 어제 날짜일 거다.

위기의 상황일수록 그 이름이 더 자주 회자되며 우리들 속으로 다가온다. 명실공히 그는 위기를 가셔낸 난세의 영웅이어서 말이다.

그의 그 남다른 영웅성은 무엇에 바탕한 것이었을까.

분명 백성들, 자기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자주의식에 바탕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후세인들에게 알려진 민족우선의 사례는 너무 많다.

특히 큰 나라의 장수로 알려진 이와의 언쟁에서 보여준 이순신장군의 민족우선의 정신과 태도는 매우 유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강화가 본격화되어 왜군들이 철수할 무렵 뇌물에 넘어간 그 장수는 이순신장군에게 왜적들의 퇴로를 허용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으며 이에 화난 그 장수가 장검을 뽑아들고 위협해 나선다.

그 때 결곡한 우국충정의 일념과 비장한 사즉생의 각오로 임한 그의 결연한 태도는 어떠했던가.

“한 번 죽는 것을 그다지 아까워할 것은 없다. 대장인 나는 결코 적을 버려 두고 우리 동포를 죽일 수는 없다”

이순신장군의 도도한 언행은 사대의식으로 찌들어 있던 당시의 여느 관료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으며 그의 민족우선의 정신이 얼마나 거센 것이었나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눈에 거치는 게 없었을 거만한 큰 나라 장수의 언명도 주저 없이 거역하며 목에 칼이 들어선 시각조차 추호의 굽힘 없이 소신을 지킨다는 것은 당시에는 보통의 용기로 엄두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헌데 그 당당한 기개를 떠올릴 수록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왜 마음이 자꾸 구슬퍼지고 더 없이 허탈해지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 미국에 듣기좋은 말만 거듭하며 대미 종속, 자주성 상실의 악취를 짙게 풍기는 윤석열의 굴종적인 초저자세와 극히 대조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국가의 생존·번영을 목표로 하는 외교시스템은 철저하게 자주적 차원에서 추구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왜냐면 외교란 국익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국익을 수호하고 챙기는 데 유리한 국제적인 환경, 여건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외교이다.

자국의 실리를 위해 타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은 외교세계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헌데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 위정자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 눈이 감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굴종 외교는 예상보다 더 험악하고 치욕적이다.

소시적부터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며 자란 숭미성향 때문인지 대통령 당선후 윤석열은 시종 친미일변도 외교로 연이은 난맥상을 불러오고 있다.

이른바 ‘안미경중’을 ‘안미경미’로, 소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구축,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견제, 대러시아 압박의 동참, 한미일 3자공조의 강화…

‘굳건한 바위동맹’, ‘행동하는 한미동맹’을 외치며 덮어놓고 미국이 벌여놓는 굿판에 엉성한 발을 한치한치 들여놓고 있는 것도 입을 쓰겁게 한다.

특히 집권후 윤석열의 대북대응 방식은 그야말로 어리석고 무모하기 그지 없다.

동맹 강화, 동족 박살을 공공연히 주창하는 속에 이미 ‘도발’과 ‘규탄’이라는 언어가 다시 단골메뉴로 등장하였고 미 전략자산들의 상시적인 전개가 현실화되는가 하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규모와 형식, 기간 등의 대폭 확대로 과거 MB정권의 ‘묻지마’ 대북강경책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그야 말로 친미 숭미로 일관된 맹신과 추종이 질벅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국이다.

과연 우리의 안보·외교는 미국의 우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을 등에 업는 외교의 길로 가는 것이 요즘 외교가에서 그처럼 지꿎게 말하는 미래지향적인 외교라는 것인가?

그래서 윤석열 정부엔 온통 숭미주의자들로 포진되어 있고 외교수장으로 발탁한 인물이나 멤버들 역시 미국내 경력이나 인맥상을 고려해 기용하는 걸까?

허나 역사가 입증하듯 과거 사대로 얼룩졌던 구한말 시대는 치욕으로 끝을 맺어야 했고 현실이 방증하듯 자국의 안보를 외세에 의탁하면 전쟁으로 비운을 면치 못한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외교시계를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만 계속 돌린다면 엄청난 후과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주변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어 더 근심이 된다.

때문에 필자는 자주외교야말로 한국에 보다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미국과 일본 등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 민족의 자존심과 국익을 우선시하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로운 나라, 존엄있고 뱃 짱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미래지향적인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지난 70여 년 동안 남북의 분열과 긴장의 추구로 엄청난 정치경제적 이득을 얻었고, 또 지금도 한반도의 민족화해에 시종 노골적 부정으로 뒷다리를 당겨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주변국에 의해 초래될 정치군사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중의 이익을 매판하며 미국의 패권전략을 쫒아 돌격병 역할을 자처해나서고 있다.

시국을 걱정하는 이 땅이 장삼이사의 한사람으로서 어찌 진노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무지 칼끝 앞에서도 주저없이 민족의 존망을 걱정하고 동족의 운명을 우려했던 충무공의 태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윤석열 정부의 비루한 작태, 그것이 용산 집권자의 비굴한 사대의식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야욕은 넘치나 자질이 부족하고, 체통은 크나 속대가 부실한 윤석열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비굴한 친절과 지독한 의존 뿐일 것임은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그에 대한 우려에서였나?

일전에 역사학자이자 유명 유튜버인 황현필씨는 능력은 없으면서 자리만 탐하는 윤석열은 바로 ‘원균 같은 자’라며 이런 인물에게 우리 개개인의 안보와 생명과 외교와 국방을 맡길 수 있냐고 질욕을 터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윤석열의 불길한 등극으로 금후 한국의 외교 앞날이 어두울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로 인하여 발생할 국민 출혈이 무엇보다 걱정된다.

아마도 국민들이 충무공의 이름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은 닥쳐올 국난에 대한 깊은 우려 때문이 아닐까?

자주냐 굴종이냐, 민족이냐 외세냐…

과연 무엇이 진정한 국익이고 해법인가.

그 첫 걸음, 첫 시작이 무엇으로 되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시급히 자주의식을 복원하고 대미 굴종시스템부터 청산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 사는 국민들 그 누구도 그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자고로 시국은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지 않는가.

역사학자 이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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