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광장
  • 기타 | 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다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13-05-24

 

유신독재의 부활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1)

최근 새누리당패거리들속에서  5. 16쿠데타는 『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니, 『 오늘을 있게 한 근본초석』이니 하며  유신독재를 정당화는 망발들이 공공연히 튀여나와 만사람을 경악케 하고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몸서리치는  유신독재의 악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며 그 죄악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 『 구국전선』편집국은  유신독재시대를 부활시키려는 보수패당을  준열히 단죄규탄하면서 5. 16쿠데타의 진상과 18년간의 박정희파쑈독재시대를   만천하에 고발하기 위해 이 글을 연재로 발표한다.

                                                  1.   5. 16쿠데타의 진상

1961년 5월 16일 0시, 당시 국군 야전군사령부소속 6군단 포병대대와 1공수단, 해병여단 등에 서울을 점령하라는 출동명령이 하달되었다.  2군 부사령관이었던  박정희와 그  일당이 일으킨 5. 16쿠데타의 서막이었다.

쿠데타반란군이 서울 한강다리 남쪽입구에 다달은것은 새벽 3시였다.

반란군이 서울로 밀려든다는 정보를 입수한 륙군참모총장 장도영의 명령에 따라 한강다리에는 국군헌병대가 겹겹이 진을 치고있었다. 치렬한 교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헌병대의 방어진은 중무장한 반란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6군단 포병대대는 즉시 륙군본부를 점령하였고 1공수단은 국회의사당, 중앙청, 시청, 치안국, 중앙전신국, 국무총리의 임시숙소인 반도호텔 등을 일거에 장악하였다.  서울뿐아니라 대구, 부산, 광주 등 주요도시들도 반란군에 의해 일제히 장악되었다.

해병대와 공수단을 이끌고 한강을 돌파한 박정희는 방송국을 점령하고 그곳에  지휘부를 정한 다음 행정, 입법, 사법을 완전히 장악하였다는것을 발표하였다. 윤보선대통령은 식구들만 피신시키고 청와대에 숨어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으며 장면국무총리는  미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의 집으로 뛰여가 도움을 청하였으나  문전거절을 당해  수녀원으로 도피하였다.   

박정희는 육군본부에 갇혀있는 참모총장 장도영에게  전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것을 강박하였으나 그는  합법적절차를 받기전에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박정희는 『쿠데타자체가 헌법을 무시한 비법적인 수단인데 무슨 합법적인 절차를 밟겠다는 것인가』고 하면서 제가 직접 장도영의 이름을 빌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는 대통령 윤보선을 찾아가 계엄령선포를 승인하고 쿠데타를 지지하는 성명을 낼 것을 강요하였다. 계엄령선포로 장면정권의 국무위원 전원이 체포되었으며 국회와 지방의회는 해산되었고  정당, 사회단체의 활동과 집회 및 파업, 여행, 야간통행의 금지, 언론 , 출판, 보도의 사전검열, 금융의 동결, 비행장과 항만의 봉쇄 등 조치들이 취해졌다.

쿠데타직후 박정희는  『군사정권은 잠정 적인것이며 빨리 양심적인 정치가에게 정권을 맡기고 우리는 군대로 돌아가겠다』고 떠들었지만 실지로는 『정치활동정화법』과 같은 악법들로 정치적경쟁자들의 활동을 탄압하는 한편 비밀리에 민주공화당을 조작하는 등으로 집권준비에 미쳐날뛰었다.

이 것이 각계의 강력한 항거에 부닥치게 되자 박정희는  1963년 2월 기만적인 대통령 출마포기성명을 발표하고는 곧 돌아서서 정계혼란과 구정치인 퇴출을 구실로 군정연장을 요구하는 유례없는 국군시위까지 벌여놓는 추태끝에 군정을 4년간 연장할 것이라는 『3. 16성명』을 발표하였다.

군정연장을 반대하는 재야세력을 비롯한 각계층의 투쟁이 또다시 고조되자 박정희는 연내 민정이양을 하겠다는 기만적인 성명을 발표하고 5월 27일 쿠데타주도세력이 중심이 되어 조작한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되었으며 10월 15일에는 비상경계의 공포분위기속에서 사기와 협잡의 방법으로 대통령 감투를 뒤집어쓰는데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5. 16쿠데타의 진상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강탈한 후 7만명의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나중에는 저들이 써먹었던 장도영까지도 쿠데타반대음모를 꾸몄다는 죄를 들씌워 체포하였다.

5. 16쿠데타는 철두철미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그 배후조종자도 미국이다.

미국은 6.25전쟁에서  참패한후 이남에서  정치적혼란과 위기가 심화되고 1960년 4. 19인민봉기가 일어나 이승만정권이 거꾸러지자 강력한 철권통치로 이남에서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의 열망을 누르기 위해 이미전부터 점찍어놓았던 박정희군사깡패를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킬 음모를 꾸미였다.

당시 한국주둔  미사령관이었던 매그루더는 박정희에게 자기 관할의 국군무력을 서슴없이 대주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고는 육군참모총장패들이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보고하자   일체 간섭하지 말라는 비밀지령을 하달하였다.

또한 『미군을 동원하여 반란군을 진압해달라』는  윤보선의 요청마저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뿐만아니라 쿠데타가 일어난 즉시 미국무장관대리 볼스는 『신군사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는가 하면 매그루더가 직접 쿠데타의 핵심인물인 김종필을 만나 성공을 축하해주는 놀음을 벌이었다.

미국대통령 케네디는 박정희군사 정권을 지지하는 친서까지 보내여왔다.

그때 미중앙정보국 장관이었던 덜레스는 후날 영국의 BBC방송에 출연하여 『내가 재임중 미중앙정보국의 해외활동으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5. 16쿠데타였다』고 실토하였다.

이처럼 5. 16쿠데타는 그 무슨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각본에 따른 박정희의 백주의 날강도적인 정권강탈이었다.

역도의 뒤를 이어 군사깡패들인 전두환, 노태우도 12. 12숙군쿠데타를 감행하여 정권을 가로챘다.

실로 박정희역도가 자행한 5. 16쿠데타는 이남을  친미파쇼군사독재의 암흑천지로 더욱 전락시켜놓은 역사의 대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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