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광장
  • 투고 | 주석님의 회고록을 읽으며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2-07-08

 

 

주석님의 회고록을 읽으며

 

경향각지에서 '민족사랑방'이 출간한 김일성 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구독붐과 함께 격정의 토로가 끝없이 울려나오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느라니 주석님 회고록의 구절구절이 다시금 새겨진다.

그중에서도 간고했던 항일투쟁사가 삼삼히 밟혀온다.

주석님께서는 회고록에서 '반일전가'를 지으시던 때를 추억하시며 이렇게 쓰시었다.

“내 머리속에서는 문득 하나의 시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반일전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노래를 낳은 시상이었다.”

당시 1차 북만원정을 성과적으로 마치신 주석님께서 원정대를 이끄시고 두만강연안 유격구에로 가고 계시었다.

그 길은 참으로 간고했는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추격해오는 토벌대와 격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제는 “우리가 100명 죽고 유격대 한명만 잡아도 큰 소득이다. 우리는 100명을 보충할 수 있지만 유격대는 한명도 보충하지 못한다”면서 새로운 병력을 투입하군 했다.

토벌대가 얼마나 악착스럽게 따라왔는지 때식을 끓일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게다가 눈보라가 얼마나 세차게 일었던지 적아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얼마 안 있어 양식까지 떨어져 며칠동안 생눈으로 끼니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주석님께서는 대오의 맨 앞장에서 생눈길을 헤쳐가시고 숙영할 때에는 빨치산들과 꼭같이 보초도 서시었다.

이렇게 간고분투해 천교령 부근에 이르게 되었을 때 주석님께서는 그만 촉한을 만나게 되시었다.

고열에 시달리시는 그분을 뜨뜻한 곳에 모셔야 하겠으나 눈덮인 밀림 속에는 집 한채 없었고 토벌대가 집요하게 뒤따르다나니 우등불마저 피울 수 없었다.

대원들은 “대장동지가 이대로 가면 조선은 망합니다"라며 울음을 터치었다.

주석님께서는 당시 자신의 심정을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시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아직 죽을 권리를 주지 않았다. 역사와 시대앞에서 자기앞에 부과된 과제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한줌 흙으로 사라져버린다면 그는 불효자이다. 한 가정이나 가문의 범위를 뛰어넘어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인민앞에서 불효자가 되고마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불효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석님께서는 가까이에 쓰러져있는 한 대원을 흔들어 깨우시고 그에게 가사를 받아쓰게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시었다.

일제놈의 발굽소리는 더욱 요란타

금수강산 우리 조국 짓밟으면서

살인방화 착취약탈 도살의 만행

수천만의 우리 군중을 유린하노나

빨치산들은 하나, 둘 일어나 노래를 합창했다.

일어나라 단결하라 노력대중아

굳은 결심 변치 말고 싸워나가자

붉은기아래 백색테로 뒤엎어놓고

승리의 개가높이 만세 부르자

천교령의 눈보라를 뚫고 힘차게 울려퍼진 “반일전가”

진정 그것은 빨치산들의 가슴마다에 조국을 찾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혁명가의 신념과 지조를 안겨준 투쟁의 노래였으며 일제의 발굽 밑에서 신음하는 수천만의 우리 민중에게 단결하여 강도 일제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심어준 위대한 고무적기치었다.

항일빨치산들은 그 노래를 부르면서 용기백배 목적지까지 행군했고, 조국광복을 위한 애국 성전에 떨쳐나섰다고 한다.

진정 주석님이시야말로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로 빨치산을 일제 격멸에로 이끌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주신 해방의 은인이시다.

나는 그것을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으면서 다시금 깊이 절감했다.

대구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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