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계승과 혁신의 원리 그리고 《실용주의》
북의 신년공동사설은 신선한 충격을 우리에게 던져주고있다.
2008년 공동사설에서 언급된 《력사적전환》의 의미는 그 폭과 깊이가 다르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말그대로 세기적사변이 예고되고있다.》는것이다.
신년사의 기조는 《계승성과 원칙성》을 지키자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미 맑스의 원칙주의와 그것의 적용 그리고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경험했으며 이 산경험속에서 원칙과 계승성이란 철학의 탄생 즉 주체사상의 탄생과 구현을 보게 된다.
북의 공동사설이란 조선로동당, 조선인민군, 청년동맹의 기관지가 함께 사설을 내는 형태로 지난해에 대한 총화와 새해에 대한 기조를 밝히는것을 의미한다.
2008년에 발표된 공동사설은 다분히 남의 《대통령》당선자 리명박의 《실용주의》로선에 대한 정치철학적대응이라고 할수 있다.
회고록 3권 제7장 1절의 《보금자리》에서 김일성주석은 《계승과 혁신의 원리》(3권 2페지)란 말을 사용하고있다. 원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상황에 변화해나갈것이냐는 정치철학인것이다. 이에 《통일뉴스》가 소개한 공동사설의 요지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세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승성과 원칙성》을 중시하는 북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있다. 올해에도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줄기차게 전진하여온 우리의 강성대국건설위업은 새로운 력사적단계에 들어섰다.》, 《당의 선군령도따라 력사의 모진 풍파와 시련을 헤쳐온 우리 식 사회주의는 끝없는 생기와 활력에 넘쳐 승승장구하고있으며 우리앞에는 강성대국건설의 승리의 날이 마중해오고있다.》고 밝히는 등 원칙을 강조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변화된 환경에 대한 상황의 중요성을 천명한다. 《오늘의 현실은 6. 15통일시대의 흐름은 그 무엇으로써도 가로막을수 없으며 민족이 하나가 되여 힘차게 싸워나갈 때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실현할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고있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남조선에서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군기지들을 철페하여야 한다.》며 남북, 북미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립장을 강조하고있다. 이는 북미협상, 남에서의 《정권》교체와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정세를 반영하여 일단 원칙적인 립장을 천명하면서 변하는 상황에 이 원칙을 계승적응하자는것이다.
1933년 2월경 김일성사령관은 일제와 싸우는것과 동시에 좌경분자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3권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공산주의운동대렬내에는 처음부터 공산주의길을 걸은 사람들도 있었고 처음에는 민족주의를 신봉하다가 사상개조과정을 거쳐 점차 공산주의자로 된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런 주의에도 관계하지 않은 말쑥한 새 사람들만을 가지고 공산주의운동을 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3권 2페지)
《이것이 바로 혁명발전에서 우리가 지침으로 삼고있는 계승과 혁신의 원리이다. 공산주의사상이 인류사상사에서 최고봉의 사상이고 공산주의운동이 모든 형태의 혁명운동가운데서 최고단계의 혁명운동이라고 하여 이 운동이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서 발생발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3권 2페지)
그러나 좌경분자들은 구체적인 실정은 고려함이 없이 선행리론을 그대로 적용하여 《쏘베트》라는 집단공동체를 만든다.
회고록을 통하여 그들이 한 일들을 한번 들어보자.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극좌적인 구호밑에 사유재산철페를 선포하고 토지와 식량으로부터 낫, 호미, 걸이대와 같은 농쟁기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소유하고있던 모든 동산, 부동산들을 공동소유로 만들어버린 때부터였다. 쏘베트정부는 재산의 공유화를 일사천리로 강행한 다음 유격구안의 모든 주민들이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공동생활, 공동로동, 공동분배의 새로운 질서밑에서 움직이도록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쏘베트급진론자들이 념불처럼 외우고다니던 <아르쩰리>생활이라는것이였다.》(3권 59페지)
유치원생이 소학, 중학, 고등학교도 거치지 않고 대학으로 직행한 셈이였다.
쏘베트정부는 또한 큰 지주, 작은 지주, 친일지주, 반일지주를 가리지 않고 유격구역안에 있는 모든 지주들과 부농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였으며 마소와 량식까지도 일률적으로 수탈하였다. 동만땅이 소위 적색구역과 백색구역으로 분리된 후 적구(일본통치지역)로 내려가지 않고 유격구역에 남은 지주들은 대체로 반일감정이 강한 애국적인 지주들이였다.
좌경분자들은 중국녀자들이 전족을 하고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것까지 투쟁대상으로 삼았다. 1930년대 전반기는 동만지방에서 좌경의 전성기였고 좌경의 전횡속에서 신성한 혁명적원칙들이 시련을 겪고있던 시기였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있다.
《좌경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겠다는 나의 결심은 간도땅에 와서 더 굳어졌다. 나는 그때부터 일생동안 좌경과의 투쟁을 하여왔다. 간도시절의 체험은 해방후 우리가 좌경을 예방하고 관료주의를 청산하는 투쟁에서 큰 도움으로 되였다.》(3권 63페지)
《…쏘베트좌경로선에 맞설수 있는 결단과 새로운 테제가 필요하였다. 내가 종파주의를 청산하고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강화할데 대한 론문을 소책자로 발표했던것이 바로 이무렵이였다.》(3권 67페지)
아래에 중공당 만주성위 동장영과 김일성사령관이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동장영: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로동계급의 정권형태는 꼼뮨과 쏘베트라는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김일성사령관: 《…실정에 맞는 형태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봅시다.》
동장영: 《우리가 만든다구요? 슬프게도 나는 그럴만한 천재가 못됩니다. 맑스주의고전에도 없는것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그 어떤 문제를 고정불변의것으로 절대화하고 거기에 자기를 얽매려는 그런 부류의 견해와 립장에 김일성사령관은 동감을 표시할수 없었다.
김일성사령관: 《동장영동지, 프랑스로동계급이 꼼뮨을 내올 때 그 무슨 고전을 참고했던가요? 로씨야의 쏘베트가 맑스주의창시자들의 고전에서 명시된 정권형태였던가요? 쏘베트를 어찌 한 천재의 두뇌가 낳은 산물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인민이 요구하지 않고 로씨야현실이 요구하지 않았다면 쏘베트는 력사무대에 등장하지도 못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3권 73페지)
원칙과 상황, 계승과 혁신의 두 수레바퀴는 동시에 굴러야 하고 작동을 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 빨리 간것은 결코 성공이 아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안의 절박함같은 민족분단이란 위기속에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속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바로 원칙과 상황을, 계승과 혁신의 원리를 동시에 생각하는 지혜이다.
이 귀감을 무시할 때 그 피해는 모두 우리 국민에게로 돌아온다.
부디 새해엔 남북이 만나 이런 정치철학을 함께 토의하여 민족의 진로를 개척해주기를 바란다. 오직 리념을 넘어 《애국애족》이란 한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