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들이 좋아합니까』 중에서
( 1 ) □ 7월 8일에 하신 당부
주체90(2001)년 7월 8일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 7돐이 되는 날이였다.
바로 이날 그 누구보다도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크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을 찾으시였다.
꿈결에도 뵙고싶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다른 날도 아닌 7월 8일에 자기들의 일터에 모시게 된 공장일군들은 한동안 놀라움과 감격으로 목이 꽉 메여올랐다.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장군님께서 콩우유직장쪽으로 걸음을 옮기실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세워놓은 차를 보시고 《콩우유차로구만.》 하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장군님께 바로 저 차가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콩우유를 싣고 정상적으로 달려 우리 어린이들과 인민들이 왕차라고 불렀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왕차라?! 그럼,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차니 왕차지라고 하시며 밝게 웃으시였다.
그토록 만족해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공장의 책임일군은 《경애하는 장군님,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으로 1992년 6월 1일부터 현재까지 평양시안의 모든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10여만t의 콩우유를 생산하여 하루도 중단함이 없이 공급하였습니다.》라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콩우유를 공급하였다니 동무들이 나의 소원을 풀어준셈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공장일군들은 눈가에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라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지나온 날들이 그들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위대한 수령님을 잃은 대국상에 이어 나라가 력사에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게 되였을 때 인민들에게 식량마저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겠다고 국가에 차마 손을 내밀수 없어 망설이던 일이며, 이러한 때 우리들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더라도 우리 어린이들의 얼굴에만은 그늘이 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어린이들에게 영양식료품을 공급하는 문제는 그 누구도 흥정할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날의 모습이…
그 모습은 생전에 우리 어린이들에게 콩우유를 먹이려 심혈을 쏟아부으시던 위대한 수령님모습 그대로였다.
그 사랑에 떠받들리여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콩우유차는 근 10년동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해주신 콩우유공급시간에 탁아소, 유치원, 학교들에 어김없이 가닿군 했고 입원한 몇명의 학생들을 위해 병원에까지 찾아갔던것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이미전에 들여왔던 콩우유종합가공기를 현대적인것으로 바꾸며 어린이식료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자재를 우선적으로 대주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공장에 창고가 모자란다는것을 아시고 창고를 지을 자리가 없으면 다른 기관의 부지를 내여서라도 꼭 창고를 지어주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공장일군은 한평생 어린이들속에 계시며 미래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앞으로 생산공정을 현대화하고 공장을 위생문화적으로 더욱 알뜰히 꾸리겠다는 결의를 말씀올리였다.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니 자신께서 오늘 이 공장에 오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왔다고, 수령님께서 생전에 우리 어린이들을 그처럼 사랑하시였는데 그 뜻을 받들자고 자신께서 오늘 이 공장에 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래서였구나. 할 일도 많으신 우리 장군님께서 사연깊은 이날 우리 어린이식료품공장을 찾으신것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콩우유를…)
북받치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공장일군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숭엄히 우러르는데 그이께서 남기신 당부는 참으로 절절하고 뜨거운것이였다.
동무들이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고 일을 더 잘하여야 한다고, 우리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영양식료품을 더 많이 만들어 공급하기 바란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