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사립문을 나서며 《새날안고 돌아오리라》
《공백》의 상실은 가장 큰 상실
도대체 이 나라 경제 어디가 잘못되여 온갖 거짓말도 못 본체, 통일조국도 외면한채, 나라의 주권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살리기》 이 말 한마디에 다 껌벅하고말았는가? 정말 국민들이 로망을 했나.
《잃어버린 10년》, 《좌파정권》,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이런 말앞에 그만 우리의 온 뇌리는 마비되고말았다. 체 게바라의 《말의 힘》이란 시가 생각난다.
나는 깨달았다/ 단 한사람이나/ 단 한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정상으로/ 올려놓을수도 있다고/ 있다는것을
말의 힘이 그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떨어뜨릴지를. 우리도 그를 이기려면 새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를 살릴 말 한마디가 전광석화같이 뇌를 스쳐간다. 《공백(void)》이란 말이.
그렇다.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열광한 리유는 우리가 지금 공백을 상실했기때문이다.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 )는 수학의 공집합의 기호 Ф에서 그의 정치철학을 시작한다. 불법체류자, 집시, 유태인들같이 모든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생존권이 절대적인 위협을 당한 부류의 인간들을 공집합이라고 전제한다. 우리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나라잃은 40여년 우리의 삶이 공집합에 속하는 시기였다. 《아리랑》공연의 첫 장면 《눈물젖은 두만강》은 우리 민족이 공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행렬이다.
김일성사령관이 동만일대에서 이 행렬을 무어내며 유격활동을 한것은 바로 공백으로부터 다시말해 무로부터 유의 창조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탈출(exodus)》은 그자체가 고난의 련속이였다. 나는 회고록을 읽으면서 북은 분명히 이 공백의 고난의 기간을 력사의 모형으로 기억하고있는것을 보았다. 백지에서 어떻게 새 나라의 그림이 그려질수 있는가를 보았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이 에짚트노예생활에서 탈출의 전승 소위 《출애급전승》을 최대의 민족사로 기억하면서 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뉴월절을 지키며 누룩없는 빵을 먹는것과 같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지금 이 공백을 상실했다는것을 확인했다. 그러면 공백, 그 공백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건전하던 한가정이 어떻게 철저하게 공백으로 환원되고말았는가를.
김일성사령관의 가정
김일성사령관의 생가인 평양 만경대집에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두 삼촌 그리고 동생 둘이다. 김성주(김일성사령관의 본명, 1912. 4. 15-1994. 7. 8)의 할아버지는 김보현(1871. 8. 19-1955. 9. 2), 할머니는 리보익(1876. 5. 31-1959. 10. 18), 아버지 김형직(1894. 7. 10-1926. 6. 5), 어머니 강반석(1892. 4. 21-1932. 7. 31), 삼촌 김형권(1905. 11. 4-1936. 1. 12), 삼촌 김형록, 동생 김철주(1916. 6. 12-1935. 6. 14), 김영주 등이다. 이렇게 일가성원들의 생년월일을 밝히는것은 만경대가문의 가정사가 우리 민족 현대사와 련관이 되기때문이다.
김일성사령관의 집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삼촌 한분만 남겨두고 온 집안이 나라를 찾겠다고 새벽아침 사립문을 나서 먼길을 떠난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하고있다.
《그러나 그들가운데서 조국으로 돌아온것은 나 하나뿐이였다.》(1권 11페지)
《끌끌하던 자손들이 스무해사이에 다들 이렇게 낯선 산천에 한줌 흙으로 뿔뿔이 흩어져 널리였다.
해방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사립문밖에서 나를 부둥켜안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 하며 내 가슴을 두드리였다.》(1권 12페지)
실로 일제는 우리 2천만 조선민족 하나하나 구성원들의 정상적인 삶을 다 파괴하고말았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극소수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조선민족모두를 정상적인 생활궤도에서 사정없이 밀어냈다. 국권의 상실과 함께 민족고유의 풍토우에서 이어오던 생활은 박산이 났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초보적인 자유와 권리, 생존조건, 전통적인 풍습들은 여지없이 초토화되였다.…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이 학교로 가지 못하고 거지와 류랑민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며 시집장가를 가야 할 처녀총각들이 생활고때문에 혼기를 놓쳐버리며 안해와 남편들이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고 산중에서 고생하건만 그들은 조선사람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았다.》(6권 117페지)
1930년대 중반시점에 와서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혹은 군속으로 사정없이 내몰았다. 그리고 이때는 우리 고유문화말살획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이다. 그래서 우리의 토속적인 문화전통이 상당부분 류실되여가고있었다.
여기 일제의 문화말살정책과 우리의 고유한것을 송두리채 짓밟아버리는것에 안깐힘으로 맞서 시(詩)로써 이에 항거한 백석(白石)이 있었다. 그의 시는 해금에서 풀려나지 못해 최근까지도 읽을수 없었다. 지금 시중에는 수권의 그의 시집이 나와있고 그의 시에 관한 학위론문과 단행본도 여러권이 있다. 백석 시가운데 명절날 일가친척들이 모여 단란했던 가족분위기를 섬세하게 전하는 시는 《여우난골(族)》이다. 여우가 나오는 고을의 가족이란 뜻이다.
내 나라, 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았더라면 김일성주석의 집안도 여느 다른 집안들같이 명절이면 집안식구들 모여 아이들과 쥐불놀이하며 숨박곡질하며 지냈을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던 책도 읽고 희망이던 문학도가 되였을것이다. 김일성주석의 어린시절 정상적인 가족들의 풍경, 특히 관서지방의 풍경을 백석시인만큼 잘 그려낼수는 없을것이다. 이 정상적인 삶의 모습을 알아야 일제가 우리한테 무엇을 앗아간줄을 알기때문에 백석의 《여우난골(族)》(여우가 나오는 고을의 가족)을 여기 소개한다.
여우난골(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매 진할배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매 할배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오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바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기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오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릇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오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선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롯목싸움자리 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1935년 11월 발표)
(진할매 진할배-친조부님, 토방돌-집채의 락수물 고랑 안쪽으로 돌아가며 놓은 섬돌, 오리치-평북지방 토속적인 사냥도구, 야생오리 잡는 도구, 반디젓-밴댕이젓, 안간-안방, 숨굴막질-숨박곡질, 아릇간-아래방, 조아질-평안도에서 아이들이 노는 공기놀이, 쌈방이-주사위, 바리깨돌림-주발을 돌리며 노는 아이들의 놀이, 오박떼기-아이들의 놀이, 제비손이구선이-흔히 다리를 마주끼고 손으로 다리를 치며 세는 놀이, 화디-등잔을 얹어놓는 도구, 사기방등-흙으로 구운 등, 홍게닭-새벽닭, 텅납새-처마의 안쪽 지붕의 도리에 얹힌 부분, 동세-동서, 무이징게국-민물새우에 무를 썰어넣고 끓인 국)
이 시기의 고유한 가족분위기와 어린 날의 놀이분위기를 세세하게 작품으로 남긴 시인이 백석이다. 전통음식이름, 놀이이름들, 무엇보다 당시 관서지방의 토박이언어들. 리효석 같은 문인도 백석 시를 통하여 잃었던 고향을 다시 찾았다고 감탄했다. 우리는 그나마 백석의 시를 통해 김일성주석이 어렸을 때 살았던 관서지방의 고유언어와 단란한 그리고 표준적인 가정의 행복한 분위기의 단면들을 엿볼수 있다. 여기 백석 시를 소개하는 리유는 우리의 행복했던 삶의 분위기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함으로써 일제가 파괴시켜버린 비정상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사립문을 나서며. 《사랑하는 어머니 부디 안녕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이미 파괴된 가족 그리고 대들보가 허물어진 집에 더이상 둥지를 틀고 살수 없게 되였다. 이들은 삼삼오오 자기 집 사립문을 나와 먼길을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오직 일념은 잃어버린 나라 다시 찾고 단란하고 행복했던 정상적인 가족의 삶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그때부터 남의 집 사립문에 들어설적마다 이 사립문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몇이며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얼마일가 하는 생각을 하군 하였다. 이 나라의 모든 사립문들에는 눈물에 젖은 리별의 사연이 있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혈육들에 대한 목메인 그리움과 뼈를 에이는 상실의 아픔이 있다.》(1권 12페지)
혁명가극 《피바다》는 한 녀성혁명가의 생을 그린 작품이다.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는 집안의 자식들마저 병역을 기피하고 원정출산을 떠나는 마당에 지금 북의 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여있는 항일유격대원들, 그들의 집안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을 혁명에 내보내고 자식들, 심지어는 11살 소년들마저 앞다투어 유격대를 자진지원해 따라나섰다. 먼동트는 아침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잃은 나라 다시 찾고 돌아오라, 그리고 그날까지 부디 《안녕히》란 말 한마디 남기고 리별하였지만 살아서 돌아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혁명가극 《피바다》에 《광복의 새날안고 돌아오리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먼동이 트는 이른새벽 혁명의 먼길 떠나는 아들과 어머니가 사립문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곡이다.
저 산너머 먼동이 밝아오는데/ 아들아 내 아들아 어서 떠나거라/ 나라찾는 한길에서 목숨바쳐 싸우거라/ 광복의 새날안고 돌아오너라
사랑하는 어머니 부디 안녕히/ 굳세게 그날까지 싸워주세요/ 이 한목숨바쳐서도 내 나라를 다시 찾고/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오리라
우리 생활속에서 《사립문》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리별과 상봉, 헤여짐과 만남의 경계선이 바로 사립문이다. 우리 농촌의 사립문은 안과 바깥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래서 그 사립문너머 그 집의 마루와 안방까지도 다 들여다볼수 있다. 사립문은 사람의 키보다 낮아 보내는자와 떠나는자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눈물을 서로 씻어주고 닦아줄수 있는 간격의 공간이다.
항일유격대원들과 독립운동가들가운데 대부분은 적령기에 결혼하지 못한 청춘남녀들과 학령기에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병들이였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사립문앞에서 어머니와 마지막작별을 한 후 두번다시 그 사립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골짜기의 전장에서, 강가에서 죽어 지금은 그들의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해 해방의 종은 울렸는가? 마땅히 그들이 하루속히 조국으로 돌아오라는 신호의 종이였어야 하는데 영원히 사립문은 그들을 기다리고있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집을 나선 이 시대, 이 땅에 살았던 항일유격대원들의 고향집은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이 상징이 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경대를 찾는다. 만경대에 있는 소박한 농가인 이곳에 사람들이 찾아가는 리유는 그곳에 가면 무엇을 생각하고 돌아오기때문이다.
조국을 그리고 민족을 생각하고 나아가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간다. 강정구교수가 말한 《만경대정신》이란 이런 소박한것일것이다. 거기에 리념의 덧옷을 입히는것은 《반공》론리에 익숙한 판검사들의 시대착오적인 론리일뿐이다.
풍찬로숙하며 눈서리 날리는 만주벌판, 백두산 굽이굽이마다, 압록강 줄기줄기마다 잃은 조국 찾기 위해 떠돌던 이 나라 젊은 항일유격대원들은 《사향가》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였다.
1.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2.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3.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8권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는것이 항일혁명 20년의 로정을 걸으면서 내가 얻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였습니다. 잃기는 헐해도 찾기는 힘든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뜻입니다. 순간에 잃은 조국을 찾느라고 수십년, 지어는 수백년의 고생을 해야 하는것이 이 세상의 준엄한 리치입니다.》(8권 489페지)라고.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00여년만에 독립했다는것은 잘 알려져있는 사실입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300여년, 알제리는 130여년, 스리랑카는 150여년, 윁남은 근 100년만에야 각각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있었으니 망국의 대가란 실로 얼마나 비싼것입니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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