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물
  • 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2. 미군정배격의 불길을 지펴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13-02-25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2. 

미군정배격의 불길을 지펴

 

남조선로동계급이 앞장에서 벌리는 미군정반대투쟁은 1946년 로동자들의 9월총파업과 10월인민항쟁의 불길로 타번지면서 남조선전역에 파급되였다.

9월 식량보장과 임금인상, 미군정의 온갖 폭압의 즉시중지, 민주주의적로동법령의 실시를 요구하여 벌린 부산철도로동자들의 투쟁은 서울, 대전, 안동, 대구, 인천, 목포, 수원, 리리 등으로 급속히 파급되였고 마침내 남조선전역을 휩쓴 정치적인 총파업으로 발전하였다.

인민들의 대중적투쟁에 질겁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파업을 총칼로 탄압하였다. 곳곳에서 파업군중과 적들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적들의 탄압만행이 강화될수록 남조선로동자들과 인민들은 더욱 세찬 투쟁을 벌렸다.

마침내 투쟁은 대구의 수천명 로동자들과 학생, 시민들이 10월에 들어와 선코를 떼면서 남조선전역을 전인민적반미항쟁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 투쟁에는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도시소시민 등 약 230만명의 애국적인민들이 참가하였다.

9월총파업과 10월인민항쟁은 적들의 탄압책동과 박헌영을 비롯한 종파분자들의 해독행위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미제의 식민지통치기반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으며 미군정통치를 짓부시기 위한 남조선로동자들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가혹한 탄압과 박해속에서도 미군정을 반대하는 투쟁이 계속되고있던 주체35(1946)년 12월 27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남조선에서 10월인민항쟁에 참가하였던 리재영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온몸에 젊음이 넘치시는 그이께서는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동무가 재영동무요? 어디 다친데는 없습니까?》라고 하시며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 순간 그는 마치 태양의 거대한 인력에 끌리우듯 그이께 온넋이 끌리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으신채 집무실 책상옆으로 데리고 가시여 친히 의자를 권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놈들의 눈을 피해 먼길을 오느라고 많은 고생을 했다고, 정말 잘 왔다고 거듭 말씀하시면서 가족은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순간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간고한 투쟁의 나날 제자신도 가족의 생사여부를 알아본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반년전에 얼핏 다녀온 후로는 집소식을 잘 모른다고, 지난해에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생이 여기에 와있을뿐이라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반색을 하시며 동생이 누구인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리재업이라고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재업동무가 동무의 동생이였구만라고 하시며 기뻐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해전에 강영창, 김두삼, 두순종, 윤정섭 기술자들과 함께 사선을 넘어온 그의 동생을 잘 기억하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동생은 여기에 와서 잘 있는데 가족들이 박해를 받겠다고, 어디에 잘 피신이나 해있었으면 좋겠다고 걱정하시더니 집주소를 물으시였다.

그가 집에는 늙으신 어머니와 안해, 아들딸 네 남매가 있다고 하면서 집주소를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집주소를 되받아 외우시며 수첩에 적으시고는 남에서 싸우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그는 그이의 따뜻한 말씀에 이끌려 남조선에서 당조직을 꾸리던 일이며 로동자들을 각성시켜 미군정통치를 짓부시는 대중투쟁을 벌려나가던 사실들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의 보고를 주의깊게 들으시던 수령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은 백지장처럼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빨간물을 들이면 잡색이 없이 곱게 빨간색이 든다고 하시며 로동계급의 힘과 지혜에 의거한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해주시였다.

당조직을 꾸리는것과 함께 운수로조, 출판로조 등 여러 합법적대중단체들을 무어가지고 대낮에 버젓이 붉은기를 띄운 천막안에서 적들을 구슬려넘기며 투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참 장하다고, 동무야말로 영웅이라고 과분하게 치하해주시였다.

그 순간 사진기에서 벙긋하고 섬광이 일었다. 력사에 남을 사진이 찍혀진것이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주시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되여있다.

그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버이를 모신 행복감에 가슴이 쩌릿해졌다.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떤 풍파도 헤쳐나갈 든든한 배심이 가슴에 꽉 들어앉았다.

돌이켜보면 일찌기 대구상업학교시절에 독서회사건으로 쫓겨났을 때에도, 일본에 건너가 신문배달을 하며 반제동맹사건에 관계했다가 처음으로 류치장에 갇혔을 때에도 그리고 중국 동북의 여러 도시와 광야를 헤매면서도 전설적영웅으로 이름높으신 김일성장군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찾았는지 몰랐다. 그런데 바로 그 위대한분을 가까이에서 뵈옵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꿈만 같았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의 통일단결을 위해 사소한 종파적행위도 허용하지 말며 우리 나라 지식인들의 특성과 혁명성을 잘 알고 그들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미제의 교활한 본성을 잊지 말고 모든 투쟁을 미제의 남조선강점을 반대하는 투쟁에로 지향시킬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미국놈들이 있는 조건에서는 통일이 되지 않는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어디까지나 우리 조선사람의 손으로 나라를 자주적으로 통일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리재영은 수령님의 이 말씀에 우리 민족의 단합된 주체의 힘으로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시려는 그이의 드팀없는 철의 신념과 의지가 진하게 새겨져있음을 절감했다.

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에 앞서 그가 입은 옷을 자세히 살펴보시더니 아직 홑옷을 입고있다고 하시면서 안색을 흐리시였다.

그는 가슴을 쭉 펴고 《괜찮습니다. 옷이야 뭐랍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도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수령님을 뵈올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 선뜻 발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머뭇거리는 그에게 왜 그러는가고 물으시였다.

《장군님, 이제 찍은 사진을 한장 주실수 없습니까?》

그이의 위대한 영상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것이 소원이였던 그가 용기를 내여 이렇게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한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며칠후 사진을 보내주시였다.

남반부로 돌아간 그는 절세의 위인을 모시고 사진을 찍은 자기를 몹시 부러워하는 전우들에게 《이 사진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신임장이요. 나는 이 사진을 가슴에서 평생 떼여놓지 않겠소.》라고 말해주군 하였다.

그 사진은 기쁠 때 들여다보면 기쁨을 몇곱절 더해주고 괴로울 때는 주저앉지 말라고 신념을 주는 정신적기둥으로 되였다.

그는 전쟁시기에는 지리산빨찌산부대의 정치위원으로 적의 배후에 제2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수령님의 사상을 받들어 잘 싸웠으며 그후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와 남조선에서 온 가족들과 상봉하고 복된 삶을 누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재영에게 돌려주신 그렇듯 고결하고도 뜨거운 믿음과 사랑은 결코 그에만 한한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남녘의 모든 애국적인민들을 미군정통치를 짓부시고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건설에로 떠미는 힘의 원천이였다.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링크드인으로 보내기 구글로 보내기 레디트로 보내기 카카오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