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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1장. 3. 남조선민주녀성동맹 일군들도 만나주시여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13-04-01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제1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3.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의 나날에

남조선민주녀성동맹 일군들도 만나주시여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의 나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사람들속에는 남조선민주녀성동맹일군들도 있었다.

주체37(1948)년 4월 2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원장 류영준과 리경희, 홍종희, 김남숙을 비롯한 남조선민주녀성동맹일군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담화를 나누시였다.

남북련석회의가 열리는 기간 내내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뵙고싶은 마음 간절하던 남녘녀성일군들은 바라고바라던 소원이 성취된 기쁨으로 하여 한없이 설레이였다.

이날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그들이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북반부 도처에서 뜨거운 동포애의 정이 넘치는 환대를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며칠전부터 동무들을 만나보려고 하였으나 바쁜 일이 제기되여 오늘에야 시간을 내게 되였다고, 량해해주기 바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조선에서 미제와 반동파들의 파쑈적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녀성들의 사회적해방과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헌신분투하여온 그들에게 사의를 표하시였다.

그 순간 류영준위원장은 지나온 나날이 되새겨지면서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수령님을 우러렀다. 그럴수록 그이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에 휩싸이지 않을수 없었다.

일찌기 민족주의운동에 관여하였던 그는 서울에서 근우회를 뭇고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다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반일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었다. 그는 병원간판을 걸고 치료로 생업을 이어가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민족주의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온갖 지성을 아끼지 않았다.

민족주의독립운동자의 한사람이라는 자부심과 일본이나 미국 할것없이 일체 침략적인 외세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깨끗한 민족적량심을 지녔던 류영준선생은 해방후 남조선에서 민주녀성동맹결성에 관여하였으며 동맹결성과 더불어 위원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이 나날에 애국적인사들과 자주 접촉하게 되면서 그는 이들로부터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를 믿어주실뿐아니라 애국사업에 헌신하고있는것을 높이 평가해주고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신심에 넘쳐 녀맹사업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갔다.

당시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북반부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오는 봉건륜리도덕의 페습으로 인하여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천대와 멸시속에서 살아오던 녀성들을 사회적으로 해방하는 문제를 민주주의혁명의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고 1946년 7월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하였으며 그것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실제적으로 구현되고있었다. 그리하여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권리도 가지지 못하고 사회정치생활에 참가하지 못하던 녀성들의 처지는 하루아침에 달라지게 되였다.

북반부에서 녀성들이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해방되여 새 조국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는 현실에서 힘과 용기를 얻은 류영준선생은 녀맹대렬을 각계각층의 애국적녀성들로 확대해나가는 한편 북조선에서 실시한것과 같은 토지개혁을 남조선에서도 실시할것을 요구하고 축첩, 기생제도, 인신매매제도를 반대하며 남녀평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그의  활동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오던 미제와 그 주구들은 탄압의 마수를 뻗치여 군중대회에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지지찬양하는 연설을 했다고 그를 체포하여 온갖 박해를 가하였다. 더우기 이때 그를 괴롭힌것은 《혁명가》라고 자처하는자들의 모해책동이였다.

그자들은 어떻게 류영준과 같은 경력이 복잡한 녀자가 중요한 사업을 맡아할수 있는가고 여론을 퍼뜨리면서 그가 스스로 자리를 내놓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류영준선생은 억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자기의 괴로운 마음을 하소할 위인을 남조선에서는 찾을수 없었다. 그러한분은 오직 한분, 온 민족이 우러러받드는     김일성장군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미전부터 안면이 있던 안신호를 통하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 자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올리게 되였다.

그의 편지를 받아보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격분해하시며 안신호에게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기대는 변함이 없다는것을 잘 알려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자신께서는 회답편지를 길게 쓰지 않을터이니 안선생이 체험한 사실을 이야기해주면서 우리의 의도를 알려주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류영준선생은 해주에 와서 안신호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게 되였다.

안신호를 통하여 김정숙녀사의 회답편지와 말씀을 전달받은 그는 자기에게 안겨주시는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녀사의 믿음과 사랑에 커다란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교신자이며 유명한 민족주의자인 안창호의 동생인 안신호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북반부에서 녀맹일군으로 활동하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다는것을 알고 다시한번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혁명가라고 하면 종교인들과 민족주의자들을 무턱대고 배척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그였다.

그러나 안신호의 모습을 통하여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종교인이건 민족주의자이건 애국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지 한품에 안아 참된 길로 이끌어주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며 자기에게 안겨주신 믿음도 바로 여기로부터 우러나오는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가슴속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이리하여 그는 서울로 돌아가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높이 받들고 녀맹조직을 꾸려도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주녀성들로 꾸리였고 투쟁을 벌려도 미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며 통일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벌렸다. 그리고 미제와 그 주구들에게 체포되여 가혹한 고문을 받을 때에도 우리 녀성들이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따른것이 어찌 죄로 되는가고 추상같이 웨치며 애국의 지조를 꿋꿋이 지켜 싸울수 있었다. 그리고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초청장을 받아안았을 때 남먼저 북행길에 올랐던것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녀성들의 의로운 애국적투쟁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시면서 이들이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온갖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들으며 감동을 금할수 없었던 류영준위원장은 일어나서 이렇게 정중히 말씀드렸다.

《장군님, 우리는 이번에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고 북반부의 여러곳을 참관하는 과정에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능히 민족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다는 신심을 굳게 가지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긍정해주시며 동무들이 잘 알고있는바와 같이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군정을 실시하고 주인행세를 하고있으며 사회의 민주주의적발전을 억제하고 인민들에게 기아와 빈궁만을 강요하고있다고, 오늘 미제는 전체 조선인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감시하에 남조선에서 기어이 반동적인 단독선거를 실시하여 괴뢰정부를 조작하려고 획책하고있다고, 미제의 책동으로 인하여 유구한 세월 단일민족으로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인민은 나라의 영구분렬위기에 직면하고있으며 남조선인민들에게는 또다시 식민지노예의 멍에가 들씌워지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러한 정세하에서 사상과 정견이 서로 다른 남북의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방도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론의하고 견해의 일치를 본 남북련석회의의 의의와 성과에  대해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이것은 매국적인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배격하고 자력으로 조국을 통일하려는 우리 인민의 자주정신과 애국적열망이 매우 높다는것을 말하여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오늘 남조선민주녀성동맹앞에는 남조선에서 미제와 그 주구들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민주주의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로 광범한 녀성들을 조직동원하여야 할 무거운 과업이 나서고있습니다.》

남조선녀성대중의 힘을 굳게 믿고 하시는 크나큰 기대와 은정어린 말씀이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당면하여 남조선민주녀성동맹이 광범한 녀성들속에서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에서 토의결정된 내용과 그 의의에 대하여 소개선전하는 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특히 련석회의에서 채택된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와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격문 그리고 유엔림시조선위원단과 쏘미 량군을 철거시킬데 대한 요청서는 전체 조선인민의 념원과 의사를 반영한 자주적인 통일구국강령인것만큼 이에 대한 해설선전을 잘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편 녀맹에서 《단선단정》반대투쟁위원회의 지도밑에 여러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과 련계를 가지고 공장과 광산, 도시와 농촌, 어촌, 학교를 비롯하여 녀성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투쟁은 여러가지 방법, 군중집회와 시위도 할수 있고 태업과 파업 같은것도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남조선녀맹조직들이 미제와 반동들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는데서 중간 및 우익녀성단체들과의 사업을 잘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중간 및 우익녀성단체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 조직들과 공동행동, 공동투쟁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자주녀성동맹을 비롯하여 경향성이 좋은 중간 및 우익녀성단체들과 공동행동을 취하는데 주의를 돌리고 남조선녀성들이 단합된 력량으로 미제와 그 주구들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수령님의 간곡한 말씀을 받아안은 이들은 앞이 확 열리고 뭐든지 못해낼 일이 없을것 같았다. 이 영광의 자리에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에 북에 와보고 통일된 조선은 북반부와 같은 민주주의사회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확신하였다고 절절하게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의견을 긍정해주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동맹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광범한 녀성들을 굳게 결속시키는것은 남조선민주녀성동맹앞에 나서는 중요한 임무이라고 하시면서 근로녀성들속에 들어가 녀맹조직을 복구정비하고 거기에 광범한 근로녀성들을 망라시킬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사실 남조선민주녀성동맹의 사업에서는 지난 기간 남조선로동당에서 당원 3배가, 5배가운동을 한것을 본따서 맹원 300만증가운동을 전개하다보니 그 후과가 엄중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녀맹조직건설원칙에 어긋나는 매우 잘못된것이였다. 그 전해인 1947년에 있은 검거선풍때 서울에서만도 200여명의 애국적녀성들이 체포되는 가슴아픈 일을 당하게 된것 역시 녀맹조직들에서 원쑤들의 탄압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을 바로세우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녀맹조직들에서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녀맹조직을 보존하고 녀맹사업을 잘해나가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 하며 정치실무수준을 부단히 높여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할뿐아니라 능숙한 사업방법을 소유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데 대해서도 일일이 강조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주녀성동맹일군들과 하신 담화는 남조선녀성운동이 나아갈 길을 뚜렷이 명시한 강령적인 지침이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꼭 명심하고 일을 잘해나가겠습니다. …》

류영준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께 이렇게 굳은 결심을 다지였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 녀성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곁을 떠날 시간이 되였다. 한없이 자애로운 그이의 품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심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들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주시며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원쑤들의 발악이 더욱 심해질것이 예견되므로 언제나 경각성을 높이고 신변안전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가르치심과 극진한 보살피심속에 남조선의 애국적녀성들은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민족대단합의 격류속에 힘있게 합류해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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