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제2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2. 전후 자주적평화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나날에
전국전투영웅대회에 불러주시여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전승의 축포가 조국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때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민족의 자주권을 영예롭게 지켜내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이 차고넘치였으며 그이의 령도따라 나아갈 때 이 세상 못해낼 일이 없다는 철석의 신념이 더욱 굳게 뿌리내리고있었다.
그러나 정전후 남조선형편은 수습할수 없는 혼란상태에 빠지고있었다. 정치적, 경제적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하여지고 인민들의 생활은 더욱 비참한 처지에 놓이였다. 미제와 그들의 총검에 의하여 유지되는 리승만매국반동통치에 대한 인민들의 증오와 반항기세는 더욱 확대되여가고있었다. 한편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저들의 위기로부터의 출로를 새로운 전쟁도발에서 찾고 정전협정의 요구를 란폭하게 위반하면서 무력을 증강하고 전쟁준비를 미친듯이 다그치고있었다.
이러한 정세는 공화국정부로 하여금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며 평화적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을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전후 우리 나라에 조성된 군사정치정세를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조선사람자신이 협상의 방법으로 해결할데 대한 방안을 천명하시였다.
이 방침은 북과 남 온 민족의 단합된 힘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 길을 밝힌것으로서 진정으로 민족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수할수 있는 원칙적이고 공명정대한 방안인것으로 하여 전체 조선인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42(1953)년 8월 중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에서 전국전투영웅대회를 소집하시고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특출한 공훈을 세운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대회에 불러주시였다.
바로 이 대회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전국영웅대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월 19일 친히 이 대회에 참석하시여 조국해방전쟁에서 영웅들이 세운 공훈과 업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 그들이 앞으로도 자기들이 맡은 과업을 영웅적으로 수행하리라는 크나큰 기대와 믿음을 표시하시였으며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귀중한 선물도 안겨주시였다.
그 다음날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전투영웅대회에 참가하였던 몇몇 영웅들을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정원쪽으로 마주 걸어오시였다.
《아, 영웅동무들이 왔구만!》
그이께서는 무척 반가와하시며 그들이 미처 인사를 드리기도 전에 넓으신 한품에 안아주시였다.
승리하고 고향에 돌아와 어버이품에 안기듯 그이의 품에 얼굴을 묻은 영웅전사들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있는 영웅전사들의 모습을 한동안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정원의 의자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시여 어서 앉으라고 권하시였다.
영웅전사들과 같이 수수한 의자에 앉으시여 가까이에 앉은 차례로 고향은 어디며 집에 누가 있는가, 생활형편은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크나큰 영광을 지닌 그들가운데는 의거병사출신의 공화국영웅인 전경환도 있었다.
그이께서는 전경환의 차례가 되자 그의 이름을 물으시였다.
그가 자기 이름을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못내 반가와하시면서 《동무가 전경환동무구만! 동무가 〈국군〉에 끌려갔다가 의거입북한 동무지, 잘 알고있소. 인민군대에 편입하여 위훈을 세웠다는것을 잘 알고있소. 감사를 드리오.》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꼭 잡아 자신의 곁에 이끌어 앉히시였다.
그렇게도 흠모하여마지 않던 위대한 수령님을 꿈아닌 생시에, 그것도 이처럼 영웅이 되여 만나뵈옵게 된것만 해도 분에 넘치는 영광인데 평범한 한 전사의 위훈을 그리도 대견해하시며 높이 평가해주시니 전경환은 너무도 큰 감격에 목이 메여 감사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시였다.
장한 일을 한 아들의 소행을 기특하게 여기는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나이는 몇살인가고 물어주시고는 그가 스물셋이라고 말씀드리자 어린 동무가 참 용감하게 싸웠다고, 장하다고 거듭 칭찬해주시였다.
전경환의 앞가슴에 있는 훈장과 영웅메달을 하나하나 만져보시던 그이께서는 장가를 들었는가고 정겹게 물으시였다.
그가 부끄러운 안색을 지으며 아직 결혼전이라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애인은 있겠지라고 하시고는 옆에 서있는 일군들에게 이 훈장들을 보시오, 이젠 장가도 들어야 하지 않겠소라고 하시면서 전경환의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상기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기쁨의 미소를 지으시던 그이께서는 나직한 음성으로 고향에 부모들은 있는가, 《국군》에 끌려나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학교는 얼마나 다녔는가고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여나 아홉살때부터 려관집 심부름군으로, 꼴머슴으로 고역에 찬 생활을 하였고 어머니곁에서 응석을 부려야 할 나이에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아버지를 따라 바다길을 헤매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였다. 그러다가 그만 열병에 걸려 배에서도 쫓겨나 일자리를 찾아 부산과 대구, 대전 등지를 헤매며 다니다가 그만 놈들의 홀치기에 걸려 괴뢰군에 끌리여갔었다.
지긋지긋한 괴뢰군생활을 통하여 남조선《국군》은 미제침략자들에게 복무하는 괴뢰군이며 동족을 살해하고 인민을 탄압하는 도구라는것을 깨닫게 된 그는 수치스러운 괴뢰군살이에서 벗어날 길을 찾던중 1950년 6월 24일 밤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날뛰던 미제침략군놈들이 38°선이북지역에 척후병으로 나갈것을 강요하는것을 기회로 대담하게 인민군대편으로 의거하였다. 그후 그는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전투마다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우고 공화국영웅이 되였으며 오늘은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게 된것이였다.
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시던 수령님께서는 동무는 공부도 못했고 고생도 많이 했구만라고 하시며 그의 험해보일 정도로 툭툭 불거진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만져보시며 안색을 흐리시였다.
순간 전경환은 고개를 숙인채 끓어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해하며 어깨를 들먹이고야말았다.
언젠가 소년시절에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보고 네 손이 벌써 어른의 손이 되였구나 하고 한숨짓던 손, 뼈도 채 굳지 않은 어린 자식을 먼바다로 떠나보내면서 흘리는 어머니의 애절한 눈물에 젖군 하던 손이였다.
원한에 피맺히고 엉킨 마디마디를 하나하나 풀어주시는듯 그이께서는 오래오래 그의 손을 만져보시였다.
자기의 손마디를 만져보시는 수령님의 따스한 손길에서 전경환은 친부모의 뜨거운 정을 느끼였다.
그의 손을 잡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옆에 앉아있는 한 일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반부에서 들어온 동무들을 잘 돌봐주시오. …휴가를 보내여 장가도 가게 하는것이 좋겠소.》
다시 전경환에게로 시선을 돌리신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공부를 못했는데 지금은 공부를 어떻게 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머리를 숙인채 대답하지 못하고있는 그를 지켜보시던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학습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공부를 제때에 하여야 전투도 잘할수 있고 맡은 일을 잘할수 있다고, 남조선 같은 사회에서는 돈있는 집 자식들만 공부할수 있지만 로동자,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우리 제도하에서는 누구나 다 배울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시면서 후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특히 남반부에서 온 동무들은 그리운 부모형제들과 하루빨리 만나기 위해서 더 많이 공부하여 자신을 더 잘 준비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시종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영웅전사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시며 그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 수령님께서는 저녁에는 그들을 또다시 연회에 초대하시였다.
하늘에 태양이 있어 지구상의 온갖 생명이 싹트고 자라나듯이 절세의 위인의 품속에서 전경환뿐아니라 남반부에서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던 수많은 평범한 전사들이 조국해방전쟁의 나날에 영웅적위훈의 창조자로 자라났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동족에게 재난만을 들씌우는 치욕스러운 군복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참된 삶을 찾아온 평범한 병사들을 영웅으로 키워주시고 용맹의 나래를 펼쳐준 삶의 요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