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행복의 창조자』 중에서
5. 민족번영의 길을 여시여
2) 온 겨레를 한품에 안으시고
□ 이역땅에 비치는 사랑의 빛발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에 있는 자식을 더욱 걱정하며 품을 들이는것이 어머니이다.
김정일장군님의 다심하신 어버이손길은 해외동포들에게도 뜨겁게 미치고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해외교포들을 가지고있다.
남의 나라땅에서, 남의 나라의 정치가 실시되는 지역에서 사는 해외동포들에게서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는 자주적인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당당하고 존엄있게 살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지켜나가는것이다.
해외동포들이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쟁취하고 고수해나가자면 그들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참다운 조국의 품, 민족의 어버이의 품이 있어야 한다. 참다운 민족의 어버이를 모시지 못한 해외동포들은 버림받는 고아의 신세와 다를바 없다.
지난날 우리 동포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역땅에서 참혹한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것도 운명을 지켜줄 조국이 없고 민족의 령도자가 없었기때문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해외에 있는 모든 조선동포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것을 숭고한 동포애적의리로 여기시고 그들을 한품에 안아주시고 육친의 정으로 보살펴주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외교포문제를 민족문제의 떼여낼수 없는 한 부분으로, 민족적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로 보신다. 하기에 해외동포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비길데없이 웅심깊고 뜨거운것으로 사람들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지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하고 뜨거운 동포애는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해외교포조직을 강화해나가도록 하는데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는데서 표현되고있다.
해외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는 누가 선사하는것이 아니며 저절로 마련되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되고 고수되여나간다.
해외교포들이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쟁취하고 고수해나가려면 그들이 자기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변하는 조직을 가져야 하며 조직에 뭉쳐 통일적인 투쟁을 벌려야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해외교포들이 자기들이 사는 나라와 지역의 구체적인 조건과 현실에 맞게 교포조직을 꾸리고 강화해나가도록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신다.
해외교포조직을 동포들의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고 대변하는 조직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혈은 시대와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일본에 있는 총련조직을 튼튼히 꾸려나가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신데서 뚜렷이 찾아볼수 있다.
언제나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영원한 동행자로 믿어주시고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을 공화국의 위력한 해외교포조직으로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면서 그 실현방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해외동포들의 운명에 대한 위대한 사명감과 뜨거운 어버이사랑,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이 빛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들은 조국에 온 총련일군들을 접견하시고 주신 담화들과 총련결성 40돐에 즈음하여 보내주신 력사적인 서한, 총련중앙과 현본부와 지부, 조청과 청상회, 녀맹과 금강산가극단에 보내주신 가르치심들에 구체적으로 밝혀져있다.
그 하나하나의 가르치심들은 다 변화된 현실에 맞게 총련조직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나가기 위한 강령적인 지침이며 명안들이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잘 준비시키도록 하여 총련의 대중적지반을 강화하도록 하신것도 해외교포조직의 강화와 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색과 심혈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총련이 결성된 후 수십년세월이 흘러 재일동포들속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3세, 4세 동포들이 압도적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는 다른 해외조직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해외동포구성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를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잘 준비시키도록 하는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결성 40돐에 즈음하여 총련과 재일동포들에게 보내주신 서한 《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데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기회에 3세, 4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과 민족교육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7월에는 3세, 4세를 비롯한 광범한 재일동포들을 더욱 굳게 묶어세울수 있도록 총련의 조직체계, 사업체계를 대담하게 고치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3월초에 총련의 책임일군과 재일본조선인축하단성원들을 만나신 자리에서도 애국의 계주봉을 넘겨받을 3세, 4세 젊은 동포들을 잘 준비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처럼 밝고 따사로운 사랑의 빛발이 있어 총련은 대국을 뽐내는 그 어느 나라 해외공민들도 가지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권위있고 위력한 해외교포조직으로서 끊임없이 강화되여 동포들의 자주적권리와 존엄을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는것이다.
해외동포들이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옹호하는 자기의 교포조직을 내오고 그것을 강화발전시켜나가도록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은 동포들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의 그 어느곳에나 다 미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사랑과 보살피심속에서 《재중조선인총련합회》와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를 비롯한 수많은 해외교포조직들이 아메리카와 유럽지역,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과 중국 등 이르는 곳마다에 결성되여 동포들을 묶어세우고 그들의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옹호해나가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외동포들이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철저히 향유하도록 해주시였을뿐아니라 그들이 불행을 당할 때에는 그것을 가셔주기 위하여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1995년 1월 대지진이 일본의 한신, 아와이지역을 순식간에 참혹한 페허로 만들어놓았을 때였다.
하루새벽에 일어난 자연재해로 121명의 동포들이 희생되고 1,500여명의 동포들이 부상당하였으며 2,225호의 동포들의 집과 공장, 점포들이 완전히 불타거나 파괴되고 4,200여명의 동포들이 엄동설한에 피난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참변이 빚어지게 되였다.
이때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이던 우리 동포들을 일으켜세워준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적사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진피해로 우리 동포들이 많이 희생된것을 가슴아파하시며 깊은 동정과 은정이 어린 사랑의 위문전문과 함께 위문금을 보내도록 하시였다.
사실 이 시기 공화국의 형편에서 해외동포들을 재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준다는것은 힘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가셔주는 일이라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설사 우리가 죽을 먹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위문금을 많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거듭 이르시고 100만US$의 위문금을 보내도록 하시였으며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문을 친히 보내주시였다.
《나는 이번에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지진에 의하여 피해를 당한 모든 동포들과 유가족들에게 다시한번 심심한 위문과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나는 총련의 모든 조직들과 동포들이 더욱 굳게 단합하여 피해지역 동포들을 적극 도와주며 그들이 하루빨리 지진피해를 가시고 안정된 정상적인 생활을 이룩할것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위문금으로 미국돈 1백만딸라를 보냅니다.》
그이께서는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인민들에게도 20만US$의 위문금을 보내주는 인도주의적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경제가 발전했다고 허장성세를 광고하는 나라들이 일본정부에 보낸 구제금이 기껏하여 50만US$정도미만일 때 1백만US$의 위문금을 보내신것도 사람들을 격동케 하였지만 그보다 동포들의 심금을 울려준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총련산하 동포들뿐아니라 《민단》계동포들도 포함하여 모든 피해동포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위문금이 가닿도록 해주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담긴 위문금은 리념과 단체, 소속에 관계없이 그 누구에게나 사망한 동포 한사람당 20만¥, 살림집이 파괴, 소실된 동포 한호당 5만¥씩 전달되였다. 도처에서 위문금을 전달하는 사람도 위문금봉투를 받아안은 사람들도 다 울었다.
돌이켜보면 70여년전의 1923년 간또대지진때 우리 동포들의 처지는 얼마나 비참했던가. 이역의 낯선 곳에서 재난을 당하고 동정의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오히려 조선사람이라는 단 한가지 리유로 6,000여명이나 무참히 참살당한 사실을 우리 민족은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하고있다. 서러움과 피맺힌 원통함을 어디에 하소연할데도 없어 땅을 치며 통곡만 해야 했던것이 나라없던 그 시절 우리 해외동포들의 실태였다. 그러던 그들이 오늘은 조국의 따뜻한 위로와 위문금까지 받아안게 되였으니 재일동포들은 김정일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에 목이 메여 흐르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사람이 물을 마시고싶을 때 물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제일 고맙게 여긴다는 말이 있다. 재일동포들은 조국이 어려움을 겪는 속에서도 리념과 소속에 관계없이 그토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어버이사랑이 너무도 고마와 《우리에게는 어머니조국이 있다》, 《사랑의 생명수를 보내주신 장군님의 은혜에 꼭 보답하겠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민단》계와 미조직동포들은 애국의 길에서 해놓은것이 없는 자기들까지도 친혈육으로 믿고 따뜻이 돌보아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절절히 부탁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베푸시는 해외동포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숭고하고 웅심깊고 뜨거운가 하는것은 우리 민족이 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피눈물속에 잠겨있던 대국상의 나날을 통하여서도 가슴 사무치게 절감하게 된다.
대국상의 나날에 공화국에서는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조의방문을 요청하여왔으나 다른 나라 조의방문단은 받지 않는 조치를 취하였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살고있는 해외동포들에게는 조의방문이 허락되였다.
여기에는 해외동포모두를 김일성민족의 한식솔, 한가정으로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가 깃들어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모진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어버이수령님을 추모하기 위해 조국으로 달려온 수많은 해외교포인사들을 친히 만나주시였으며 체류기간 불편한 점이 없도록 보살펴주시였다. 그리고 애통한 영결식이 있은 날 저녁에는 해외교포대표단들을 위한 위로연까지 마련해주시였다.
위로연이라면 정신육체적으로 당하고있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풀어주기 위하여 차리는 연회라고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로연은 마땅히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 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하여 우리 민족이 차려드려야 할것이였다. 하지만 해외동포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과 은정은 상주가 조객을 위로하고 고무하는 고결한 사랑의 전설을 펼쳐놓았다.
력사에 아무리 민족과 겨레를 생각한 위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국상의 나날에 해외동포들을 위하여 위로연까지 마련해준적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하기에 위로연에서 교포인사들은 장군님의 그 사랑에 북받쳐오르는 자기의 심정을 격조높이 토로하였다.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는 《위대한 주석님을 잃은 오늘 우리 겨레는 주석님의 위업을 실현해나가시는 친애하는 김정일지도자선생님을 받들어 싸워나갈 굳은 각오로 충만되여있다. 나는 모든 해외동포들이 친애하는 김정일선생님을 높이 모시고 통일성업에 매진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저 하며 이길이 바로 김일성주석님의 념원을 실현하는 길임을 일러두고저 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해외동포들을 한품에 안아 참된 삶을 꽃펴주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전설은 몇백, 몇천 밤을 새워도 다 이야기할수 없고 몇백권의 책에도 다 담을수 없다. 그처럼 어렵고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새 세대 동포학생들을 위해 거액의 교육원조비를 중단없이 보내주도록 하신 이야기며 대국상의 나날에 재미교포 손원태에게 베풀어주신 생일상에 깃든 사랑, 다심한 은정으로 재미교포음악가 리준무의 음악창작활동을 보살펴주신 이야기, 재미언론인인 문명자에게 베풀어주신 각별한 사랑 그리고 프로권투선수권보유자 홍창수선수에게 안겨주신 크나큰 믿음과 사랑도 하많은 사랑의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외동포들에게 참된 애국의 넋을 안겨주시고 애국활동에 나선 그들의 생활을 어버이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실뿐아니라 애국의 길에서 생을 바친 해외동포들에게 영생의 삶을 안겨주시였다.
총련의 한덕수의장과 리진규제1부의장, 총련녀맹중앙위원회 박정현상임고문,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 강일 위원장, 재도이췰란드동포음악가 윤이상선생, 범민련 해외본부 림창영의장,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 등 많은 해외동포들이 김정일장군님의 깊은 관심과 은정속에 몸은 비록 떠나갔지만 민족의 기억속에 참된 애국자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재미동포전국련합회 고문이였던 홍동근목사도 그 품속에 영생하고있다. 일찍부터 깨끗한 애국애족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온 홍동근목사는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였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이 남달리 강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친히 홍동근목사를 접견해주시고 그가 하고있는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으며 생전에 그에게 한없는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주체90(2001)년 11월 11일 홍동근목사가 조국에 체류하던중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에 접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며 신문에 그의 부고를 내도록 하시고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생을 바친 그의 삶을 길이 빛내주시였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도 미국에서 그의 가족이 올 때까지 근 10일간이나 기다렸다가 치르도록 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는 은정에 접한 목사의 안해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돌려주신 사랑에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홍목사는 늘 말 하기를 자기가 죽으면 조국땅에 묻어달라고 하였는데 그 소원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풀어주시였습니다. 저의 주인은 <래세의 천당>이 아니라 현세의 천당인 장군님의 품속에서 영생하게 되였습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사람이 어려서는 부모에게 의탁하고 젊어서는 부부간에 의탁하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의탁한다고 하여 예로부터 3거의탁이라고 말해왔다. 해외동포들의 생활과 운명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위대한 사랑이 있어 애국사업에 헌신하는 모든 해외동포들은 자신의 모든 운명과 미래까지도 장군님께 다 맡기고 사는 일거의탁의 애국자, 행운아들이다.
참된 삶의 길을 찾아 헤매이던 해외동포들을 은혜로운 품에 안아 값높은 삶을 주시고 영생의 언덕우에 높이 세워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야말로 진정 해외동포들의 참된 삶의 스승이시고 은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