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시책에 비낀 위인일화』중에서
2. 인민적인 보건제도에 깃든 사랑의 이야기
(2)
약값에 대한 이야기
주체64(1975)년도 다 저물어가던 어느날이였다.
이날 저녁
그 일군은 인민들이 좋은 제도하에서 의료상혜택을 너무 받다보니 약이 귀한줄 모른다고, 지금 가정들에서 랑비되고있는 의약품들이 적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그 일군은 지금 의료일군들이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대상하여 약을 랑비하지 말데 대한 교양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성과가 별로 없다고 대답을 드렸다.
그는 평소에 마음먹고있던대로 랑비를 없애자면 병원에서도 약값을 조금씩은 받아야 할것 같다고 말씀드리였다.
《뭐, 약값을 받겠단 말이요?》
그는 약값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약을 랑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통제수단으로 약간의 돈을 받았으면 한다고 덧붙여 말씀드리였다.
《많든적든 약을 지어주고 돈을 받으면 그것은 약값이요. 약값이란 말이요.》
그 일군은 무상치료제를 실시하고있는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에서도 외래환자들에게서는 약값을 받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그때에야 그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것을 통절히 느끼게 되였다.
약값을 받자는 의견은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사업이 한창이였던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제기되였었다.
그때 보건부문의 적지 않은 일군들이 의약품을 다른 나라에서 사다쓰는 형편이므로 병원에서 약국을 분리시켜 약값만을 받자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이렇게 되여 공화국에서는 치료도 무상으로 해주고 약도 무상으로 내주는 무상치료제가 실시되게 되였던것이다.
약값이란 말조차 모르고 약을 흔하게 쓰는것은 공화국의 인민들이 누리고있는 크나큰 특전이며 자랑이기도 하였다.
그 일군이 이러한 생각을 더듬고있는데
《동무들이 아직 내 마음을 다 모릅니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문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약 한첩 써보지 못한채 병들어 세상을 떠났습니까.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에 유격대원들과 담화해보면 부모형제들이 병들어도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일찌기 돌아갔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도 보험법을 실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였으며 힘겨운 전쟁을 겪는 어려운 때에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도록 하였습니다.
동무가 남들은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면서도 약값은 받는다고 하였는데 물론 외래에서 약값을 조금 받는다고 하여 무상치료제가 아니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값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너무도 짧았다고 말씀을 올리자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일군은 그날에 하신
하기에 그는 병원문을 나서는 모든 환자들에게 늘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싶은 충동을 느끼군 하였다.
당신들이 받아가는 그 약 하나하나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는가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