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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 | 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1』중에서 -주체49. 8. 25-혁명무력령도의 거룩한 첫 자욱을 찍으시여-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1-08-25

 

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1』중에서

 

제 2 장 문무겸전의 청년장군

1. 조선아 너를 빛내리

-주체49. 8. 25-혁명무력령도의 거룩한 첫 자욱을 찍으시여

 

주체49(1960)년은 력사적사변으로 격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선제강소에 지펴올리신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불길이 온 나라의 공장, 농촌, 교육, 문화 등 모든 부문, 모든 분야에로 세차게 번져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월 5일 이른새벽 숫눈길을 헤치시며 력사적인 청산리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청산리와 강서군에 대한 현지지도를 통해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현실에 맞게 혁명적군중로선을 구현한 새로운 사업방법, 지도체계가 창조되였다. 날을 따라 사회주의제도가 공고발전되고 천리마운동이 힘있게 벌어져 사회주의건설에서 대고조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 남조선에서는 4.19인민봉기가 폭발했다. 리승만파쑈독재가 거꾸러졌다.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가 밑뿌리채 뒤흔들리였다.

급변하는 격동적인 시기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시였다.

7월 1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급중학교의 전과정을 최우수의 성적으로 마치시였다.

졸업하는 날 정깊은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청춘을 빛내여나갈데 대한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우리는 우리 혁명이 가장 간고한 시련을 겪던 시기에 그리고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앙양과 변혁이 일어나던 격동적인 시기에 중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우리 당과 혁명에 반기를 들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때려눕히고 그 여독을 가시기 위한 전당적, 전인민적투쟁에도 참가하였고 천리마진군의 거세찬 흐름속에서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 위대한 변혁도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 우리는 혁명의 진리를 신념으로 새기였고 당과 수령만을 따르는 우리 인민의 투쟁정신을 깊이 체득하였으며 청춘의 희망과 꿈을 키웠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을 이처럼 보람차게 보낼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따사로운 품과 고마운 사회주의조국이 있기때문이였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중한 표정을 지으시고 계속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나는 자주 우리가 성장해온 지난날을 깊은 감회속에 돌이켜보군 한다, 그때마다 오직 혁명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오시는 우리 혁명을 반드시 완성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굳게 가지게 된다, 지난날에도 그러하였던것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시고 당과 혁명에 모든것을 다 바쳐야 하겠다, 내가 오늘 동무들에게 하고싶었던 말은 이것이다라고 하시였다.

졸업생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이의 교시를 뜨겁게 받아안았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지내온 학창시절의 보람찬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있어서 위대한 장군님은 다정한 학우이시였을뿐아니라 다심한 스승이시였고 지도자이시였다. 그들은 그이의 따사로운 품속에서 혁명의 진리를 신념으로 새기고 당과 수령을 받드는 정신도 마음도 키웠다.

졸업생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당부의 교시를 무겁게 간직하였다. 그이의 높은 뜻을 따라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모시고 당과 혁명에 청춘을 다 바칠 굳은 결의를 다졌다.

졸업생들의 모임이 끝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동무들에게 《동무들, 동틀무렵이 되였습니다. 모두 해마중을 갑시다!》라고 하시였다.

모두 떨쳐나 대동강가로 나갔다. 한여름의 싱그러운 대동강바람이 옷자락을 날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솟는 동녘하늘을 바라보시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아침해돋이를 보니 마음이 상쾌해지고 심장이 커지는것 같습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졸업생들도 저저마다 흥분된 심정을 터놓았다.

그들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 찬란한 태양의 빛발은 마치도 어버이수령님의 이끄심따라 전진하는 우리 조국의 앞날을 비쳐보이는것 같다고, 우리의 리상과 행복은 해바라기가 그 어데 뿌리내려도 태양을 향하여 아지 펴고 열매 맺듯이 그 어데서 무엇을 하든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청춘을 빛내여나가는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뜻깊은 대동강해맞이는 청춘들의 심장을 한껏 격동시켰다. 그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갈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지였다.

고급중학교를 졸업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슴은 어버이수령님의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어가실 결의로 부풀어있었다.

이무렵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정세의 발전추이에 주목을 돌리시였다.

4.19인민봉기를 계기로 미제의 식민지통치위기가 더욱 심화되였다. 파쑈독재의 도구였던 《자유당》은 완전히 붕괴되고 어용반동단체들도 총파산의 운명을 면치 못했다.

반면에 새 정치, 새 생활을 요구하는 인민대중의 진출이 비상히 강화되였다. 반외세, 반보수, 반독재의 구호밑에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적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적인 정치세력, 혁신세력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사태발전에 당황하여 미제는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이른바 《과도정부》를 내세워 인민들을 탄압케 하고 진보적정치세력의 진출을 억제하였다. 그리고 《자유당》을 대신하여 반동세력의 중심적정치집단으로 등장한 《민주당》을 떠밀어주어 집권하도록 했다.

한편 미제는 군사정세를 악화시켰다. 남조선에 지상대공중유도무기들과 대전차유도무기 등 각종 신형무기들을 반입배치하고 8,000명의 병력을 미국본토에서 끌어오고 대규모적인 전쟁연습과 유도탄시험발사놀음을 빈번히 벌렸다. 이것은 남조선에 대한 영구강점과 《북침》전쟁책동에 혈안이 된 미제의 흉심을 그대로 드러내보인것이였다.

이러한 정세는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도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도 이룩할수 없다는것을 더욱 똑똑히 보여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혁명위업의 정당성을 더욱 뜨겁게 절감하시였다.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혁명령도를 확립해야 혁명의 전취물도 수호하고 사회주의건설도 힘있게 추진하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도 실현할수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해나갈 결심을 굳게 다지시였다.

고급중학교를 졸업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혁명무력에 대한 령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무력령도의 거룩한 첫 자욱을 찍으신 곳은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이 사단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력사의 그날은 주체49(1960)년 8월 25일이였다.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잘 아시는 부대였다. 장군님께서는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땅크무력이 처음 탄생하였을 때 어머님을 모시고 이 부대를 찾으시였었다.

부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큰 공훈을 세웠다. 전쟁이 일어나자 부대는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들고 노도와 같이 진격하여 서울에 제일먼저 돌입하였다. 보병들이 땅크를 미처 따라오지 못했지만 땅크병들은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시내로 쳐들어갔다. 류경수 땅크려단장은 직접 땅크의 조종간을 잡고 주력종대를 이끌고 서대문형무소 철문을 깔아뭉개고 감옥문을 열어제꼈다. 안동수 문화부려단장이 인솔한 땅크종대는 서울방송국을 단숨에 장악하고 문화부려단장자신이 마이크를 잡고 첫 방송을 하였다. 다른 한 땅크종대는 적소굴인 《중앙청》을 점령하였다.

이 혁혁한 위훈으로 하여 이 땅크려단은 땅크사단으로 승격되고 《근위 서울땅크사단》 칭호를 수여받았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신다는 환희로운 기별을 받은 부대지휘관들과 땅크병들은 이른 아침부터 설레였다.

군기를 선두로 명예위병대가 정렬해있고 앞가슴에 훈장을 주런이 단 지휘관들과 손에손에 꽃을 든 땅크병들이 영광의 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

오전 8시 30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속에 부대 정문으로 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부대지휘관들과 땅크병들을 만나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부대지휘관들과 하신 담화에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은 근위땅크부대에서 복무하는 영예를 깊이 간직하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근위땅크병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운것처럼 수령님께 충성다하여야 하겠습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 전쟁시기 우리의 근위땅크병들은 무비의 영웅적위훈을 세웠다고, 수많은 공화국영웅을 배출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때를 더듬으시는듯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지휘관들도 사단이 걸어온 전투로정을 감명깊이 돌이켜보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땅크병들이 전쟁시기 보병서렬보다 앞질러 서울시가에 단독으로 돌입하여 통쾌한 섬멸전을 벌린것은 일찌기 세계전쟁사에 없었던 기적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영웅적위훈의 요인에 대하여 분석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땅크병들이 그러한 기적을 창조할수 있은것은 지난날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오다가 해방후 당의 은덕으로 나라의 주인이 되여 참다운 삶의 보람을 느꼈기때문이라고 하시였습니다. 땅크병들은 지난날 나라잃고 설음많던 자기들에게 보람찬 새 생활을 마련하여주신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충성심을 안고 그 어떤 곤난도 뚫고나갔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류경수, 안동수지휘관을 비롯한 19명의 전투영웅들에 대하여 회고하시고 땅크병들은 지난 전쟁시기 근위서울땅크병들처럼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만일 미제침략자들이 또다시 무모하게 덤벼든다면 땅크병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원쑤들을 무자비하게 족치던 근위땅크병들처럼 놈들을 이 땅에서 모조리 쓸어버려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는 부대지휘관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그이께서 힘주어 강조하신 근위땅크병들처럼 싸우라는 그 교시에는 그들이 지녀야 할 정신, 그들이 서야 할 영예로운 위치가 밝혀져있었던것이다.

격전장의 최선두에 서야 한다는것은 땅크병들의 정신이고 위치일뿐아니라 땅크부대 지휘관들의 정신이고 위치이라는것으로서 땅크부대 지휘관들과 땅크병들에 대한 새로운 가르치심이였다.

세상에 땅크가 출현한 후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땅크의 역할을 두고 분분한 론의를 해왔다. 그 초점은 대체로 땅크는 《보병들과 함께 전진하면서 그들의 돌격로를 열어주는 무쇠주먹》, 《보병들을 엄호하는 철의 장벽》이라는데로 모아졌다. 따라서 땅크병들의 위치는 보병들의 공격로나 열어주고 그들을 엄호하면 되는 그런 위치였다.

세계전쟁사에서도 유명한 《베를린함락작전》때 땅크병들이 그런 위치에서 싸웠다. 그때 땅크병들은 보병들의 돌격로를 한치한치 열어주면서 히틀러파쑈통치의 아성인 국회의사당으로 육박하였다. 6천 3백대의 땅크가 시가전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국회의사당청사를 점령한것은 땅크병들이 아니라 보병들이였다.

이러한 인식은 그때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 장병들에게도 있었다. 이러한 기존의 사고방식은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졌다.

그때의 체험자인 한 땅크지휘관은 수십년이 지나서 그때를 회상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근위땅크병들처럼 싸우라는 위대한 장군님 교시를 되새기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의 길에서 우리 땅크병들이 지녀야 할 정신은 근위땅크병들의 완강한 공격정신이며 서야 할 위치는 승리의 기발을 꽂은 근위땅크병들이 섰던 자리라고 생각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의 길에서 근위땅크병들이 섰던 위치,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부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땅크병들에게 안겨주신 최대의 믿음이며 성스러운 삶의 좌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무려 11시간동안이나 부대사업을 지도하시였다.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킬데 대한 문제, 전투력강화에서 나서는 문제 등에 대하여 일일이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발휘된 영웅적인 투쟁자료를 가지고 군인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장병들에게 수령결사옹위의 억센 신념을 심어줄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대 군인회관정문 채양우에 내붙인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보시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그대로 담은 아주 좋은 구호라고 하시면서 이 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조선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겨나가야 한다고 장병들을 고무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진행하신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에 대한 현지지도는 그이께서 혁명무력에 대한 령도의 거룩한 첫 자욱을 찍으신 력사적사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력사적인 현지지도를 계기로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총대로 개척되고 전진해온 주체혁명사에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무력에 대한 령도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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