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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 |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 중에서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시며-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2-02-15

 

이북도서 『민족중시의 경륜』 중에서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시며

 

민속은 해당 민족의 풍속이나 생활풍습 또는 습관이다. 민족의 본태는 인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반영되여있으며 또 그것을 통하여 표현된다.

오랜 력사를 거쳐 발전풍부화된 고유한 조선민속에는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재능, 고상한 사상감정과 례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 등 고유한 구미와 기호를 비롯한 민족적특성이 진하게 반영되여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속문제, 민속을 살리는가 못 살리는가 하는것을 민족의 존망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 보시고 민속명절과 민속놀이, 민속례법과 민족옷차림 등 우리 인민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생활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미풍량속을 고수하고 인민들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살려나가는데 계속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해마다 맞고 보내는 설명절과 정월대보름, 추석(한가위)과 같은 민속명절들에도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심혈이 깃들어있다.

주체69(1980)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한동안 얼떠름해있는데 그이께서는 오늘이 정월대보름날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설명절, 추석을 년중 제일 큰 민속명절로 쇠여왔을뿐 아니라 정월대보름도 이런 명절들 못지 않게 크게 쇠여왔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오며 조상전래로 크게 쇠여오던 이 명절은 지난날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하여 심히 짓밟히게 되였으며 해방후에는 사대주의자들과 민족허무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자기의 모습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가지고 오신 조선엿을 맛보라고 일군들에게 주시면서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과 같은 명절놀이에서뿐 아니라 로동생활, 문화생활, 의식주생활, 도덕생활 등에서 우수하고 훌륭한 민속전통을 창조하였다고,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창조한 민속전통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귀중한 민족적유산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넋과 생활정서가 깃들어있는 민속명절을 똑똑히 알게 하시려고 그토록 마음쓰시는 절세의 위인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앞에는 몇해전 동지날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체64(1975)년 12월 어느날이였다.

몇몇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왔다. 영문을 몰라하는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식사나 함께 나누자고 찾았다고 하시며 어서 상에 나앉으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서로 머리만 기웃거릴뿐 대답을 못하고있는 그들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동지날이라고 하시며 동지죽을 쑤었으니 모두들 들라고 말씀하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동지날이 되면 수수나 찹쌀로 만든 동그랭이를 넣어 쑨 팥죽을 먹는 풍속이 전해져오고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기에 국가적으로 동지를 민속명절의 하나로 정하고 쇠였으며 민간에서는 이날을 맞으며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 이웃들과 나누어먹으면서 화목을 두터이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도 동지날은 작은 설날이라고 하여 붉은 팥죽을 쑤어먹었는데 찰수수가루나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새알심을 만들어 죽속에 넣고 꿀을 타서 철음식으로 삼았으며 제사에도 쓴다고 씌여져있다.

팥죽이 동지날을 상징하는 음식인데로부터 민간에서는 동지무렵에 날씨가 따뜻하면 이듬해에는 농사가 잘될 징조라는 의미에서 《동지죽이 쉬는 해에는 풍년이 온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변변치 않을것 같으나 일이 록록치 않음을 비겨 《배꼽은 작아도 동지팥죽은 잘 먹는다.》는 속담까지 전해져오고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 매 사람앞으로 동지죽그릇을 밀어놓으시며 어서 들자고, 동무들을 위해 쑨 동지죽이라고, 우리 함께 동지죽을 먹고 새해에도 더 많은 일을 하자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년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인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것을 전통적인 민족적풍습으로 여겨왔다고 하시면서 동지날에 동지죽을 먹으면 한살을 더 먹는다는데 이렇게 마주앉아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는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

이렇듯 몇해전 동지날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갔다와서 우리도 생활방식에서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밥대신 마까로니를 먹고 점차 숟가락이나 저가락대신 나이프나 포크 같은것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한데 대하여 심각하게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온 민속전통에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례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호와 특성이 반영되여있다고, 민속을 버리면 민족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민속명절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것은 이때만이 아니였다.

주체91(2002)년 2월 어느날 선군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인민군부대 지휘관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가던 도중 동무들이 보고싶어 불렀다고 하시면서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고, 민속명절에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하시며 그들을 식탁으로 이끄시였다.

식탁우에는 갖가지 나물반찬을 곁들인 검소한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그런데 신통히도 매 사람앞에 말린 나물반찬이 9가지씩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별로 차린것은 없지만 어서들 들라고 권하시며 음력 1월 15일을 정월대보름이라고 하는것은 새해 첫달에 맞는 보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것이라고, 예로부터 정월대보름날에는 9가지의 말린 나물을 먹는다고 하였다고, 우리 나라에 동지날에는 작은 설날이라고 하면서 팥죽을 쑤어먹고 추석날에는 햇곡식으로 송편을 비롯한 여러가지 음식을 해먹는 풍습이 있다고,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이런 민족적인 풍습을 잘 모르고있다고, 새로 자라나는 새세대들은 오곡백과라는 말은 하면서도 오곡에 어떤것들이 포함되는지 제대로 모른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성을 귀중히 여길줄 모르는 사람은 참다운 공산주의자가 될수 없다고 하시였다.

결코 여담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였다.

조상대대로 전해져오는 우리 민족고유의 풍습에 대한 상식을 통하여 민속을 중히 여기고 살려나가는것이 곧 민족애의 표현이며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성고수를 떠난 참다운 혁명가에 대해 말할수 없다는 심오한 리치를 깨우쳐주시는 말씀이였다.

민속을 버리면 민족이 자기 본태를 잃어버릴수 있다고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옷차림에서도 민족성이 구현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66(1977)년 9월중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무대의상도안을 보아주실 때였다.

화려하고 현대적이며 민족적색채가 진하게 안겨오는 무용배우들의 의상도안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의상도안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장군님께서는 저고리에 고름을 단 도안과 달지 않은 조선옷도안앞에서 눈길을 멈추시였다.

한동안 도안을 주의깊게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조선녀성들의 저고리형태를 달리한다는것이 간단치 않다고, 치마는 여러가지 형태로 할수 있지만 저고리는 형태를 다르게 하기 힘들다고, 몇천년을 내려오는 조선저고리형태를 어떻게 하루이틀에 혁명할수 있겠는가고 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장군님께서는 조선저고리는 고름을 다는것이 고유한것이며 고름을 달지 않으면 관중들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고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조선저고리는 고름을 다는것이 고유한것이다.

이것은 조선옷의 기본특징을 규정짓는 말씀이시였다.

사실 조선옷의 아름답고 맵시있는 기본특징은 저고리에 우아하고 길다란 두가닥의 고름을 단것이며 바로 그것이 다른 나라 민족의상들과도 구별되고 돋보이게 하는것이다.

그런데 무대의상을 현대맛이 나게 발전시키고 다양하게 한다고 하면서 조선옷의 전통적인 의복제도의 가장 우수한 기본특징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니…

조선저고리에서 고름을 없애는것은 한갖 형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더욱 빛내여나가려는 애국심이 부족한 현상의 표현이라는 생각으로 도안가들과 일군들은 얼굴을 들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일군들에게 녀성들의 조선옷을 다양하게 만들 방도에 대하여서도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성을 고수하자면 민족옷을 입는것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시며 조선옷의 고유한 색갈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녀성들에게 더 좋은 치마저고리감을 마련해주기 위하여서도 깊이 마음쓰시였다.

주체89(2000)년 6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낮기온이 34를 기록하는 무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녕변견직공장을 찾으시였다.

흐르는 땀방울을 연방 손수건으로 훔쳐내시며 공장의 생산공정들을 일일이 다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공장의 책임일군에게 우리 녀성들이 비단치마저고리를 좋아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좋아한다고, 이번에 평양견학을 갔었는데 다색단치마저고리를 입은 공장의 직포공들의 차림새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나직한 음성으로 이번에 평양에 왔던 남조선의 김대중은 연도에 환영나온 녀성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있는것을 보고 그것만 보아도 북조선에서는 전통적인 민속문화가 고수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면서 감탄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지 며칠밖에 안되는 무더운 날 비단공장을 찾으신 그이의 웅심깊은 의도가 그대로 안겨오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의 수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통일성업을 론하는 그 중대한 시각에도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환영군중 특히는 녀성들이 입고있는 민족전통의상인 조선치마저고리를 유심히 보고 또 보시였다.

하나의 의상이기 전에 민족적인 얼이고 향취인 조선치마저고리를 떨쳐입고 연도환영에 나선 녀성들의 모습을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녀성들의 저 아름다운 모습에 민족적인 색채를 진하게 더해줄수 없을가, 온 나라를 민족의 우수한 향기로 단장시킬수 없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생각하고 또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치마저고리를 해입혀도 우리 녀성들모두에게 부드럽고 색갈고운 비단으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해입히고싶으시였다. 그러면 아마 조선녀성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녀성들로 보일것이고 우리 나라는 민족의 향취가 진하게 풍기는 나라로 될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공장을 찾아 먼길을 오시였던것이다.

이처럼 치마저고리 하나에서도 민족의 넋을 읽으시고 민족의 장래발전을 위한 정신적원동력을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넋을 살리고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대대손손 이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민속놀이도 적극 장려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씨름과 같이 남자들이 하는 민속놀이도 있었고 연띄우기와 제기차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줄넘기, 숨박곡질, 메뚜기치기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이 하는 민속놀이도 있었으며 윷놀이와 같이 남자나 녀자, 어른이나 아이 할것없이 누구나 다 할수 있는 민속놀이도 있다.

민속놀이에는 우리 인민의 감정과 취미, 민족적정서가 반영되여있다. 민속놀이를 적극 장려하고 많이 하게 하여야 우리 인민들로 하여금 민족성을 더욱 깊이 간직하게 할수 있다.

이로부터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고수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민족체육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를 장려하도록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0(1961)년 8월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씨름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우리 나라 씨름의 유구한 력사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씨름은 고구려시기에 이미 널리 보급되여있었다고, 고구려무덤의 벽화들에는 웃동을 벗어제낀 씨름군들이 승부를 겨루는 재미있는 장면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당시 고구려사람들이 씨름을 즐겨하였으며 고구려에 씨름이 널리 보급되여있었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날 일부 사람들은 우리 나라 씨름이 마치 몽골씨름에서 유래된것처럼 말하였는데 그것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씨름은 고려이전시기에 벌써 우리 나라에서 생겨난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 씨름의 력사를 새롭게 해명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씨름의 우수성에 대하여서도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씨름은 장수힘을 키울뿐 아니라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누구나 할수 있는 체육종목이라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씨름을 즐겨하였다고, 예로부터 어린이들은 강가나 들판에서 놀 때에는 씨름을 많이 하였고 두레군들은 쉴참이면 밭머리에서 씨름을 즐겨하였다고 하시면서 뿐만아니라 우리 인민들은 민속명절을 계기로 마을마다 여러가지 놀이와 함께 반드시 씨름을 한 경기종목으로 정해놓고 경기에서 이긴 씨름군에게는 꽃목걸이장식을 한 황소를 상으로 주는것을 풍습으로 여겨왔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씨름은 조선사람들이 좋아하는 전통적인 민족경기라고, 우리 인민의 자랑인 민족씨름을 널리 장려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슬기와 용맹의 상징으로 되고있는 씨름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지니시고 그 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더욱 장려하여 온 사회에 민족의 향기가 한껏 흘러넘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1월말 전국적규모의 민족씨름경기를 특색있게 조직하도록 하시고 경기형식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으며 시상품은 송암명기소목장의 대황소로 하도록 하는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평양에서는 대황소상 전국근로자들의 민족씨름경기가 성황리에 진행되여 유서깊은 모란봉기슭에서는 대황소의 금소방울소리가 랑랑하게 울려퍼졌다.

그날 저녁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 모란봉에서 진행된 씨름경기가 어떻게 되였는가, 황소는 얼마나 큰것이였는가고 물으시였다.

900㎏짜리 대황소라는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흐뭇한 시선으로 말그대로 대황소라고, 잘되였다고 거듭 말씀하시면서 이런 경기를 전통화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때부터 해마다 추석을 계기로 온 나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대황소상 전국근로자들의 민족씨름경기가 이채를 띠고 성황리에 진행되고있다. 이것은 절세의 위인의 뜨거운 민족애가 이 땅에 펼쳐놓은 또 하나의 민속풍경이다.

씨름만이 아니다. 언제인가는 윷놀이를 장려할데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윷놀이방법이 단위마다 서로 다른데 윷놀이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살리면서도 재미있게 놀수 있는 윷놀이방법도 알려주도록 하시고 그네뛰기와 널뛰기같은 민속놀이를 장려하도록 가르쳐주시였으며 평안도지방에서는 팽이를 세리라고 불렀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팽이치기에 대하여 가르쳐주기도 하시였다.

또한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최근에는 어린이들의 유희에 대한 책도 별로 나오는것이 없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어린이들속에서 민속놀이를 적극 장려하여야 자라나는 새세대들이 조선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려나갈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고 새 세기 첫해의 어느날에는 아이들이 봉선화꽃으로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노는 민속적인것을 적극 장려하여야 하며 참빗과 동백기름도 많이 만들어쓰고 수세미오이도 많이 심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온갖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민속전통을 대를 이어 살려나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신 절세의 위인의 이렇듯 깊은 관심이 있어 오늘도 전통적인 생활문화, 례절문화를 인식시키기 위한 사업이 널리 진행되고있으며 전 사회적인 관심속에 윷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들이 성황리에 진행되고있을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쌍태머리, 색동저고리 등이 적극 장려되여 온 나라에는 민족의 고유한 향취가 함뿍 넘쳐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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