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인민들에게 더 많은 닭알을 먹이시려고
주체59(1970)년 5월 어느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함경북도 경성군의 한 닭공장을 찾으시였다.
그이께서 닭공장에 도착하시였을 때는 저녁무렵이였다.
병풍을 두른듯 한 수려한 산밑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공장의 전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다웠다.
차에서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중나온 일군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나서 한동안 닭공장과 그뒤로 뻗어내린 산발들을 바라보시였다. 그러시다가 여기는 경치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곳이라고 하시며 닭공장이 자리잡고있는 아래도 공장부지로 쓸수 있는 지대라고 말씀하시였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고도 닭공장을 더 지어 알생산을 늘일 구상을 펼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구내길을 천천히 걸으시며 닭공장을 아담하고 정연하게 잘 꾸렸다고 치하하시고 어미닭은 얼마나 되며 알은 얼마나 낳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에 공장의 한 일군이 닭은 2만 5 000마리이며 하루에 평균 1만 7 000개의 알을 낳는다고 대답올렸다.
그의 말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못 유감스러워하시였다.
알낳이률이 겨우 64%밖에 안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왜 알낳이률이 이렇게 낮은가고 그에게 물으시였다.
기술수준이 어리고 관리를 잘하지 못한 결과 닭들이 허약해져서 알을 낳지 못한다는 공장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천천히 걸으시며 닭알 한알의 생산원가가 얼마인가고 물으시였다.
공장일군이 생산원가를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해되지 않으시는듯 그의 말을 되뇌이시며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닭알생산원가를 낮춘 어느한 닭공장을 실례드시면서 여기서도 닭알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한 투쟁을 벌려 닭알값을 결정적으로 낮추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금 닭알생산원가를 낮춘 공장이 몇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닭알 한알의 생산원가가 이곳에서는 너무 높다고 하시면서 결정적으로 원가를 낮추어 닭알값을 떨구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들에게 닭알 한알이라도 눅은 값으로 공급해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호동에 들리시여 감시창으로 닭알상자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천정의 높이와 상자의 단수를 가늠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자를 3단으로 놓았는데 이런 조건에서는 4단으로 놓아야 좋다고, 4단을 놓으면 이 설비능력을 가지고도 알을 더 많이 낼수 있다고 일군들을 깨우쳐주시였다.
알생산을 늘일수 있는 방도를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리공처녀가 가져다드리는 닭알꽂개를 받아드시고 세세히 살펴보시다가 알릴듯말듯 하게 실금이 간 닭알을 보시고 왜 깨졌는가고 물으시였다.
공장일군이 알꽂개를 쌓아놓으면 큰것들은 눌리워서 깨진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알을 깨뜨려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며 닭알꽂개모서리에 받치개를 좀 여유있게 높이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고, 닭알이 깨지지 않게 연구해보라고 이르시였다.
한알의 닭알에 실금이 간것을 보시고 그토록 아쉬워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공장일군에게는 두달전에 있은 전국가금업일군대회에서 손수 연필을 드시고 알생산정형을 료해하시며 기어이 30억개의 알을 내야 인민들에게 풍족히 먹일수 있다고 하시던 그이의 말씀이 생생히 되새겨져 죄송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현존설비능력을 가지고도 닭알생산을 늘일수 있는 방도도 찾아주시고 닭공장을 군중적운동으로 건설할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어느덧 사위는 어둡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좀처럼 닭공장을 뜨지 못하시고 알생산을 늘일데 대하여서와 사료를 절약하여 알생산원가를 낮추어 더 눅은 값으로 인민들에게 닭알을 공급할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고서야 이곳을 떠나시였다.
오늘 인민들의 밥상에 오르는 닭알 한알한알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처럼 따뜻한 사랑이 그대로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