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서 ‘유구한 민속전통, 그 갈피마다에’ 중에서
제 4 장 민족의 향기 만방에 넘쳐나다
가장 주되는 지표
주체89(2000)년 6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그이께서는 우리의 경공업이 틀어쥐고나가야 할 가장 주되는 지표의 하나는 비단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어떻게 하면 비단천을 많이 생산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비단옷을 해입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비단을 짜기 시작하였으며 세나라시기에는 견, 라, 사, 초, 금, 릉 등의 여러가지 비단을 생산하였다. 비단짜는 기술이 매우 높아 당시 고구려를 비롯한 세나라의 비단짜는 기술자들은 일본에 건너가 그 나라의 비단생산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명주실로 짠 우리 나라의 비단은 다른 천들에 비하여 가볍고 빛갈이 우아하며 손맛이 부드러워 일찍부터 다른 나라들에 대대적으로 수출되고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비단을 좋아하였으며 비단옷은 행복한 생활의 표징으로 되여왔다.
우리 나라는 비단에서는 좌상이나 같다. 세계력사에 《비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비단무역로도 그 동쪽끝을 우리 나라에 두고있다.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조선비단은 그 질이 또한 최상의 수준이였는데 우아한 광택과 울림, 보온성과 접촉감각, 흡수성이 좋은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져있었고 위생학적으로도 우월하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나라의 긴장한 경제형편은 비단천생산에도 영향을 미치여 결혼식을 하는 청년들에게 비단옷감을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하고있었다.
이것을 두고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신분은
그이께서는 비단과 같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직물생산을 늘일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앞으로 결혼식을 하는 청년들과 생일 60돐, 70돐을 맞는 늙은이들에게는 다 비단옷감과 비단이불감을 공급해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이처럼 비단을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워주시려는
오늘 우리 나라의 상점과 백화점에서 흔히 볼수 있는 우리 민족의 자랑인 비단천들마다에는 여러가지 무늬와 고운 색갈의 질좋은 천들이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이 차례지게 하시려고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