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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고 | 북을 동경하는 이유 (1) - 노인들의 별천지
  • 작성자 《구국전선》편집국 2022-02-26

 

 

북을 동경하는 이유 (1)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한강토에서 살아온 우리 겨레가 외세에 의해 가슴 허비는 분단의 비극 속에 둘로 갈라져 살아 온지도 장장 77년.

남과 북에는 판이한 두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민중이 떠받들리우는 참세상인 북, 민중이 버림받는 생지옥인 남.

하기에 이 땅의 민심은 북으로 쏠리고 있다.

노인들의 별천지

청춘처럼 노년을 살 수 없 듯 노년처럼 청춘을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청춘의 삶과 노년의 삶은 분명 다르다.

오늘날 노인은 모든 영역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도움이 되지 못하고, 되려 도움을 받아야 할 시간만 늘고 있다.

하지만 늙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삶에 속하는 문제인 동시에 삶의 마침과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올해 67세 노인이다.

퇴직하기 전 모 기관의 역원으로 근무하면서 내딴에는 정직하게 살아왔고 가정에서도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런데 만성 천식에 폐암 선고까지 받은 시한부 환자인 아내의 병치료에 시달리는 터에 나까지 치매가 오면서 나는 극빈층으로 전락해버렸다.

주거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에선 보증금을 요구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치료비와 약값이 누적돼 아내가 병원에서 쫒겨나는 날 돈을 내지 못해 퇴거통지서를 받았다.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 다행히도 상가건물 경비 자리를 소개받았으나 기쁨도 순간 치매가 있다고 즉시 퇴출당했다.

생각하다 못해 아들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대번에 거절당하였다. 이유인즉 코로나19사태에 기업까지 망가지면서 부양할 처지가 못된다는 것이었다.

자식에게서까지 버림을 받은 침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던 아내는 병이 더해졌고, 내 허락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나도 더 살고 싶지 않아 연탄불을 피워놓고 아내의 뒤를 따라가려고 기다렸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품삯을 얻는 것으로 하루하루 겨우 연명해가고 있다.

노인들의 눈물겨운 정상은 나만이 아니라 이 사회에 부지기수다.

자식에게 재산을 털리우고 눈물속에 자신을 위로하고 한탄하는 노인들, 자식들의 학대와 외면으로 쪽방촌에 몰려드는 노인들.

그런가 하면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려고 정신병자로 몰아 따돌리는 자식들, 부모가 죽지 않는다고 병원에 찾아가 욕설과 행패를 부리는 자식들…

노인을 폄하하고 능멸하는 사회는 죽음의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고 정말이지 가슴이 졸아들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19세기 영국의 한 시인은 자기 시의 첫 구절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썼다. 이를 제목으로 옮긴 영화도 있는데, 나 역시 이 세상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전달 시가의 외딴 차세척장에서 동년배의 한 노인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서로의 가긍한 신세를 터놓다가 그가 기다리기라도 한듯 북 노인들은 우리와 판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북에서는 노인들이 국가를 위해 공헌한 선배로 존경과 우대를 받고 있다며 곳곳의 양노원과 양생원과 같은 복지 시설들에서 연로자들이 여생을 즐기고 있고, 자식 없는 노인들의 친자식이 되어 보살펴주는 미담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에서는 연로자들의 건강과 생활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주고 있고,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 혜택들이 거듭 베풀어지고 있다며 부러움에 찬 목소리로 톤을 높이는 것이었다.

나의 의문을 털어버리려는 듯 그는 휴대폰으로 『세월이야 가보라지』라는 북의 노래와 노인들의 행복한 일상을 담은 동영상도 보여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북 노인들에 대한 소리는 처음 듣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일종의 선전, 과장된 것으로만 여기면서 잘 믿으려고 하지 않고 부정도 했었다.

그런데 이날 그 노인의 흥분에 찬 이야기와 동영상까지 몇번이고 보고나니 과대포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솔하고 생생하였다.

정말이지 노인들의 지상낙원, 별천지를 눈앞에서 보는 듯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북 노인들의 모습이 머리속에서 떠날줄 몰랐고, 때없이 자신과 대비해보며 그들과 자리를 바꾸어 보기도 했다.

북의 노인들도 분명 나와 같은 노인들이고 언어도, 피부색갈도, 생활풍습도 같은 한민족이 아닌가.

하지만 북에서는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노인들이 우울과 비관이 아니라 생기와 낭만에 넘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사회에도 노인들을 위한다는 시책과 법, 복지 시설들이 있다.

하지만 명색뿐 실질적인 혜택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소리가 아니다.

나 자신의 고단한 삶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사실상 내 생의 전부가 간난신고였다.

그야말로 겉은 번쩍거려도 속은 골병 들어 돈 없이는 개, 돼지보다도 못하고 인간의 고상한 정과 이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 땅의 현실 그대로인 것이다.

진정 이 행성에 노인을 위한 나라, 민중의 삶을 보살피고 책임지는 사회는 어디인가.

나 같은 늙은이에게도 그 답은 너무도 명백해졌다.

다름 아닌 한지맥으로 잇닿은 북이라고.

만일 내가 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열백번도 북에서 태어나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부산 이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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